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은 주말 점심이었다. 요즘 외식도, 배달도 자제하던 우리 부부가 오랜만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오빠의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는) 떡볶이를 배달 주문해 놓은 참이었다. 떡볶이와 함께 할 영화를 찾던 중 우연히 보게 된 마루 밑 아리에티. 소인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도 그림체를 본 순간 필시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루 밑 아리에티
소인인 아리에티와 그의 가족들은 인간의 집 아래, 그러니까 마루 밑에 자신들만의 집을 짓고 생활한다. 아리에티의 방은 온갖 풀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예쁜 갈색 머리를 포니테일로 올려 묶어 빨래집게로 고정한다. 그들은 인간이 잠든 틈을 타 마루 위 주방으로 잠입해서 필요한 것들을 챙겨 오는데, 그들 말로 ‘빌려’ 쓴다고 했다. 그렇게 인간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조심 고리를 걸어 줄을 타고 찬장을 내려오는 위험을 겪으며 얻는 것은 각설탕 하나, 휴지 몇 칸 등 아주적은 양이다. 명백하게 훔쳐 쓰면서도 당당히 ‘우리는 빌려 쓰는 거다’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니, 귀여워 웃음이 나면서도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남편과 나 사이에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적성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나를 보며 남편은 ‘아이가 없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나는 회사를 그만둔 뒤 본격적인 ‘하고 싶은 일 찾기’를 시작했다. 사실 처음 몇 달은 잠깐 쉬다 회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끝이 좋았던 덕분인지 마지막 회사에서도, 이전 직장에서도 제안이 왔기 때문에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회사를 다닐 수 있다는 이유 모를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쉼을 위해 쉬는 기간이 아님을 자각하고, 참 많은 것들을 배우러 다니며 여러 시도를 했다.
그렇게 어렵게 한 분야를 정했고, 공부를 하며 어느 정도 가닥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마저도 돈벌이와는 거리가 있는, 기약이 없는 분야기에 아직도 하루에 수 번은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배려를 해준 남편이 참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한 마음을 없앨 수가 없는 거다. 얼른 돈을 벌어 살림에 보탬이 되고 싶으면서도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가, 평생을 참으며 살게 될 거란 생각을 하면 마음이 갑갑해졌다. 참 배부르고 철없는 투정 같으면서도 이런 복잡한 마음이 뭘까, 생각하던 중에 ‘빌려 쓰는 사람’이라는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온 것 같다. 빌려 쓴다. 빌린다.
늦은 밤에 인간 몰래 인간의 것을 빌려 쓰던 아리에티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낀 마루 위 인간 쇼우는 아리에티가 필요로 하는 각설탕을 곱게 싸서 마루 밑으로 가는 입구에 놓아둔다. 하지만 아리에티는 집 앞에 놓인 각설탕을 가져가려다 이내 발길을 돌려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놓는다. 빌려 쓰는 사람에게는 빌려 쓰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과정이고, 노력인 걸까. 그 과정마저 없이 그냥 받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걸까. 어차피 몸은 쉬면서도 늘 불안해하며 뭔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나처럼.
요즘 학업에 나태해진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빌려 쓰는 사람이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런 모습일까? 글을 쓰다 막히면 노트북을 덮어 버리고, 입맛에 맞는 책만 골라 읽으며 고전에는 도무지 손을 대지 않는 내 취향에 실망하고, 끈기 있게 매달려서 뭔가를 해내기보단 그저 적당히 적당히 하고 넘어가려 하는. 오히려 회사 일을 할 때 더욱 열심이었던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면 쓴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