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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Jul 02. 2019

[9] 제로페이가 제안하는 제로섬 게임

- 일반인 시선의 정치사회 에세이 '우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제로페이'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제로페이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탄생된 새로운 결제 시스템으로, 2018년 12월 시범 서비스를 개시한 뒤, 올해 2월부터는 전국으로 넓혀 시행 중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사업 여건이 어려워진 개인사업자들을 지원하겠다는 의도로 시작됐으며, 연매출 8억원 이하의 자영업자들에게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이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기에 앞서 박원순 시장이 '서울페이'라는 명칭의 간편 결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시장 외에도 몇몇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소상공인들을 위한 결제시스템 구축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고, 그 해 6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전국단위의 '소상공인 페이'를 공식 발표했다. 곧이어 7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결제 시스템의 명칭을 '제로페이'로 통합한 뒤, 전국 단위 서비스로 출범하게 된 것이다.


정부, 여당 및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도하는 사업이다보니, 제로페이의 사업 속도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빨라지는 사업 속도에 맞게 그 비용도 빠르게 증가했는데, 초기 플랫폼 구축비용으로 39억원 정도가 소요되었다. 운영비용은 매년 35억원 정도로 추산했으며, 2019년 상반기 제로페이의 홍보/마케팅 비용으로 약 60억원 정도가 쓰여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도 모잘랐는지, 중소벤처기업부는 '제로페이 관련 추경 요청 예산'을 통해 인프라 구축비용 50억 및 홍보-마케팅 비용 26억원을 추가로 배정한 상황이다. 1년간 운영비용과 올해 예산을 모두 합하면 약  171억원으로, 어마어마한 국민의 세금이 제로페이에 쓰여질 예정이다.


<출처 : 머니투데이>

그런데, 제로페이의 실적은 매우 처참한 수준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제로페이 결제건수는 61,790건, 결제 금액은 13억 6,058억원이었다. 서울시의 올해 목표 금액은 8조 5,300억원으로 약 0.015% 수준에 불과하다. 제로페이는 고객의 은행 계좌에서 판매자의 은행으로 돈이 송금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금감원 자료 외 추가적인 실적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제로페이 가맹점수가 20만개를 돌파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무리한 활성화 정책으로 늘어난 숫자일 뿐 실질적인 제로페이 이용 확대 정책이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실적 결과가 얼마나 저조했는지,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업무추진비, 물품구입비, 여비 등 관서 운영 경비를 지급할 때 사용하는 정부 구매카드에 '제로페이'를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구매카드는 건당 500만원 이하 소액 경비를 지출할 때 사용하는데, 2018년 연간 사용 실적은 약 7,181억원 수준으로 확인되며 향후 대부분의 결제가 제로페이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봐도 실적을 부풀리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직 시장에 정착도 안된 제로페이에게 '밀어주기', '관치페이'와 같은 조롱 섞인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로페이의 참혹한 결과와 조롱 섞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 그리고 박원순 시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로페이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접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이 사업의 근본을 흔들면서까지 말이다.

최초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제로페이는 이제 CU, GS25 등 편의점 4만 3,171곳과 배스킨 라빈스, 던킨도너츠 등을 운영하는 SPC그룹의 매장들에서도 이용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스타벅스에서의 사용 여부도 현재 논의 중이라고 한다.


중요한 사실은, 해당 브랜드들의 가맹점주들만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직영점을 운영하는 대기업들까지도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편의점들의 경우 본사 직영점들까지도 모두 제로페이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며, SPC 브랜드들의 직영점 215곳 역시 이에 따른 혜택을 보게 될 전망이다. 스타벅스는 전 매장이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스타벅스에서도 제로페이 결제가 가능해진다면 가장 큰 혜택을 누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제로페이 관계자는 '시장 확대가 먼저이기 때문에 몇몇 기업들이 일정 부분 혜택을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라고 이야기했는데, 앞뒤가 맞는 이야기를 해야 납득하지 않겠는가? 제로페이 사업의 본래 취지나 정부 및 여당의 스탠스 문제를 떠나서 '굳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제로페이를 추진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말이다.


제로페이는 가치를 나눠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업이 되진 않을 것이다.

제로페이는 우리에게 '제로섬 게임'을 제안할 뿐이다. 그들이 제안하는 게임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1] 소비자에겐 혜택'ZERO'페이

제로페이 사업을 통한 혜택의 파이는 대부분이 판매자에게로 향한다. 애초에 시작 자체가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의 실질 소득 증대를 목표로 했기 때문인데, 소비자들로 하여금 제로페이를 사용하게 할 만한 유인책들이 별로 없다. 소득공제율 40%는 여전히 관련 법이 통과되지 못했으며, 설령 40%로 확대된다고 해도 별다른 효과는 없을 것이다. 이미 체크카드의 소득공제율이 30%때문이기도 하고, 체크카드와 제로페이는 모두 신용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 측면에서의 접근성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가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이용실적에 따른 고혜택'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몇 천원에서 몇 만원에 달하는 연회비를 기꺼이 내면서도 신용카드를 사용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제로페이는 판매자에게 유리한 것이지, 소비자에게는 '저혜택' 결제 서비스일 뿐이다. 판매자가 이익을 얻는 대신, 소비자의 이익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2] 제로페이 이용 증대 -> 카드사의 수익 감소 : 피해자는 누구?

