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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take May 04. 2023

# 2차 피해 : 비난, 잔소리, 훈수 중 하나

회사나 조직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면 중요한 것이 세 가지 정도 된다.   

   

❶ 비밀유지 : 피해자, 가해자, 꼭 알아야 하는 관계자 외에는 사건을 몰라야 한다.

❷ 피해자보호 : 가해자로부터 분리되고, 사건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

❸ 엄정한조사 :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사건의 본질에 집중한 전문성 있는 조사여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원래의 성희롱 피해 외에,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모르는 사람은 잘 없다. 피해자에게 피해를 주기로 작정하고, ‘2차 피해’를 주는 사람은 잘 없다. 물론 내심은 알 수 없으니 악의적인 기획력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요즘은 2차 피해도 조사 대상이고, 징계를 받을 수 있기에 가해자에 대한 보통의 부채감이 있지 않고선 잘 행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죄다 진심으로 피해자를 걱정하고, 조직을 염려하고, 조속히 사건이 해결되기를 원해서 하는 이야기다.


내가 경험한 사건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2차 피해’ 대략의 카테고리는 이렇다.      

❶ 스캔들화 : “둘이 밤에 같이 퇴근하고, 술 마시는 것도 봤다는데... 그럼, 썸 아닌가?”

❷ 평판조회 : “피해자가 평소에 그렇게 근태가 안 좋다면서? 근평도 별로던데...”

❸ 오지라퍼 : “둘 다를 잘 알아서 하는 말인데, 그간 세월을 생각해서라도 좋게 잘 해결해.”

❹ 물타기식 : “여태 잠잠하다 인사철에 갑자기 왜? 이참에 보내버리려고 그러는 거 아냐?”

❺ 시대--탓 : “다 이게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야. 옛날이 뭐야 작년에도 괜찮던 건데!”  

    

내가 상담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많이 듣는 단골 멘트쯤이다. 이 멘트들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부서라면 성별 무관하게 같이 퇴근하고, 술도 마시곤 한다. 지각을 자주 하는 피해자도 성희롱 피해를 겪을 수 있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둘 다 알지만, 둘 사이에 사건이 뭔지는 잘 모르고, 피해를 신고하는 시기가 인사철만 비껴가란 법은 없고, 뭐든 앞서 배우는 사람이 젠더 이슈에 대해서만 무지하여 시대 탓만 할 수 있는가? 즉, 이 다섯 가지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희롱 피해’라는 사건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

     

성희롱 교육과 관련한 논의가 있으면, 최대한 ‘사례’를 열거하고 ‘하면 안 되는 말’을 알려달라는 요구가 있다. 2차 피해가 될 수 있으니 ‘나쁜 말’을 문장으로 암기하고, ‘나쁜 행동’을 학습한다면 정녕 실제에서 써먹을 수 있을까? 성희롱 관련 상담과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건, 세상에 같은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는 것이다.

      

우린 각자 사람이고,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관계가 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인 만큼 어떤 말과 행동이 각자 다른 맥락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똑 떨어지는 기본값은 존재하기 어렵다.    

   

‘맥락’을 적절히 잘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확인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을 당사자가 들어도 괜찮은가?” 질문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이 말을 듣는다면 정녕 도움이라 느끼고 위로받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이것이, 2차 피해를 판단하는 시작쯤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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