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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고운 May 19. 2023

정신 산만한 콘텐츠 속에서

서해인, 『콘텐츠 만드는 마음』





  도서관 자료실 오픈 준비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메일함을 확인하는 게 나의 출근 루틴이다. 십 년 전만 해도 가끔 메일을 주고받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 모두 사라지고 대신 업무 메일과 뉴스레터만 차곡히 쌓여 있다. 귀여운 사진을 보내주는 <귀짤단>, 특정 주제를 놓고 책 두세 권을 연결해 소개하는 경향신문 <인스피아>, 민음사 인문 잡지 <한편>, 대중문화를 소개하는 <콘텐츠 로그>, 최근에 구독한 정윤주 작가님의 <뷔페뷔페>까지 차례로 메일을 클릭하고 스크롤을 내린다. 시간에 쫓겨 미처 다 읽지 못한 글들은 그대로 흘러 보내거나 점심 식사 후 남은 시간에 마저 읽는다.


   “관중은 시험관인데, 정신 산만한 시험관이다.”라는 벤야민 말처럼 넘실대는 콘텐츠 파도에 산만히 흔들리는 날들을 보내다 잘 정리된 뉴스레터를 읽고 있으면 뉴스레터 발행자는 콘텐츠를 진두지휘하는 선장처럼 느껴진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 서해인 에디터 역시 <콘텐츠 로그> 뉴스레터 발행인이다.


   『콘텐츠 만드는 마음』은 장르는 조금 가리지만 시간대는 전혀 가리지 않는 ‘보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콘텐츠 로그>에 담을 재료가 되어준 것들에 관한 이야기(1부), 보는 사람이 어떻게 만드는 사람이 되었지(2부), 일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쓴 다양한 콘텐츠 리뷰(3부). 이렇게 총 3부에 걸쳐 보여준다.


   오스카 시상식이 있는 날엔 이른바 “오스카 연차”를 쓸 만큼 콘텐츠에 누구보다 진심인 서해인 에디터는 무려 한 달 평균 120가지의 콘텐츠를 소비한다. 이 콘텐츠 소비는 소비에 그치지 않고 뉴스레터라는 콘텐츠를 만들어 구독자에게 발송한다.


   <콘텐츠 로그>는 10일에 한 번씩 발행하는 뉴스레터다. 콘텐츠 만드는 지난 10일 동안 본 것들을 로그의 형태로 나열을 하고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들을 두 가지를 골라서 관련된 설명을 붙인다. 그리고 마지막엔 다음 10일 동안 보고 싶은 콘텐츠를 덧붙여 발송한다.  <콘텐츠 로그>를 보고 있으면 하이퍼링크로 가득한 숲을 걷는 기분이 든다. 콘텐츠마다 링크가 걸려있어 클릭을 하면 글이나 영상, 팟캐스트, 책 사이트로 친절히 안내하는데 그중에 재미있는 게 꽤나 있어서 가끔 나는 데스크에 앉아 환각버섯을 먹은 사람처럼 모니터를 보며 실실 웃고 있을 때도 있다.


  서해인 에디터는 <콘텐츠 로그> 이전에 <mixtape 들불>연재를 통해 먼저 알게 됐다. <들불>에서 선정한 책과 K-POP을 연결하는 형식인데 나 역시 믹스테잎을 만드는 걸 한때 취미로 했던 터라 유심히 봤었다. 곡을 선정하고 그와 어울리는 앨범 커버를 만들고, 좋아하는 책 제목으로 타이틀을 붙이고 메일 본문엔 책 글귀를 적는 작업을 한때는 열을 올리며 만들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휴대폰에 음원을 넣기보단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니 그만두게 됐다. 그리고 워낙 유투브와 사운드클라우드에 믹스테잎을 잘 만드는 이들이 있어 누군가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소비하는 자로 돌아왔다.


   믹스테잎 만들기는 거의 잊혀질무렵 최근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 셋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해 보지 않겠냐고. 흔쾌히 승낙하고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음악을 디깅하는 밤을 보내고 있다. 3년 4개월 동안 꾸준히 뉴스레터를 발행한 그처럼 나 역시 다시 꾸준히 믹스테잎을 만들려 한다.


나는 다시 콘텐츠 만드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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