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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 Aug 25. 2020

나는 원래 그래.

야, 솔직히 누구나 원래 그래.



얼마 전, 아직 신혼을 즐기고 있는 친구 부부와의 식사 자리가 있었다. 수 번을 잔을 부딪히며 '짠'을 외치고, 웃고 떠들며 넷은 어느새 달큰하게 취했다. 입 밖으로 내어 놓을 주제와 단어를 조심스레 고르던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얼굴에 오른 홍조와 함께 진솔한 이야기들이 따라왔다. 하나 둘 서로의 솔직함을 꺼내놓던 중 친구가 우리를 향해 가사 분담을 둘이 어느 정도의 비율로 하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우리는 딱히 정해둔 규칙은 없고, 서로 시간적 여유가 되는 사람이 눈에 보이는 일거리가 있는 경우에 자발적으로 한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보통은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음식과 청소를 주로 하고, 쓰레기 정리나 애견 목욕 같은 부분은 남편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말이 나온 김에 궁금해서 나 또한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비율로 하는지 물었다. 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난 원래 그런 거 못해서 남편이 혼자 다 해. 너도 남편 시켜."였다.



어색한 친구 남편의 웃음소리 뒤로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민망해진 내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술 때문인지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임을 강조하며 여러 이야기를 이었고, 자꾸 듣다 보니 일순간 가슴이 갑갑해졌다. 그 말이 꼭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나는 바뀔 생각이 없으니 니들이 이해해라.'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가사분담에 대해 친구 부부 둘이 조율할 의사가 있어서 우리에게 조언을 구한 것도 아니고, '난 못하니 앞으로도 안 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도 없었으면서 굳이 우리 부부에게 가사분담에 대해 물어본 것에 대한 의도를 아직도 전혀 모르겠지만. 뭐 어찌 되었건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친구가 자꾸만 반복하던 '나는 원래'라는 말이 계속해서 신경 쓰였다. 그 말을 자꾸만 반복하는 이유는 어쩌면 표면적으로는 우리 부부를 청자로 두고, 자신의 입 밖으로 그 말들을 내놓으면서, 옆에서 듣는 자신의 남편에게 '나는 원래 그렇다'는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다 못한 내가 조심스레 조금의 타협도 없는 것인지, 환경이 바뀌었으니 방식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지 물었지만 친구는 강경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전혀 변할 생각 없는데. 남자가 물리적으로 여자보다 힘이 세니까 다 남자가 해야지. 회사에서도 힘든 일은 다 남사원이 하는 게 맞고. 그리고 남편은 부족한 게 많은데 지금도 내가 많이 봐주면서 사는 거야."



아아. 순간 한 인간에 대해 15년 동안 쌓아온 내 감정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지, 지금까지 나는 왜 이런 친구의 생각들을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여태 저 친구가 외쳐왔던 페미니즘이 정말 이런 것이었는지.



물론 부부 둘 간의 일이니 이후로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친구에 대한 내 마음은 어느새 짜게 식어 있었다.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방법이나, 상대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배려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쩐지 그 날 모두가 함께 야외 식사를 준비하면서도 손 하나 까딱 않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집에서도 난 이런 일을 하지 않고, 하기도 싫으니까. 내가 안 해도 어차피 누군가가 하니까.라고 생각하니까 셋이 종종거리며 상을 차리는 동안 그냥 서 있었구나.




누구나 다 '원래' 그렇다. 귀찮은 일은 누구나 원래 하기 싫고, 더러운 것은 누구나 만지기 싫다. 힘을 쓰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모욕적인 언사나 명령조의 지시를 들으면 '원래' 누구나 모멸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서서 그 일들을 하는 이유는 같은 자리에 있는, 같은 환경에 속한 사람을 배려하기 위함인걸 왜 모르는 걸까. 그 폐로운 일들을 그들도 좋아서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모든 일에 정답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글쎄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나는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팔을 걷어붙이고 싱크대 앞에 서지 않도록 설거지를 해두고 싶을 것 같다. 내가 만질 일 없게 미리 쓰레기를 정리해둔 남편의 흔적을 보면서 고마워할 것도 같다. 나와 남편이 자발적으로 성가신 일을 하는 이유는 '내가 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하게 되니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어찌 되었건 모두가 사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가장 기본 바탕이 되는 자세는 상대를 그래도 '사람'으로 존중해 주는 것 아닐까.

나와 너 이에 나와 '내 친구'로, 남과 여 이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그 날 친구가 화장실 간 사이에 친구 남편 우리에게 "혹시 제가 힘들어하는 티가 많이 나나요?"라고 물어왔다. 민망해하면서도 답을 구하는 눈빛을 띄었던 친구 남편의 표정이 떠오를 때마다 잇사이로 모래가 씹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그녀의 친구이기에 섣불리 대답할 수가 없어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지금도  말을 물어온 이유가 궁금하다. 그때 그는 어떤 말이 듣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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