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J Jun 16. 2019

[3] 기생충 : 모든 사람들은 계급에 기생합니다.

- 일반인 시선의 정치사회 에세이 "우리는 개돼지가 아닙니다"

나는 혼자 나와 살기 전까지 27년을 한 동네에서만 산 '토박이'였다. 아주 어렸을 때 한 번의 이사를 경험했을 뿐, 6살 때부터는 쭉 한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동네 토박이였기 때문에 오랜 시간 사귄 친구들이 많았고, 동네 어르신들이나 상가 사장님들과도 무척 가깝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오죽하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모교 앞 슈퍼마켓에서 담배를 사려고 하자, 주인아주머니께서 '너한테 내가 담배를 어떻게 팔겠니'라며 끝까지 팔지 않으셨을까? 나는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산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은행에 입사한 직후였다.


속된 말로 '세상 물정'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무 살 이후에는 동네를 벗어나 대학교, 군대,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긴 했지만, 기껏해야 명문대에 진학한 친구들의 '과외 아르바이트비 자랑'이나 부유한 집안의 친구들이 좋은 차를 사는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부럽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사회에 발을 들이기 이전에는 한 번도 그들의 심리나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은행은 세상 물정 모르던 나를 빠르게 교육시켜 주었다. 영업점에는 매일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이 3~400명씩 찾아왔고 나도 그중 몇십 명의 손님을 할당받아 업무를 처리해야만 했는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라는 걸 깨닫는 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손님들 중 30%는 나를 자신의 부하직원처럼 대했고, 반말과 명령조는 사은품처럼 따라붙었다. 본인이 은행에 1천만 원이라도 예금이 있거나 5백만 원의 대출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거래해서 너희들이 월급 받아먹고 사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인상적이었다.


그뿐인가?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본인의 '신분과 계급'을 인정받고자 한다는 사실, 그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서 내게는 꽤 큰 충격이었다.


그들은 본인의 위치를 확인받고 싶어 했다. 은행원인 나를 부하직원처럼 하대하는 것은 서비스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나, 자신이 은행 내에서 남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경험을 토대로 쪼개 본 고객들의 유형은 다음과 같으며, 오로지 은행 직원의 시선에서 바라본 것만을 나열한 것이다.


1. 이른바 VIP클럽을 출입하는 고액 자산가들은 본인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 VIP클럽에 출입하진 않지만, 10억 이상의 대출을 보유한 고객들은 '사실 진짜 수익은 나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거 아니겠냐'며 고액자산가들에 버금가는 대우를 요구했다.


3. 1,2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몇 억 정도의 대출을 보유한 주거래 고객(급여이체, 공과금 자동이체, 신용카드, 아파트 관리비 이체 등 은행의 다양한 부수거래를 하는 고객을 뜻한다)들은 불만이 생길 때마다 '다른 은행으로 갈아타야겠다'며 다양한 혜택을 추가로 요구했다.


4. 전문직 종사자들은 일반 근로자들에 비해 더 우월한 금리조건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5. 일반 근로자들의 경우 공무원->공공기관->초우량 대기업->일반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 순으로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은행들은 '조금 더 나은' 근로자들에게 더 좋은 조건들을 제시하며 경쟁했다. 심지어 본인의 회사에 대해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지 않으면, 사내 게시판에 이 은행을 사용하지 말라는 홍보를 하겠다며 으름장을 늘어놓는 경우도 많았다.


6.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 할지라도, 각 업체 내에서 우월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재무, 인사, 총무 관련 부서 관리자급 이상)은 최고의 대우를 요구했다. 여타 직원들보다 본인이 단 1개라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받고 싶어 했다.


7. 같은 지역 내에서도 더 잘 사는 섹터에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섹터의 사람들과의 비교를 거부했다. 이를테면,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사람에게 "성남 사시네요"라고 하면 "전 분당 살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심지어 위에 언급한 것들이 아주 세세한 부분들은 뺐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인데,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한다면 한국 사회는 수많은 계급과 계층으로 쪼개질 것이다. 아무래도 은행은 돈으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재력과 직업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고, 외모/학벌/집안/권력 등은 미미하게 스며들어있거나 아예 포함되지 않았다. 이 부분들까지 추가된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촘촘한 계급사회로 구성되어 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기생충, 아니 봉준호 감독은 매우 위선적이다.


