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후회란 이런 것일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물건을 가득 안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와 매우 흡족해하다 7시간이 지난 저녁이 된 지금 나는 그 물건 봉투를 바라본다. 매장 점원이 권하는 족족, “7천 원만 더 내시면 다음에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어요. 저는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라고 하며 손을 젓는 점원에게, 기꺼이 고마움을 표하며 물건을 가득 안고 돌아왔다.
오늘 나는 백화점에 있는 ‘브로우바’라는 곳을 갔다. 눈썹 정리를 해주는 곳이다. 6개월 전에 호기심으로 한번 갔다가 오늘 다시 그 기분을 만끽하러 다시 들렀다. 크림을 바르고 깨끗하게 눈썹을 뽑아주는데 눈썹이 뽑힐 때, 그때의 기분이 뜨끈하고 따끔하니 좋다. 하고 나면 내가 다섯 배는 예뻐진 것 같다. 그리고 메이크업해준다. 오늘 나는 아침에 선크림도 바르고 좀 더 하얗게 만들어주는 비비크림도 바르고 갔는데 내추럴한 생얼이라며 점원이 정성스레 메이크업해주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 점원이 자주 했던, 30분 정도 머물렀던 그 공간에서 그 점원은 “저는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라는 말을 다섯 번은 했다.
- 피부 톤을 높여주는 프라이머를 바르고, 어때요? 이거 하시면 마스카라 드려요. 저는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마스카라를 공짜로 주는데 사고 말고는 너가 잘 결정하세요.)
- 피부 결점을 보완하는 컨실러를 바르고, 어때요? 이거 하시면 브로우바 이용권 드려요. 저는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거의 4만 원짜리 브로우바 이용권을 주는데 사고 말고는 너가 잘 결정하세요.)
- 피부의 광채를 돋게 하는 광채 치크를 바르고, 확실히 다르죠? 이거 하시면 눈썹 펜슬 드려요. 저는 여기까지만 말씀드릴게요. (눈썹 펜슬까지 주는데 사고 말고는 너가 잘 결정하세요.)
여기서 두 개의 물건을 더 권했고, 나는 단순히, 열어놓고, 신중하게 선택할 것을 당부하며 권하기만 한 점원에게 총 21만 원어치의 화장품을 구매했다. 화장품도 아니고, 화장품을 바르는 털도 48,000원에 들어있다.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눈썹을 정리하고 다섯 배가 예뻐졌고, 메이크업을 하고는 일곱 배쯤 예뻐진 것 같았다. 이제 나는 이 가득 안긴 메이크업 제품들로 매일 일곱 배쯤 예쁠 예정이었다. 그렇게 나날이 예쁠 예정이었는데, 야근하다 저녁을 먹고 양치하러 들른 화장실에서 본 나는 오늘 오전, 눈썹을 정리하러 가기 전 그, 그 모습 그대로의 내추럴 나였다.
어디로 날아간 걸까. 나를 반짝이게 하던 그 광채 치크는, 어디로 날아간 걸까. 나의 모공을 꽁꽁 숨겨주었던 그 프라이머는 말이다. 나는 급히 달려와 오늘 산 화장품을 확인했다. 영수증을 확인하고, 반품되는지를 확인한다. 안도한다.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21만 원을 회수하러 가야지. 그래야만 한다. 그 점원을 볼 낯이 없다.
“열심히 설명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오늘 저녁까지만 예뻤더라도 야심 차게 화장품을 다 뜯어버렸을 텐데요. 누구보다 제가 속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