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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May 20. 2019

퇴사한 다음 날

여전히 평온한 하루

어제 송별회를 거하게 한 덕분에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아팠다. 나의 잠이 깰까 봐 조심스레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의 동선을 느끼며 눈이 떠졌다. 새삼 남편의 배려가 고마운 아침이다. 어제도 남편은 퇴근 후 귀가했다가, 버스를 타고 다시 나와서 나의 대리기사를 해 주었다.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손을 흔들어 주고, 커피 한잔을 타서 거실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운동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헬스장에 다녀왔다. 평일 오전, 아파트 안의 헬스장은 사람이 없었다. 사람 없는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걸으며 비로소 내가 퇴사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오후에는 오랜 친구를 만나 퇴사를 하기까지의 과정과 그동안의 밀린 얘기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친구는 부럽다, 용기가 대단하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앞으로 어떡할래?", "왜 그랬어?"라는 말보다는 훨씬 마음이 평온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설거지까지 해 둔 남편이 나를 반겨주었다.

"늦었지? 라면 먹었어? ㅠㅠ"

"너구리 한 마리 잡아먹었지. 맛있더라~"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역시 퇴사를 해도 일상은 평온했다. 별다른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고 담담한 하루였다.


드라마 <미생>에서는 회사 안은 전쟁터이고,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했었는데... 그래도 전쟁터는 내 마음대로 안 되지만, 지옥은 내가 마음먹기 나름이 아닐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옥처럼 느껴지려나? 그런 상황이 오면 그때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전쟁터로 나갈 준비를 해도 되겠지? 하지만 되도록이면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보다 실망하더라도 기대하고 싶다.  동화 속의 <빨강머리 앤>이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아니 일 자체를 다시 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혼자서 노력하고 애쓰고 낑낑대다가 실망하고, 또 노력하고 그러겠지. 그래도 어쩌겠어?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고, 나의 결정인 것을....


어쩌면 퇴사한 것을 순간순간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평생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는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의 모습으로, 그렇지만 누구보다 <나답게>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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