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 시선의 정치사회 에세이 '우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일본 정부는 7월 4일 0시부터 일본 업체가 플루오린 폴리미드, 리지스트, 에칭가스 등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를 한국에 수출할 때, 더 까다로운 절차를 진행해야만 하는 '제재'를 개시했다. 한국 기업들은 플루오린 폴리미드 93.7%, 리지스트 91.9%, 에칭가스 43.9%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5개월 동안 수입한 액수는 1,682억원이다.(점유율은 언론보도, 수입액은 한국무엽협회 통계 참조)
서두에 언급한 3개 품목은 지금까지 수출할 때 한번 포괄적 허가를 받으면, 3년 동안 개별 품목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이번 수출 규제 강화 조치에 따라 한국 기업은 개별 제품을 수출할 때마다 수출허가를 신청하여 심사 및 허가를 받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1에서 0이 된 것이지, 0에서 -1이 된 조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기존 포괄 허가 조치가 사라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원활한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이며, 반도체를 공급받는 전 세계 업체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군사 물자, 무기 개발 등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전략 물품 등을 수출할 때 관련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는 국가들을 지정해 놓았는데, 그 국가 목록이 바로 '화이트 리스트'다. 일본 정부가 안보상 신뢰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는 국가들에만 그 혜택을 부여한다. 현재 화이트 리스트 국가는 총 27개국에 불과하며, 2004년 한국도 이 리스트에 포함된 바 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한국을 '안보상 믿을 수 있는 국가'로 분류했으며,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일본과의 무역에 있어 상당한 절차상의 혜택을 받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아베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 발표 후, 일본 경제 산업성은 7월 1일 우리나라를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통상 1개월 정도의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는데,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7월 24일까지 의견 수렴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빠르게, 속전속결로 진행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이후 1~2주간 시행령 개정 기간을 거치면 바로 시행이 이뤄진다. 만약 한국이 실제로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된다면 막대한 경제적 피해는 물론, 외교적으로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캐치올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반도체 관련 3개 물품에 대한 규제는 '리스트 규제'이다. 특정한 몇몇 물품에 관해서만 수출을 규제한다는 의미인데, 만약 한국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될 경우 지금까지와 달리 '캐치올 규제'를 적용받을 수도 있다.
'캐치올 규제'는 수출 금지 품목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군사전용 또는 전쟁 물자 개발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수출국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의미한다. 일본이 전략물자로 분류한 품목은 총 15개 항목에서 218개에 달하며, 이 중 상당수에 대해 일본이 안보문제를 이유 삼아 개별 수출허가 비율을 크게 늘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이런 물품들에 대해 군사 전용 가능성을 제기하거나 안보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만 만들어 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해당 물품들의 수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조치인 것이다. 단순히 경제적 보복을 가하는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한국을 '믿을 수 없는 국가'로 분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아베의 최측근이자 자민당 간사장 대행인 하기우다 고이치는 지난 5일,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군사 용도로의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7일,
아베가 참의원 선거와 관련된 여야당 대표들의 TV토론회에 출연했다. 토론회에서 사회자가 이번 조치의 이유를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제조에 전용되는 듯한 물질이 흘러들어간 것이 문제였느냐'고 물었고, 아베는 '개별적인 것에 대해서는 말씀을 삼가고 싶다. 정확한 수출관리를 하고 있다고 확실히 제시해 주지 않으면, 해당 품목을 내보낼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에게 수출 규제를 철회하라고 요구한데 대해 일본 정부가 내놓은 답변과 대단히 비슷하다. 일본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한국 측 구체적인 개선이 없으면 응하지 않겠다"라고 빠르게 답변한 바 있다.
아베와 일본 정부가 한국의 '화이트 리스트'제외를 서두르는 이유도 북한과 관련된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에서 언급한 또 다른 이유인 '강제징용 문제'만으로는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시킬 명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향후 또 다른 논쟁거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매우 높고, 북한과의 문제는 미국에게도 중요한 이슈이므로 한국 정부에서 굉장히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우리나라가 전통적인 우방국들 사이에서 자칫 '노선을 바꿔버린 국가'로 각인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 포함된 나라다. 경제 규모가 더 큰 중국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는 사실상 자신들과 동맹국 또는 우방국 리스트의 성격이 훨씬 크며, 경제적인 이득보다는 안보 차원에서의 안정성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 리스트에는 중국, 러시아, 북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일본은 자신들의 안보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을 화이트 리스트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는데, 일본이 북한과 관련된 문제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한국이 더 이상 국제 외교적으로 일본 및 화이트 리스트 국가들과 동일한 노선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1] 더불어민주당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보복 대응특위(가칭)' 출범을 공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경제 보복의 피해만 생각한다면 항복하고 끝내는 게 맞다. 하지만 이 정도 경제 침략 상황이면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다" 라고 말했다.
