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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ngtake Jun 16. 2023

# 지하철 : 민원의 폭주 속에 아슬아슬 집 가는 길

6시 정각 퇴근하며 집으로 가는 지하철 1호선을 타는 일은 참 힘들다. 경기도 쪽으로 들어가는 지하철은 이미 오만 원은 넘은 상황이다. 좌석 사이 통로에 세 줄이 만들어졌고, 네 줄을 만들려는 사람과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 사이의 신경전과 몸싸움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오늘은 가까스로 달려 열차 맨 앞칸에 슬라이딩했다. 안으로 들어서는 데 철제가 내 허벅지를 막는다. 무엇인고 쳐다보니 자전거다. 누군가 이 퇴근 시간의 엄혹한 시기에 작은 자전거도 아닌 성인용 자전거를, 완벽히 통로 중앙을 가로막고 주차한 것이다. 순간 나는 이 차주가 누구인가 궁금했다. 자전거의 주변을 살폈다. 좌석 맨 끝에 앉아서 자전거 핸들의 한쪽을 쥐고 앉은 ‘그’가 주인인가 생각했지만 고요하게 눈을 감은 모습을 보고 이 차주를 도와주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내가 타고나서는 더 이상 밀어서도 사람이 타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안내방송이 나왔다.

지금 자전거 때문에 차내가 혼잡하다는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자전거와 함께 다음 정거장에서 하차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를 보고 주인이 아님을 확신했다. 안내방송에 아무런 동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리며 화내기 시작했다. “씨, 다 이 자전거 때문이잖아.” 세 사람의 욕이 오갔다. 그다음 정거장에서도 자전거를 그대로였다. 다시 한번 더 안내방송이 나왔다. 욕을 해도 상황이 그대로이자, 하차한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기관사가 있는 곳의 창문을 두드려 기관사를 불렀고, 자전거를 내리라며 항의했다.  

    

이 와중에 한 대의 자전거가 또 승차했다. 그 자전거는 접이식 자전거였다. 나는 그 자전거를 보고 좌불안석이 되었다. 유니크하게 접이식 자전거를 들고, 한 손에는 책을 들고 멋지게 승차했는데 지금의 이 사단을 모르는 그는 부지런히 자전거를 태웠다. 그가 타고나서도 다시 한번 안내방송이 나왔다.      


사람들은 내릴 때마다 자전거에게 화를 냈고, 나타나지 않는 주인에게도 화를 냈고, 욕을 했다. 그러다 더 이상 민원을 어쩌지 못했는지 기관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자전거를 보고는 깜짝 놀라더니 “주인이 누굽니까?” 찾았다. 나는 당시 주인이 매우 궁금했던 터라 비집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절대 그 근처를 떠나지 않고 지켰다. 핸들을 잡고 있던 그가 눈을 떴다. 기관사와 눈이 마주쳤고, “출퇴근 시간에는 자전거 갖고 타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나는 조마조마했다. 기관사가 무리하게 그를 내리게 하면 어쩌나 싶었다. 경기도 굽이굽이 이 벌판으로 나아가는 구간에서 그가 내린다면 어찌 집에 갈까 싶었다. 나는 그가 읍소하여 이 상황을 지나가기를 바랐다. 버티기를 바랐다. 이때, 그가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가야 하는데 딱 두 마디를 남겼고, 그는 다시 눈을 감았고, 그 앞에 서 있던 기관사는 딱 3초 그를 응시하고는 나왔던 곳으로 들어가 문을 크게 닫았다.     

 

나는 안도했다. 오늘 그가 집에 갈 수 있겠구나. 앞으로 또 민원이 나오더라도 버티겠구나 싶었다. 이후로도 차내가 덥다는 민원, 심지어 “차내가 복잡하니 가방을 앞으로 매달라”는 안내방송이 단독으로 나오는 것을 듣고 나는 묘하게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너무들 한다....’     


지하철을 내리면서 유리창 너머로 기관사의 옆얼굴을 본다. 이 줄줄이 늘어진 비엔나에 혼자 운전하는 기관사를 보고 짠함과 이런 엄청난 일을 혼자 하게 하는 서울교통공사에 매우 화가 났다. 한 번에 수백 명의 사람을 태우고 운전하는데, 이렇게 시시각각 민원이 폭주하는데, 이 일을 오롯이 ‘혼자’ 대응하게 한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일인가 묻고 싶다. 정말 이건 아니지 않은가, 묻는다. 정말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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