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ngtake Apr 06. 2023

# 죽음 : 이라는 구체적인 사건 앞에서

얼마 전 이모가 뇌졸중으로 죽었다. 이모는 그야말로 갑자기 죽었다. 평생 돈을 벌기 위해 고생했고, 그 돈으로 산중 터기에서 내려와 평지에 집을 얻었고, 그 집에서 딱 1주일을 살고 죽었다. 1주일간의 호사를 누리고 이모는 아깝게, 차갑게 갔다.      


이모가 죽고 나는 내가 죽고 난 이후를 생각했다. 청산해야 할 채무가 있는지, 나의 짐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들에게 어떤 멋진 말을 남길까 생각했다. 돈이야 워낙 없는 살림이니 줄 것도 받을 것도 딱히 없었다. 다만 한 달씩 미리 끊어놓는 기차표가 있어 남편에게 알렸다.      


   : 내 폰 비밀번호 알지? 내가 죽으면 코레일

           들어가서 1달간 미리 끊어놓은 기차표를

            반환해야 해. 돈 나가면 안 되니까.

남편 : 안 돼. 아무것도 만지면 안 돼. 의심받아.

      :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텔에 남겨놓을

             테니까 꼭 취소해.       


그러고 집을 돌아보니 옷이 아직도 많아 보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집처럼 입을 수 있는 최선의 옷들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살고 싶은데 아직 그렇게 되진 않았다. 고급 옷이 없으니 옷은 다 처분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내가 작성한 모닝페이지 노트가 있는데 그건 일기도 아니고 뭣도 아니니 절대 읽어보면 안 되고 버려야 한다고 알렸다.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해줄 것 같아 더 할 말이 없었다.      


이랬다. 나는 내가 죽고 나서를 생각해 본 적은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죽을지, 죽기 직전의 나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는 박중철 의사의 책을 읽고 놀라움과 감동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사는 것의 연장선에 있다. 이제 삶의 완성으로서의 좋은 죽음을 이야기하자.”는 의사에 말에 내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죽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인은 좋은 죽음을 바라면서도 대부분 그 바람과는 달리 비참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인생을 아름답고 품위 있게 마무리하기보다는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노화, 또는 질병과 싸우면서 치료 과정 중에 사망하는 것이 오늘날의 흔한 죽음의 모습이다.”(책 p.57)     


죽음 앞에 이르는 여러 가지 사정 앞에서 최대한 덜 아프고, 나 자신을 경멸하지 않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환경에서 나의 존엄을 지키며 죽어야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무의미한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를 하지 않고, 인공영양을 하지 않고, 쓰지 않아도 되는 의료비를 쓰지 않고 죽고 싶다(나는 보험이 없어 돈도 큰 걱정 중 하나였다).      


나의 이 결심을 가족에게 잘 전달했다. 힘들고 당황스러운 상황일 때 허둥대지 않을 수 있는 결정을 미리 할 수 있게 해 준 박중철 의사에게 깊이 고맙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집 보안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