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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take May 11. 2023

# 숙박 출장 : 혼자 잠들지 못하는 병과의 동침

➜ 처음 혼자 하는 2박 3일간의 강릉 출장이다. 나름 도심에서 번화하며 높은 층을 가진 호텔을 잡았다. 늦게 일을 마치고 프런트로 가서 체크인했다. 어찌 된 일인지 나의 체크인을 마지막으로 두 명의 직원이 짐을 싸며 퇴근을 준비하는 눈치다. 자고로 호텔은 프런트가 있고, 밤새워 근무하는 직원이 있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모두 퇴근한단 말인가. 나는 객실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로비를 얼쩡거리다 그들이 모두 퇴근하는 것을 확인하고 객실로 올라갔다. 가슴이 쿵쾅하기 시작한다.     

 

➜ 객실로 들어간다. 침대 밑을 확인한다. 옷장을 확인한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했고, 벽 틈을 살핀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진 않은지 꼼꼼히 체크한다. 창밖으로 다른 객실에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어찌 된 일인지 불 켜진 방이 없다. 가슴이 쿵쾅한다. 불안함을 안고만 있을 수는 없다. 1층으로 내려가 건물 밖으로 나간다. 정녕 이 15층 건물에 나밖에 없는 것인가 확인해야 했다. 사실이었다. 이 건물에는 나뿐이었다. 아무리 평일 도심 안의 숙소라지만 나뿐이라니 가슴이 더 쿵쾅이기 시작한다. 이 호텔에 나 혼자 투숙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직원들이 있다....    

 

➜ 나는 다시 객실로 돌아와 침대 밑을 확인하고 발 빠르게 움직인다. 우선 테이블을 문 앞에 옮겨 놓고, 그 위해 소화기를 올린다. 완강기가 두 대 있다. 무게가 있는 만큼 그것도 문 앞으로 옮겨놓는다. 티브이를 켜고 여유로운 척해보지만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벌떡 일어나 다시 침대 밑을 살펴보고 다시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불을 켜고, 티브이를 켜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해 본다. 낮에는 조사하고 밤에는 조사받는 기분으로 이틀 밤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3일째 나는 봉긋 솟은 치질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서 나는 한없이 입을 벌리고 졸았고 잤다.      


➜ 나는 혼자 잘 자지 못하는 병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내가 혼자 자본 경험이 없어서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혼자서 자는 몇 번의 밤을 겪고 나의 불안이 그냥 단순히 무서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오는 일도 약간 무섭다. 그렇다고 물러서진 않는다. 불 꺼진 집에 내가 먼저 들어가야 하는 경우 나는 내 뒤로 퇴로를 우선 확보한 후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방 안의 문을 한 번씩 다 열어본다. 문 뒤에 사람이 숨어 있을 수도 있으므로 꼭 끝까지 열어 문틈으로 문 뒤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베란다, 창고, 옷장을 열어 칸칸을 확인한다. 빽빽한 옷 사이로 사람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옷을 반으로 나누어 속을 확인한다. 그러면서 용기를 낸다. 사람이 숨어있다면 마주해야 한다고. 숨어있다가 내가 자는 사이에 나오면 더 낭패이니 마주쳐야 한다면 지금이 오히려 낫다고 용기를 낸다.    

  

➜ 이러한 내가 강릉 출장 이후 요즘 줄줄이 숙박 출장을 다니고 있다. 다만 이전의 경험으로 호텔을 위장한 모텔이 아니라 프런트가 있고, 밤에 퇴근하지 않는 직원이 있는 호텔을 잡는다. 그리고 침대 밑 점검도 입실한 후 한 번으로 횟수가 줄었고, 티브이를 켜놓지 않고, 불을 끈 채 잘 수 있다. 이전 출장에선 자다가 벌떡 일어나 방문과 침대 밑을 열 번쯤 살폈다면, 이번엔 덮은 이불 안에서 눈만 떴다 다시 감을 수 있었다. 덕분에 이번 출장에선 치질을 만나지 않을 수 있었다. 나의 병이 호전되는 상태일 것이라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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