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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Dec 29. 2022

연애일기 13. 겨울의 온도

모든 사랑에 실패하고 나면

연애일기 13.  겨울의 온도

헤어질 게 아니라면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따뜻하게 지내요.


연애의 본질은 체온을 나누는 일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추운 겨울에 더 가까이, 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지내야 하는데, 아마 누구나 머리로는 그걸 알고 있을 텐데, 그것이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의 본질에 부합하는 일일 텐데,

어찌 된 일인지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겨울에 이별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100편까지 쓸 수 있을 줄 알았던 내 연애일기의 주인공과 여름에 이별한 후,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재회하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았다. 그리고 겨울의 한 가운데에 헤어질 결심을 했다.


그토록 소중하고 애틋한 인연이었기에 몇 번의 헤어짐과 심한 다툼 후에도 다시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고 체온을 나누고 한정된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헤어지는 이유가 단 하나일 수는 없겠지만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어처구니 없을 만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영화 '500일의 썸머'(500 Days of Summer)에서 주인공이 썸머와 결별하고 아파하며 스스로의 삶을 다시 쌓아올리는 과정까지 모두 '썸머와의 500일'에 포함시켰던 점을 생각해본다. 헤어지는 과정도 다 연애의 일부라고 친다면, 어떤 연애는 헤어지고 나서도 몇 달 혹은 길 게는 몇 년 동안 그 과정이 한 쪽에서만 일방적으로 혹은 쌍방향으로(하지만 서로 알지 못한 채) 영향력을 가진 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정말로 끝이 나는 시점은 오직 스스로만 알 수 있다. 어쩌면 오래도록, 영원히 끝나지 않고 마음 한 켠에 남는 인연도 있을 것이다.(남들은 첫사랑이 그렇다던데, 나는 첫사랑을 낭만화하는 편은 아니다.)


헤어지는 게 잘 하는 일인지는, 헤어져봐야만 알 수 있다는 게 누구나 아는 딜레마.


모든 사랑에 실패하고 나면 알게 된다.

혼자의 온도를 견디는 일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는 걸.

나도 그리고 내가 만났던 이들도 결국 이토록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불완전한 존재끼리 끌어안으며 체온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서로 기대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게

많은 이를 웃게 하고 견디게 하고 살게 하고 울게 하고 상처받게 하고 아프게 한다.

나 또한 가장 보통의 존재로서, 누군가와 함께하기 위해 나를 바꾸어가면서까지 애써왔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혼자의 온도를 체감하면서.

 

헤어질 게 아니라면, 혼자의 온도를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면,

어떻게든 서로 상처내지 않고 끌어안는 법을 알아야 할 텐데,

누구에게나 쉽지가 않다.


다시 봄이 오면 옷차림처럼 마음도 눈빛도 웃음도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을까.

겨울의 온도를 홀로 견디는 모두에게

그리고 함께를 견디는 모두에게

이 계절에 조금 더 따뜻하게 지내라고 위로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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