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 시선의 정치사회 에세이 '우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위증한 사실이 드러났다. 윤석열은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의혹과 관련해 변호사를 소개한 적이 없다고 수 차례 이야기하였으나, 청문회 막판 뉴스타파에서 폭로한 육성파일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청문회 중 시종일관 여유로운 표정으로 일관하던 윤석열의 표정은 싹 바뀌었다. '권력에 맞서는 정의로운 검사'의 거짓말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1) 2012년 3월, 경찰은 한국예술 종합학교 입시 비리사건을 수사하던 중 금품 공여자로 지목된 마장동 육류 수입 가공업자 김 모씨가 윤우진에게 정기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했다.
(2) 경찰은 윤우진이 이 돈으로 인천의 한 골프장에서 검사들에게 골프 접대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했고, 해당 골프장을 압수 수색했다.
(3) 경찰은 윤우진이 인천에서 대형 낚시터를 운영하는 최 모씨의 이름을 빌려 골프를 친 것으로 확인하고, 해당 명의의 이용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했으나 검찰이 이 영장을 무려 다섯 번이나 기각한다.
(4) 경찰은 해당 골프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톨게이트 내역을 확인, 일부 검사들이 해당 골프장에 수시로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윤우진의 친동생 윤대진이 검찰 고위 간부이기 때문에 정당한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검찰은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5) 윤우진은 두 대의 대포폰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통화내역 확인 결과 현직 검사들과 통화한 내역이 포착됐다. 그들 중 한 명이 바로 윤석열이다.
(6) 윤우진은 인천의 골프장을 매주 2~3번씩 찾았으며, 2~3명의 가명으로 골프장을 이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1)번에 등장하는 육류 수입 가공업자 김 씨가 골프장을 예약 후 골프 금액을 미리 지불했으며, 윤우진은 골프장을 찾아 이용만 했다. 김 씨는 본인 외에도 3~4명의 업자가 윤우진에게 골프 접대비를 상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7) 심지어 윤우진은 이 돈을 환불 받아서 같이 온 사람들에게 나눠준 정황이 있는데, 이런 여러 가지 단서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다섯 차례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것이다.
(8) 2012년 8월 20일, 경찰은 윤우진을 소환 조사했지만, 그는 건강상의 문제를 들어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고 열흘 뒤 갑작스럽게 홍콩으로 출국했다. 최근 언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윤우진이 해외도피를 했다'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9) 윤우진이 해외로 도피하자, 검찰은 그제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고, 경찰은 9월 10일 드디어 그의 세무서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증거를 소멸할 시간, 해외로 도피할 시간까지 충분히 주고 나서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10) 경찰은 그 해 11월, 해외에 체류 중인 윤우진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인터폴을 통한 국제 수배 조치를 내린다.
(11) 국세청 고위직 출신인 윤우진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 8개월이나 홍콩, 캄보디아 등을 떠돌다 2013년 4월 태국에서 검거되어 국내로 송환됐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용산세무서장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해외를 떠돌다 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12) 경찰은 윤우진을 광역수사대로 압송해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을 이를 또 기각했다. 윤우진에 대한 여섯 번째 영장 기각이다.
(13) 검찰의 기각 사유는 '혐의 입증 부족'이었으며, 경찰은 3개월 간 보강 수사를 벌인 뒤 2013년 7월 윤우진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신청했다. 검찰이 이를 받아들였으나, 이번엔 서울 중앙 지방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14) 서울 중앙지검 형사 3부는 2015년 2월 윤우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일부 금품 거래가 있었던 사실은 인정하나,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육성파일이 공개되자 윤석열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 되는 건 변호사를 선임시켜주는 것 아닙니까? 저건 변호사는 선임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대답을 내놓았으며, 변호사법에서 금지한 변호사 소개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니까 본인이 소개를 해준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선임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호사법 위반은 아니라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2012년 윤석열 육성파일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변호사법에서 금지한 변호사 소개'인지 아닌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판단해 보시길 권한다.
기자 : 혹시 이남석 변호사를 윤우진 씨에게 소개해주셨나요?
윤석열 : 소개를 시켜줬죠. 내가 얘기해줄께. 그러면서 또 경찰 수사가 너무 강하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 내가 뭐 사건을 지휘하는 검찰 부서한테 얘기 좀 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할 수는 없잖아요? (중략)아 그럼 일단 변호사가 필요하겠다. 그래서 내가 이 양반하고 무슨 사건 갖고 상담하면 안 되겠다 싶어 가지고, 내가 그 우리 막 나간 이남석이한테 얘길 해가지고, 지금 대진이한테는 얘기하지 말고 - 얘가 형 문제 가지고 괜히 머리 쓰면 안 되니깐 니가 그럼 윤우진 서장 한번 만나봐라. 한번 만나서 얘길 한번 들어보고,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너가 할 수 있으면 도와드리던가. 이렇게 했단 말이에요. 이남석이보고 하라고 하고, 그리고 이 양반이 그냥 전화하면 안 받을 거 아니에요. 이남석이한테 문자를 넣어주라고 했다고. 윤석열 부장이 얘기한 이남석입니다. 만나서 한번 얘기나 들어봐라, 그리고 나서 만나긴 만난 모양이야.
이 육성파일의 내용을 놓고 본다면, 윤석열이 윤우진에게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해준 것이 아니라고는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이남석 변호사는 윤우진에게 '윤석열 부장 소개로 연락드린 이남석입니다'라는 형식으로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윤석열을 통해서 연락을 했다는데, 이게 소개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를 의식해서인지 윤석열은 '이남석 변호사가 선임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호사법에서 금지한 변호사 소개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는데, 이 입장이 치졸한지에 대한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적폐를 무찌르는 정의로운 검사'가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겠는가?
