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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고운 May 19. 2023

너의 이름을 지어 주지 않을 겁니다



“너의 이름을 지어 주지 않을 겁니다.”


내게 친해짐의 척도는 언제나 이름 바르게 부르기로 시작된다. 고은이라 불리는 일은 이젠 너무 지겹고 고운이 아닌 고은을 적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 속으로 우린 친해지긴 글렀다 생각하며 작대기를 하나 더 그어준다. 저기요, 고운인데요.


이름에 관한 시는 김춘수가 아닌 임솔아 「다녀감」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특히 “십 년이 지나 네가 내 방보다 커진대도 너의 이름을 지어 주지 않을 겁니다.” 시의 마지막 행은 언제 읽어도 좋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호명을 전제하는 일이고 이름이라는 게 부를수록 그 존재가 특별함을 더해가며 각별함을 가지게 한다.


자신에게 특별한 존재일수록 애정을 가지는 게 때론 버겁고 힘이 드니 애초에 많은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그러니까 이름 같은 건 지어 주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고. 내게는 이 시가 그렇게 들린다.


어느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친구와 함께 좋아하는 여자애 이야기를 하다 그 이름을 목이 터져라 골목길에서 외치기도 하고 또 어느 영화는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한다. 바흐는 자신의 철자인 “B-A-C-H” (내림나-가-다-나)를 음계에 쌓아 올린다. 이름이 다 뭐라고 고작 몇 글자에 존재를 입히고 한꺼번에 떠오르게 한다.


“너의 이름을 지어 주지 않을 겁니다.”

이번 믹스테잎은 열 명의 이름을 호명하는 플레이리스트이다. 새벽에 들으면 그 매력을  더 하는 Big Thief의 paul(11월 내한 공연이 있으니 참고하자), 에드거 앨런 포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한 시 Annabel Lee,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이름 맞추기에 등장한 Debra. 그 외 Demi Moor, Sophie, Dorian, Archie, kyo, Sara, 로라까지.


이름을 호명하다 못해 노래로 만들어 부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그리고 나 역시 이름을 부를 것이다. 너무 좋아해서 지어 주지 못한 이름을.



다녀감. 그 말이 싫어요. 다들 다녀갔다는데

솔아 다녀감, 이라는 낙서를 찾았는데

나도 나를 다녀갔으면 좋겠는데

너는 내가 키운 유일한 식물.

십 년이 지나 네가 내 방보다 커진대도

너의 이름을 지어 주지 않을 겁니다.



임솔아 「다녀감」, 『릿터Littor』 2017년 8·9월호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Cro3-mqddZHHFScOepTyprAIwvymz9d4

링크를 클릭하면 믹스테잎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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