이 영화는 시종일관 한국 사회의 고착화되어가는 계급 사회를 부각한다. 감독은 이를 부각하기 위해 너무나도 뻔한 장면들을 삽입하고 대조하며, 빈자와 부자간의 격차가 얼마나 큰 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부자들은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태양과 가까운 높은 곳에 살며, 빈자들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집안의 벌레들을 살충하기 위한 소독차의 소독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반지하에 살아야 한다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폭우가 쏟아져 집이 완전히 잠겨버리고 동네 주민 전체가 체육관으로 대피해야 하는 사람들과 대저택에서 완전 방수가 가능한 텐트를 치고 무전기로 장난을 치는 박 사장(이선균)의 아들을 굳이 비교하고, 폭우로 인해 화장실에서 오물이 튀어나오는 상황을 삽입하여 빈자들의 비참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장면은 이 영화가 얼마나 단순한 방식으로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올리려고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내가 본 이 영화의 진짜 핵심 포인트는 '박 사장의 죽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박 사장이 남들로 하여금 오만과 편견을 가진 부유층으로 보인다 할지언정, 그는 영화 어디에서도 죽임을 당할만한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열심히 일해서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IT 기업의 사장이자, 반지하에 사는 일가족 전체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굳이 이 사실을 현실에 대입한다고 가정하면, 풀타임 운전기사와 가정부의 월급 및 부유층 고액 과외비를 합했을 때 못해도 월 800~1,0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고도 볼 수 있다. 심지어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가? 운전기사와 가정부의 경력이 없음에도 베테랑인 척을 하며 해당 업무 경험치에 상응하는 높은 월급을 받아갔을 것이며, 대학에 진학조차 하지 않은 두 남매는 명문대학생으로 자신들의 신분을 위조하여 고액의 과외비를 수령했을 것이다. 오히려 박 사장 부부는 이들에게 완벽하게 속아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자들에게 거액을 지불한 '고마운 자본가'였을 것이다.


그런 박 사장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말인가?

누군가의 '냄새'가 마음에 들지 않고, 본인이 높은 계급에 속해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낮게 내려다보는 것이 비단 박 사장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영화에서 사채업자에게 쫓겨 몇 년간 대저택의 지하에서 살아온 해고된 가정부 부부는, 전원이 기생충인 기택의 가족보다도 더 낮은 계급으로 그려진다. 기택은 가정부의 남편을 무시하고 괄시하며,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살아온 그를 철저히 무시한다. 기택도 가정부의 남편보다는 자신이 상위 계급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박 사장을 살해한 기택은 그 지하실로 숨어 들어가게 되는데, 이러한 설정은 봉 감독이 그 지하실을 헤어 나올 수 없는 최극빈층의 공간처럼 묘사했기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박 사장이 기택의 칼에 살해될 때, 눈살이 찌푸려지던 것이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니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부유하고 가진 자를 미워하지 말고, 이러한 계급과 계층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를 원망하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니, 아마도 그게 맞을 것이다. 지하실에 갇힌 가정부의 남편조차도 박 사장을 존경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배역들에게선 부자를 증오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박 사장의 오만과 편견에서 나오는 행동들을 통해 내재된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과 부자 증오가 동시에 터져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은 모두 계급에 기생하며 살아간다.

영화에서는 하나의 부유층과 두 개의 빈민층만을 등장시켜 대조하였지만, 우리 사회는 아주 촘촘하고 잘게 쪼개진 계층 사회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영화를 보고 부자들의 오만과 편견을 지적하며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자신은 본인보다 못한 사람들을 낮게 내려다 본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길거리에 노숙자들이나 더러운 행색을 한 사람들을 보며 '더러워, 냄새나'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지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들 모두는 자신의 계층이 어디인지 사회로부터 확인받고 싶어 하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보다 더 낫다는 안도감과 더 잘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을 동시에 지니고 살아간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위선적이고 비뚤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마치 대한민국 상위 1%의 부자들만이 빈민층을 깔보듯 내려다 보고, 그들이 냄새가 난다며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을 낮게 내려다보고 무시하는 것은 상위 1%의 부자뿐만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당신과 저런 사람들과는 다를 게 없어. 똑같은 한 명의 사람일 뿐인걸"이라는 말을 했을 때,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을 찾기는 아주 어려운 일 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봉준호 감독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박 사장 정도의 위치에 있지 않으십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2] 문재인 대통령님, 흉터를 또 찢으실겁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