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문 Jul 26. 2020

#차별금지법이_제정되면_나는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차별금지법은 최근 국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법안 중 하나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대표 발의 이후 몇 년간 국회에서 볼 수 없었던 차별금지법안은 오래간만에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독자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였다. 이렇기에 비록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제목을 가진 법안은 해당 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당이든 ‘누구를 차별하겠다’고 대놓고 선언할 수는 없으니, 일단 ‘차별금지법’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핵심은 차별금지사유가 되었다. 차별금지사유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성적 지향’이라는 단어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성적 지향’이라는 단 하나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옹호법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들의 세계관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동성애자가 폭증하고, 국가가 망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에서 게이가 급증하지도 않았고, 국가가 사라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차별금지법을 제정한 국가들은 이 법과 관계없는 문제들로 혼란에 빠지고는 하지, 차별금지법 자체로 인해 큰 위기에 빠지지도 않았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동성애자가 급증하지도 않을 것이고, 건실한 국가가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이전에 숨어있던 성소수자들이 조금 더 많이 보이는 일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비로소 동등한 시민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전에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감추어야만 가능했던 활동들을 성소수자라는 이름을 걸고 당당히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에 아무런 해악도 끼치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하루를 평범하게 지내면서,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삶을 영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달라지는 것은 우리가 이들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생활에 있어 이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대로 인지하게 된다는 것 밖에 없다.


반대자들이 그렇게 두려워하는 사회의 해악 요소인 이상문이라는 게이의 삶도 그럴 것이다. 그는 매일 동물의 숲을 조금씩 플레이할 것이고, 주디스 버틀러의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끙끙 앓을 것이며, 빈약한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한창 아이패드 앞에 앉아있을 것이다. 다만, 그는 이제 온라인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본인을 게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동시에 이상문이라는 필명이 아니라 본명 김상현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를 법이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길 것이다.


무너지는 것은 반대하는 이들의 편견뿐이다. 그 정도를 제외하면, 그들의 삶도, 나의 삶도 차별금지법 이후에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비로소 나의 존재를 오프라인에서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당신들을 오프라인에서 보아왔던 것처럼. 온라인에서의 이상문이라는 게이의 삶과, 현실에서 이상문의 삶은 통합될 것이다. 고난도 계속된다. 여전히 내가 게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혐오표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편견에 가득한 사회와 맞서야 하며, 무지개 깃발을 들고 다니는 일도 큰 고민을 거쳐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누구나도 나를 차별하기 전에 차별금지법을 생각하면서 그것이 옳은 행위인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서 조금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비로소 당신과 같은 대한민국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정도를 제외하면, 우리의 삶은 차별금지법 이후에도 급격하게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상적으로 기능할 것이고, 어느 게이는 어플로 사랑을 구애할 것이고, 나는 책을 읽을 것이며, 당신은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할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나는 여전히 이전과 똑같을 것이다. 다만, 비로소 좀 더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전혀 두려운 일들이 아니다. 새로운 일도 아니다. 그저 있던 것을 드러낼 뿐이며, 짓눌렸던 한 사람의 삶이 명확해졌다는 것 밖에 없다.


당신이 게이인 나를 싫어하는 것은 자유다. 나도 그런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한 사람으로서, 시민으로서, 동등한 주체로 보고 대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이제 당신에게 나를 그렇게 대하라고 할 뿐이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대할 때, 우리 모두의 삶은 극적으로 변하지 않지만 서로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욕도 서로 보여야 할 수 있다. 그것을 원하지 않고 계속해서 허공에 있는 상상 속의 동성애를 욕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그래도 차별금지법은 급진적으로 사회를 붕괴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저 게이 이상문이 게이 김상현으로 바뀔 일 밖에 없다.





작가의 이전글 체첸 기사를 보고 한국 게이가 두려워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