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양면의 조개껍데기 / 김초엽

by 히읗

김초엽 작가의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단편 소설로, 책의 제일 뒷장에 작가의 말이 정리되어 있다. 각 단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고 난 뒤 다시 떠올려 보면, 일상의 사소한 관찰이 어떻게 이렇게 낯선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지 새삼 놀라워진다.


참고로 윌라에서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독점으로 제공하고 있는데,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같이 보면서 들으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의 공통된 특징은 이야기가 시작될 때부터 등장인물이 기계인지, 사물인지, 사람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독자는 처음부터 설명을 받기보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상상하고 조금씩 단서를 모아 그 존재를 알아가게 된다. 그 과정 자체가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다.


물론 어떤 이야기들은 쉽지 않다.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래서 더 오래 남는 이야기가 있다. 책 속의 여러 단편 이야기 중 바로 책 제목이 된 <양면의 조개껍데기>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 <양면의 조개껍데기>


이 작품은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나의 몸 안에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하고, 그 자아들이 어떻게 살아가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서로를 밀어내려 하는지가 섬세하게 그려진다.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다 충돌하고, 갑작스럽게 주도권을 쥐려는 순간들이 이어지면서 이 관계는 갈등과 불안 속으로 흘러간다. 그러다 서로를 완전히 제거할 수도, 완전히 합쳐질 수도 없는 상태에서 조금씩 이해에 가까워지는 과정이 펼쳐진다.


다중인격이라는 설정은 익숙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병리적인 시선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자아와 자아 사이의 거리, 이해의 불가능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낯설고, 신선했고, 무엇보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책 속의 문장들

(63p) 하지만 균열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잘 밀봉해 왔다고 믿었지만 한번 틈이 생기면, 사실은 그전에도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죠. 계속 충격이 가해지고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위태로웠는데, 겉으로는 부서지지 않았으니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견디다 못해 빠그작, 이미 갈라졌고요.


(102p) 그 애는 왜 바다 깊은 곳을 좋아했을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 내가 어떤 존재인지 신경 쓰지 않는 곳. 아무도 나에게 너는 왜 그런 존재냐고 묻지 않는 곳. 그곳에 사는 생물들에게 나는 그냥 거대한, 혹은 조그마한 외계 생물체일 뿐인…… 그런 곳이어서.


(106p) 처음으로 온전히 개방한 내 자아 안쪽으로 레몬의 세계가 파고든다. 그 세계는 잔잔한 슬픔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반짝이는 것들도 있다. 나는 그 세계의 슬프고 반짝이는 것들이 나에게로 건너오기를 기다린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이 작품은 ‘솜’이라는 이미지에서 출발한 이야기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흰솜깍지벌레에서 시작된 발상이 이렇게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특히 돋보였다.


수브다니라는 존재는 인간도, 기계도 아닌 경계에 서 있다. 인간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기계로 남고 싶은 것도 아닌 채 그 사이를 오가며 존재한다.


이 애매한 상태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읽다 보면 이 이야기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정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가볍고 부드러운 ‘솜’이라는 이미지 속에

의외로 무겁고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책 속의 문장들

(29p) 수브다니는 인간이 되고 싶은 기계도 아니고, 기계가 되고 싶은 인간도 아니고, 기계였다가 인간이 되었다가 이제 다시 기계가 되려는 존재였던 거예요.


(52p) 전 아직도 가끔 솜 인간이 되는 상상을 해요. 마음이 무거울 땐 펑펑 울어서 물먹은 솜이 되고 기분 좋은 날은 햇볕에 바짝 마른 보송한 솜이 되는 거예요.






<소금물 주파수>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작품은 돌고래 해몽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였다.


해양 탐사를 위해 만들어진 기계 돌고래가 바닷속에서 다른 생물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무리를 이루는 과정이 그려진다.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존재라고 설명하는지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게 한다. ‘내가 다른 존재들과 다르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되는 순간, 그건 쓸쓸함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이야기는 가볍게 읽히면서도 정체성과 고립감에 대한 질문을 조용히 남긴다. 기계이면서도 감정을 닮아가는 존재를 통해, ‘나’라는 존재가 무엇으로 규정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책 속의 문장들

(172p) 너는 돌고래 해몽이야.

아주 멀고 깊은 바다로 가게 될 거란다.


(174p) 돌고래를 닮은 그 물고기는 바다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바다를 사랑하게 됐고, 돌고래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돌고래로 살아가기로 했다.

언젠가 바다의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바다가 더는 궁금하지 않게 되면, 멀리 나가서 아름다운 바다를 마음껏 보라고 했던 다정한 목소리가 더는 기억나지 않을 때쯤이면, 그 돌고래도 조용히 자신이 진짜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 눈을 감고 싶어 할지 모르겠다.






<고요와 소란>


이 작품은 ‘사물의 목소리’라는 흥미로운 설정에서 시작된다. 사물이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가진 목소리로 인간에게 말을 건넨다는 점이 독특했다.


처음에는 다소 환상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초점은 점점 인간에게로 옮겨간다.


사물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얼마나 쉽게 믿고, 얼마나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받아들이는 존재인지 드러내는 장치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물의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의 인식과 한계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책 속의 문장들

(185p) 사물에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들은 영혼을 지닌 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거품 터지는 소리, 부서지고 꺾이는 소리, 잘그락거리고 찰랑대고 끼기긱끼기긱 미끄러지는 소리를 통해서. 사물들은 단순히 소리를 내거나 진동하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건네온다.


(186p)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들은 떠나버렸다. 사물들은 조용해졌다.


(222p) 인간의 소리 해석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인간의 귀가 얼마나 속기 쉽고 듣고자 하는 것만을 듣는지를 파악하는 일이었으니까요.






<달고 미지근한 슬픔>


이 작품은 ‘신체성’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살아 있다는 감각’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벌들과 함께 살아가는 폐쇄된 세계 속에서 주인공은 단순하고 안정된 삶을 유지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던져진 질문 하나가 그 모든 균형을 흔들어 놓는다.


‘왜 나는 살아 있다고 느끼는가.’


당연했던 감각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 세계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큰 사건 없이도 하나의 질문만으로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슬픔조차 어딘가 달콤하게 남는다.



책 속의 문장들

(241p) 자신만의 우주복을 입고 벌들의 우주에 둘러싸여 조그만 벌꿀 항아리를 만들고, 벌들의 춤을 연구하고, 밀원식물을 찾아 가까운 숲을 탐색하며 폐쇄된 세계를 즐겼다. 때로는 자신의 우주가 생산해낸 달고 끈적한 기쁨도 즐겼다.


(241p) 벌들 속에 있을 때면 인간들의 미묘한 신경질과 짜증, 분노를 마주하지 않아도 됐고, 그 이유를 짐작하려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삶이 극도로 단순해졌다.


(293p)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슬픔.

어쩌면 영원히 모르는 것들의 경계가 있고, 그 경계를 알아내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깨달음에서 오는 슬픔.

하지만 그 슬픔에서는 여전히 달콤한 맛이 났다. 탐구할 가치가 충분한 슬픔이었다.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을 찾는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전개와 독특한 구성, 그리고 SF 적 상상력이 궁금하다면 한 번쯤 읽어보길 추천한다. 각 이야기는 읽고 난 뒤에도 다시 곱씹게 만들며,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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