제로페이는 구매자의 계좌에서 판매자의 계좌로 송금되는 방식이므로, 제로페이 결제비중의 증대는 곧 카드결제 건수 및 수익의 감소로 이어진다. 이미 카드사들은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높은 수수료를 받고 있다는 이유로 적폐 이미지를 뒤집어쓴 바 있으며, 수수료율을 낮춰 수익에 큰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제로페이 이용이 증대되어 카드결제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면, 카드사들은 몸집 줄이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인적자원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신규 채용의 문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낮아진 수익성을 극복하기 위해 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혜택이 대폭 축소될 것이며, 카드론이나 리볼빙, 현금서비스 등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가뜩이나 1금융권 대출 문턱이 높아지고, DSR 규제가 심화되면서, 2금융권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서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카드사들은 앞다퉈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릴 것이다. 높은 금리로 인해 카드사들은 일정 부분 이익을 만회하겠지만, 금융비용 부담 증가 및 신용도 하락 리스크 등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현 정부의 스탠스라면 이마저도 법으로 규제할 것이다)


[3] 아낌없이 주는 '은행' : 출연금은 강요받고, 수수료 수익은 사실상 포기

최근 정부는 제로페이를 민간법인(SPC)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은행들에게 출연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이 받은 공문에 최소 출연금 10억원이 명시되었고, 출연금은 법인 설립 후 기부금으로 처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도둑놈도 이런 도둑놈이 없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전적으로 내부 판단으로 결정하면 된다'라고 말했지만, 은행이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는 제대로 운영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심지어 은행들은 제로페이 플랫폼 구축에서부터 많은 비용을 '상납'한 바 있다.

제로페이의 특성상, 은행 계좌 간 거래로 결제가 완료되는데 여기에 드는 수수료를 거의 제로로 낮췄기 때문에 이 서비스를 통한 실익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여기에 민간 법인화에 따른 비용까지 내라고 하니, 은행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더군다나 시중은행 중 다수는 본인들의 카드사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제로페이 결제건수 1,2위 은행인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정부가 예쁘게 봐줘서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가족의 수익 악화에 속이 타들어 갈 것이다.


[4] 카드 VAN사 수익성 감소

<출처 : 서울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앞으로 제로페이는 편의점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VAN사의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졌다. 상기 그림에서와 같이 VAN사의 수수료 수익은 너무나도 낮은 수준으로, 일각에서는 보급이 확산될수록 수익이 더 낮아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을 정도다. 서울시는 '해당 수수료율을 적용할 경우 제로페이에서 발생하는 전체 수수료 수익의 10% 수준이며, 이는 사업 초기 단계부터 이미 협의된 부분'이라고 답을 내놓았다.


원래 편의점에서 신용카드로 결제가 이루어질 경우, VAN사는 결제액의 약 0.11%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제로페이로 인해 수익이 반토막이 날 예정인데, 이를 반길만한 업체가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제로페이 결제 연동을 위해서 포스기 업그레이드를 필수적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정부는 이 비용을 4만원(QR코드 리더기 비용 2만원+업그레이드 비용 2만원)만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지속적인 관리는 하지 말라는 것인지, 상당히 의심스러운 비용 책정이 아닐 수 없다.


[5] 제로페이의 도입과 정착, 운영에 들어가는 국민의 세금

상기 언급했듯이, 제로페이에는 수많은 세금이 들어가고 있다. 언론에서 내놓는 내용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아주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2019년에만 171억원의 비용이 들어갔고 앞으로도 매년 35억원 가량의 운영 비용이 필요할 만큼 덩치가 큰 사업이다. 심지어 세금이 들어가지 않는 곳에는 참여하는 금융사들이나 VAN사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최종적으로 국민의 부담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렇듯 정부와 여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특별한 출혈없이 제로페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자산으로 만들어 가고 있으며, 향후 어떠한 형태로든 자영업자들의 표를 얻을 때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업을 강행하여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향후 그 결과를 아름답게 포장하여 국민들의 표심을 얻는 도구로 활용할 것이라는 뜻이다.


제로페이는 처음부터 태어날 필요가 없었다.

국민들이 신용카드를 80%에 가까운 비율로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이용량에 따른 고혜택, 그리고 '외상 거래의 편리성' 때문이다. 신용카드도 엄연히 신용거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달 월급 날짜에 맞춰 자신들의 소비를 계획하고, 받은 월급으로 그동안의 신용 거래들을 정산한다. 체크카드의 소득공제 비율이 30%로 신용카드의 15%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체크카드의 사용량은 여전히 20%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국민들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사용하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계좌에 돈을 넣고 이를 꺼내 써가며 사용할만한 '자금적 여유'가 없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출처 : 에너지경제>

박원순 시장이 만들어 낼 결과는 '제로페이'가 아닌 '대권페이'가 될 것이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로페이가 박 시장의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열망대로 제로페이가 성공하든 -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무너지든, 사실 박 시장은 특별히 잃을 것이 없다. 어차피 결과는 '자영업자들의 가처분 소득 증대를 위해 노력한 정의로운 시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제로페이는 파이를 키우는 사업이 아니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누군가는 그만큼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정치향'이 함유된 제로섬 게임에는 너무나도 많은 비용이 투입됐고, 이익을 보는 자가 누구인지는 갈수록 희미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희미함이 모두 걷힐 때쯤, 이 게임에서 정해진 단 한 명의 확실한 승리자는 서울 시민들을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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