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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ti Jul 26. 2021

‘너를 보는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작년 이맘때쯤 A(시츄, 11살)의 왼쪽 귀 위쪽에 작은 사마귀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기존에 앓고 있던 다른 질병 치료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처음엔 새끼손톱 삼분의 일 정도 크기였던 사마귀가 어느새 눈에 띌 정도로 커져 강낭콩만 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나이도 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굳이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

또 이런 사마귀는 재발이 필연적이라 아예 피부를 도려내야 하는데, 지금 A의 사마귀는 귀 뿌리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굳이 이 나이에 마취 및 수술 위험을 감수하고 제거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었다. 이렇게 말씀하시니, 내가 보기에 괴롭다고 굳이 수술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예쁜 A의 얼굴에 코로나바이러스를 닮은 우둘투둘한 사마귀가 달려 있으니 나로서는 속이 상했다.

어떨 때는 병변에 피가 맺혀 있기도 하고,  피를  집안에 바르고 다니기도 했다. 피가 나는 곳을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준  시간이  지나면 검붉은 딱지가 잔뜩 생기고, 씌워둔 넥카라가 무색하게 벽이나 이불에 귀를 비벼 다시 피가 나는 순의 반복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언제부턴가 나는 괜히 왼쪽 귀를 피해 A의 사진을 찍고, 사마귀가 나오지 않은 사진을 골라 SNS에 업로드하곤 했다. 사마귀가 안 보이는 사진이라고 해서 A가 아닌 것은 아니잖아. 원래 이 예쁜 얼굴이 A인걸.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그러다 며칠 전, 아는 언니가 오랜만에 집에 놀러 왔다. 언제나처럼 양손 가득 내가 좋아하는 스콘을 잔뜩 사든 채였다.

A도 여느 때와 같이 반갑게 언니를 맞이했다. 반가움을 가득 담은 둘의 호들갑도 잠시, 어느새 엄지손톱만큼 커진 사마귀를 목도한 언니가 가만히 앉아 A를 쓰다듬으며 슬며시 중얼거렸다.


“A는 꼭 머리핀을 달고 있는 것 같아. 항상 예쁜 리본을 달고 있구나 A야.”






주방에서 분주히 자두를 씻던 내 손이 멈췄다.

순간 누군가가 다가와서 내 등을 한 대 세게 치고, 너 부끄럽지도 않냐고 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쪼그리고 앉아 검지 끝으로 A의 머리를 쓸어주는 언니와, 눈을 반쯤 감고 귀를 뒤로 젖힌 채 그 손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A가 보였다.


A를 대하는 나와 언니의 자세가 다른 것이 아니다. 아니 그것도 다르지만 그것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오랜만에 만난 예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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