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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젼세이 Apr 01. 2024

의류학과 나왔는데 에디터로 일하셨네요?

이 일을 시작한 이유


면접 볼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는다. "의류학과 나왔는데 에디터로 일하셨네요?" 이 말을 여러 번 듣고, 제3자가 봤을 때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이었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면 선후배, 동기들 중 에디터로 빠진 사람은 나 말곤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전공을 살려 패션 브랜드의 MD, 디자이너가 되었다. 


학과를 잘못 고른 건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해봤지만, 졸업한 지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의류학과를 나온 사실에 후회는 없다. 수차례 천을 만지고 자르며 쌓인 미감과 안목이 지금의 일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컨셉을 잡고 비주얼을 구현해야 하는 상황이 닥쳐도, 일단 손으로 끄적인다. 누군가를 귀찮게 하거나 오래된 책을 뒤져서라도 만드는 방법을 찾고 밤을 새우면 불가능이 없다는 걸 이때 배웠다.  



각지게 잘 만든 패브릭 쿠션.조영주 작가님의 전시를 보면서 의류학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일반적이지 않은 경로


이력서만 놓고 봤을 때, 에디터가 되기 위해 살아온 것 같진 않다. 지망생에게 필수 관문인 잡지사 어시스턴트 경험도,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다. 해온 거라곤 중학생 때부터 운영해온 블로그뿐이었다. 옷이 좋아서 패션쇼를 가고, 스트릿 사진을 찍고, 매달 잡지를 읽으며 알게 된 패션 정보를 공유했다. 그렇게 2년 정도 하고 나니 하루에 1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수능 준비로 그만둔 게 아쉬워 대학생이 되어 다시 시작했다. 그게 지금의 블로그다. 10대 때는 멋져 보이고 싶었다면, 20대가 되어서는 진짜 어떻게 살아갈 건지 고민스러웠다. 그 생각을 가지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대단한 용기와 포부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다양한 삶이 궁금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길 위에서 정말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국적은 달라도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은 비슷하면서도 다양했다. 같은 상황이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걸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깨달았다. 


깨닫는 것도 까먹는 것도 빠른 나는, 홈그라운드를 벗어나 겪은 문화와 생각을 부지런히 썼다. 그래서 이 사이트를 단순히 여행 블로그라고 정의하기 애매하다. 이곳엔 사적인 궁금증에서 시작해, 외눈박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가득하다. 동시에 경험을 보기 좋게 가공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호기심 많은 모습이 독특해 보였던 걸까. 운이 좋았다. 당시 지원한 회사의 실장님께서 내가 그동안 써온 게시물을 쭉 보시곤, 온라인 매거진 에디터로 면접 볼 기회를 주셨다. 




100명 중 한 명이 된 이유 



실장님께 물어보았다. '제가 뽑힌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과를 나온 사람들이었다. 언어적으로 탁월했다. 좋은 동료를 만난 이 환경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궁금했다. 제대로 글을 써본 적 없는 나에게 이 일을 맡긴 이유를.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흠.. 뭐랄까. 매체를 경험하지 않은 순수함이 좋아 보였어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 같았거든요.' 


약점으로 생각했던 부분이 오히려 득이 되다니. 자기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표현할 수 있으면 오케이였다. 자연스럽게 문맥을 다듬고, 속도를 높이는 건 시간문제였다. 많이 써보고 좋은 글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양질의 시간을 쌓아가면 됐다. 그날 이후로 에디터라는 일에 깨끗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Next episode

에디터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다음 편에서는 

온오프라인에서 경험한 일의 기억을 더듬어

업에 대한 통찰을 정리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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