[3]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반도체 소재를 비롯한 부품·장비 개발에 우선 예산사업으로 약 6조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4]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일본의 수출규제 대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상황을 보면서 후속대책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5]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수출 규제에 대해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질적으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1분 1초가 급한데, 정부나 여당은 그렇게까지 급해 보이지는 않는다.
부품, 장비 개발에 6조원을 투자해서 일본의 제품들을 대체하겠다는 발표는 사실상 코메디에 가까웠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사업의 핵심 소재들을 여태껏 돈이 없어서 못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세계적인 대기업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고작 그 몇 조원을 아끼기 위해 지금껏 일본 기업으로부터 소재를 수입해서 썼다고 생각하는 걸까? 부디 아니기를 바란다.
상기 언급했듯이,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지금은 의병을 일으켜야 될 때도 아니고, 강 장관처럼 '상황을 보면서 후속대책을 연구'할만한 상황도 아니다. '한국 기업들에게 피해가 실질적으로 발생하면 바로 맞대응하겠다'는 감정적인 대응은 대한민국의 통치자인 대통령이 내놓을 해결책이 아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일본에 건너갈 정도로 상황은 심각한데,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서 친일, 반일 프레임을 씌워 국가를 또다시 분열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 프레임 속에 국민들은 서로에게 '친일파, 빨갱이'를 주고받으며, 매일매일 욕하고 싸우기 바쁘다. 늪에 빠진 듯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어쩌면 '또 다른 피해자'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지탄하고,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사과와 배상이 턱없이 부족하고 매우 무성의한 것이었다고 비난한다. 과거에 어떤 정부가 됐든 대한민국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 '국가 간의 합의'들이 존재하지만, 적절하지 못한 합의라고 판단되면 무효화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의 만행이 등장하고, 몇 백 년을 과거로 회귀하여 임진왜란까지 2019년으로 소환시킨다. 일본 불매운동이 양국 간의 갈등을 더 키우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하거나, 일본 제품을 아예 이용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매운동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라도 하게 되면 '친일파, 토착왜구'프레임을 씌워 순식간에 한 사람을 '왜놈'으로 만들어 버린다. 참으로 슬프고 불행한 현실이다.
나는 반대로 묻고 싶다.
북한은 6.25 전쟁을 시작으로 수없는 도발을 감행한 바 있다. 연평해전, 서해교전, 연평도 포격,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천안함 폭침 등 대한민국에 입힌 인명피해만 해도 엄청난 수준이며, 핵무기를 개발하여 대한민국을 오랜 시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런 북한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떠한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게 어떠한 형태로도 사과하지 않았다. 북한으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고, 대한민국은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금전적 손실을 입어왔지만 그들로부터 단 10원도 받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이런 나라에게 진정한 사과와 실질적인 배상 책임을 묻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무상에 가까운 일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심지어 개성공단을 재개하고 더 개발하여 북한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어떤가?
어차피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 거, 아주 오랜 시간의 역사를 통틀어서 생각한다면 중국만큼 우리를 괴롭힌 나라가 없지 않은가? 너무 많아서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중국 역시 우리에게 어떠한 형태로도 사과한 적이 없다. 배상 역시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몇 해전 사드보복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동북공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고유한 역사들마저 뺏어가려고 애쓰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 중국 베이징대학교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라고 하면서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대국(大國) 중국의 '중국몽(中國夢)'에 함께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어쩌면 역사까지 집어삼키려고 하는 중국 같은 나라가 훨씬 더 나쁜 나라일지도 모른다. 작금의 상황이 정말 정의로운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모든 중국산 제품을 사용하지 말고 불매 운동에 돌입해야 한다. 북한 김정은에게는 6.25 남침 및 각종 인명 피해건들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해야 하고, 그동안 대한민국이 입었던 피해들에 대한 일정 부분 배상을 반드시 받아내야 할 것이다. 현재 지원하고 있는 모든 대북지원은 전부 중단되어야 하고, 북한으로 인해 상처 입은 피해자들이 정당한 배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온 나라가 들고일어나야 한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의 친중, 친북 정책들도 모조리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2019년인 지금 일본, 북한, 중국의 과거사를 꺼내와서 그들에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나라 국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이냐는 말이다. 외교적 실리를 따지지 않는 '역사 바로잡기'는 정치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친일파, 토착왜구, 빨갱이, 종북세력 등 듣기에도 버거운 단어들을 쏟아내 가며 서로를 헐뜯는 것은 약자들 간의 소모적인 싸움이 될 뿐이다.
일본 정부와 아베의 경제 제재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아베가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개헌하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분하고 억울하다. 정말로 한국이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된다면 너무나도 많은 기업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 국민들이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부디 정부가 이성적이고 현명하게 판단해주기를 바라며, 더 이상 과거로 회귀하지 말고 국민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가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