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에 햇살과 바람과 맑은 공기를 함께 누리자
연애 약 6개월 차, 5월의 햇살을 만끽하며 연애 전선 이상 없음. 날씨는 마법 같고 공기는 쾌청한 날들이 매일 지속되고 있음. 나의 동네와 애인이 사는 동네에서 이 계절과 어우러지는 새로운 루틴을 알차게 즐기고 있음. 몇 가지 목차로 근황을 기록함.
1.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잠깐의 마찰과 시련
여느 커플이 그렇듯 나와 애인도 아주 가끔 다투기도 했다.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는 과정에서 의견의 충돌과 마찰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어떻게 조율하고 합의점을 찾는지,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더 이상의 마찰과 타협을 거부 또는 포기하는지 혹은 서로 포용하고 앞으로 나아가는지가 관계의 존속 여부를 결정한다.
글을 쓰지 않던 기간 중에 평범하고 자잘한 다툼을 넘어선 큰 시련이 잠깐 있었다. 아주 많이 힘든 시간이었다. 이별이 눈앞에 있었지만 완전히 헤어질 수 없었고 헤어지는 일이 바보 같은 일로 느껴졌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 차이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결론적으로 '함께'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끊임없는 진솔한 대화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역시 건강한 관계의 핵심 그리고 필수요소는 '서로를 존중하는 진솔한 대화'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시련의 시간을 거치고 나니 세상은 흐드러지게 핀 봄꽃으로 가득했다.
2. 피크닉 중독
마법 같은 계절,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아름다운 시기에 애인과 나는 한동안 피크닉 중독에 빠졌다. 바람과 햇살을 충분히 쐬는 나날들. 하늘은 파랗고 공기는 맑고 시간은 꿈꾸듯 흐르는 시간. 4월에서 5월 중순까지가 야외에서 피크닉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이다. 얼마 안 되는 이 시기를 충분히 누리기를 나는 겨울부터 별러 왔다. 차 트렁크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여러 개의 돗자리들을(난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걸 좋아해서 해운대든 경포대든 여행지에 갈 때마다 편의점에서 충동적으로 돗자리를 사곤 했다. 누적된 돗자리들은 모두 내 차 트렁크에 있다.) 다 꺼내어 넓게 연결하고 누워서 얼굴에 닿는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거나 간이식 테이블을 펼쳐서 간식과 커피를 두고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다.(카드게임을 하다가 카드들이 바람에 날아가서 애인이 나무 사이로 주우러 다니고 나는 그런 애인을 보며 남은 카드가 날아가지 않게 온 몸으로 막으면서 돗자리에 위에서 깔깔 웃던 때가 생각난다.) 애인 동네의 나무가 많은 공원에서, 내가 사는 동네의 호수가 있는 공원에서, 여기저기서 몇 번이나 휴일의 피크닉을 즐겼다. 이제 더 더워지고 여름이 완연해지면 야외의 피크닉을 하기는 힘들겠다. 5월 말을 향해가는 지금도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까지 오르고 있다. 봄 안녕, 정말 고마웠고 즐거웠다. 이제 여름이야. 여름에는 또 여름의 삶을 충분하게 즐겨야지.
3. 새로운 루틴
나에게, 우리에게 새로운 루틴이 하나 생겼다. 남자친구가 주말 당직근무가 있는 날에 행하던 루틴에 새로운 루틴이 더해졌다. 원래 있던 루틴은 이렇다. 남자친구가 당직근무를 하는 주말 전날엔 내가 퇴근 후에 남자친구의 집으로 가서 함께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 일찍 남자친구는 내가 먹을 아침밥을 차려놓고 따뜻하고 다정한 쪽지를 식탁에 올려두고 내게 인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나는 잠에서 덜 깬 채 남자친구에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고 침대에서 꼼지락대며 더 늦잠을 잔다. 피로가 다 풀리는 꿀 같은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침대에서 일어나 나는 남자친구의 쪽지를 읽고 남자친구가 해 둔 아침을 먹고 침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집을 나선다. 처음 몇 번은 남자친구네 동네 지리도 익숙지 않고 귀가하는 길도 익숙지 않아서 바로 집으로 왔지만, 남자친구네 집과 직장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빵집의 분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리고 남자친구의 직장 바로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커피 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새롭고 즐거운 루틴이 더해졌다. 나는 남자친구의 집을 나서면서 남자친구에게 "지금 나가, 이따 봐"하고 연락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빵집까지 드라이브를 한다. 신나게 빵핑(빵 쇼핑의 줄임말이며 내 삶의 낙이다)을 하고 나서 남자친구 직장 바로 근처의 커피 가게에 들러 달달한 커피 두 잔을 테이크아웃한다. 차에 빵과 샌드위치, 커피를 싣고 남자친구의 직장을 향해 가면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점심을 막 먹은 남자친구가 잠깐 밖으로 나온다. 당직근무를 할 남자친구에게 점심 후 달달한 카페인 포션과 밤에 출출할 때 먹을 샌드위치를 배달하고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집까지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초록으로 가득한 도로를 달린다. 기분은 상쾌하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맑고 쾌청하다.
사랑은 애타게 하는 게 아니라 아낌없이 나누고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면 절대 마음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낌없이 주고 후회 없이 표현해야 한다. 우리는 그걸 참 충분하게 실천하고 있다. 계절을 충분히 즐기는 것, 마음을 충분히 나누며 충분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에 있어 감사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갈수록 세월은, 한 시절은 빠르게 흐른다. 매일은 우리의 가장 젊은 날이다. 누군가와 함께 이 시절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음에 오늘도 감사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이 충분한 하루이기를 바란다. 햇살과 바람을 많이 쐬는 시절이기를 바란다. 모든 계절을 충분히 누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