윤우진은 2015년 국세청을 상대로 파면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소송 판결문에는 이남석 변호사가 2012년 경찰 수사를 받고 있던 윤우진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남석 변호사는 2012년 9월 12일 국세청에 '윤우진의 광역수사대 내사사건에 관해 이남석을 변호인으로 선임한다'는 내용의 선임계를 제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용산세무서장이었던 윤우진은 당시 상기 언급한 바와 같이 해외로 도피 중이었다. 이에 국세청은 2012년 9월 11일, 9월 18일, 10월 8일 등 세 번에 걸쳐 '복무규정 준수 안내문'을 보내게 되는데, 해외에 있어 이를 받을 수 없는 윤우진을 대신해 대리인에게 안내문을 송부하게 된다. 그 대리인이 바로 이남석 변호사다.
더 황당한 것은 2015년 2월, 윤우진은 파면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남석 변호사는 나의 법률 대리인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대신해 국세청의 복무 명령서 등을 받은 것은 유효하지 않다'며 파면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윤석열의 부탁을 받은 이남석 변호사는 자신이 윤우진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는 선임계를 제출했는데, 정작 당사자인 윤우진이 이를 부인한 것이다. 해당 문서를 대리인이 받았다고 하는 것보다 아예 받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소송에 더 유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은 이남석 변호사가 경찰이 아닌 국세청에 선임계를 제출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건을 담당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마저도 형편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이남석 변호사가 경찰에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맞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검찰로 사건이 넘어간 2013년 8월 윤우진의 법률대리인 역할을 했다. 실질적으로 사건을 담당했다는 뜻이다. 본인이 아닌 윤대진 검사가 소개시켜줬다는 해명은 정말로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2012년 육성파일에 본인이 본인 입으로 이남석 변호사와 윤우진의 만남을 사실상 주선한 것임이 드러났는데, 갑자기 윤대진 검사가 소개시켜줬다는 이야기를 왜 하는 것인가? 윤석열은 육성파일이 공개된 후에도 끝까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도덕적으로 가장 깨끗해야 할 검찰총장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 임명 안을 재가했다. 임기 2년 2개월만에 청문회 채택 없이 16번째 장관급 인사를 강행한 것이다.
이것이 그가 부르짖던 민주주의와 협치인가?
지금도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을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윤석열의 흠집난 도덕성과 정의롭지 않은 민낯의 실체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은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 청산' 최선봉에 선 자이다. 문재인은 그런 윤석열에게 서울 중앙지검장 자리를 주었고, 약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를 검찰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혔다.
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말들과 적폐를 청산해 온 행보를 생각한다면, 이번 윤석열 논란은 당연히 청산해야 될 적폐 행위에 가깝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문제에 좌우, 보수 진보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아는가? 장관급 인사 청문회에서 도덕적 문제, 비리, 범죄사실 등이 드러나는 것이 한 두 해의 일인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부의 행위를 모두 감싸기만 한다면, 50년이 지나도 매번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좌우로 나뉘어 싸우게 될 것이다.
만약 지금이 박근혜 정부 시대이고, 박근혜 정부에서 이러한 검찰총장 인사를 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강행한다면 그땐 뭐라고 할 것인가? 누가 대통령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들이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정부의 부적절한 행위들을 비호하고 눈 감아 주기 때문에 이런 사태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까지 공직자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항상 동일해야 한다. 장담컨데,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에 찬성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향후 보수 정부가 들어서고 부적절한 장관급 인사를 강행할 때 가장 많은 비난을 쏟아낼 것이다. 그때 보수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것 같은가?
행복한 세상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정치인들은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그림을 바랄지도 모른다.
더 확실한 지지층, 더 색깔이 뚜렷한 표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정치 생활에 훨씬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이런 이야기를 전개하는 나에게 '토착 왜구, 일베, 극우파'라는 프레임을 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숨이 턱 막혀온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은데, 더 이상 이념논쟁에 귀속되고 싶지 않은데 세상은 나에게 불가능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걷히지 않는 먹먹한 감정, 언제까지 이 감정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일련의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윤석열이라면' 당연히 자진 사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권력남용을 싫어하고, 친분이나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항상 국민만을 바라보며 일한다고 했던 윤석열 검사 아니었는가? 하지만 그마저 기대를 저버렸다. 그는 자진 사퇴 대신 부적절한 변명과 거짓말을 했으며, 자신의 적폐 행위는 '착한 적폐'로 포장하여 검찰총장실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했던 천성관 전 서울 중앙지검장은 사업가 박 모씨와 연관된 초고가 아파트 구입자금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천성관은 '2004년과 2008년에 박 씨 부부와 동반으로 일반 골프여행을 다녀온 것이 사실이냐'는 야당 의원에 질문에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천성관이 당시 비행기표를 직접 결제하고 여행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나며 위증 논란에 휩싸였던 일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며 천성관 후보자의 지명 철회 의사를 밝혔고, 천 후보는 23일 만에 낙마했다. 맞다, 그 이명박이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서울 중앙지검장의 적폐 청산 최우선 순위에 위치한 이명박 전 대통령 말이다. '적폐'인 그마저도 거짓말하는 검찰총장을 임명하지 않았다. 검찰총장은 그 누구보다도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은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직을 사랑한다고 했던 그는 아마도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어떤 사람, 어떤 권력에도 충성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희미해져 버린 그의 정의로움과 강직함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건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그렇지 않으면, 차기에 보수 정부가 들어설 때 윤석열 본인이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