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 May 23. 2019

남편을 위한 요리

소중한 사람을 위해 요리하면서 느끼는 행복

결혼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난 얼마 전에 퇴사를 했고 많은 자유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5분만 더 자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 아침이 아니라 눈이 떠질 때 일어나는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남편이 출근 준비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눈을 뜬다. 남편은 안 그래도 된다고 얘기하지만 난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나서 출근하는 남편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퇴사를 하고 며칠 후, 이제부터는 남편에게 아침을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출근을 했던 지난 10년 동안 아침은 과일이나 빵, 떡 등 간식거리로 간단하게 해결하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했다. 저녁이나 주말은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준비하거나 번갈아가며 식사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외식도 자주 했고, 배달음식도 종종 이용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상황은(나의 직업을 굳이 말해야 하는 상황에는 ‘주부’라고 해야 하는 상황) 남편을 위한 아침과 저녁을 정성스럽게 준비해주고 싶었고, 또 그래야 할 것 같기도 다. 남편은 아침으로 밥을 먹는 것은 조금 꺼리는 편이고, 빵을 좋아한다. 그래서 난 빵을 직접 구워보기로 했다.

내가 직접 만든 빵(슈크림, 소보로, 파운드케이크, 바나나 머핀)과 쿠키(초코 쿠키, 딸기잼 쿠키)

제빵학원이나 제빵 관련 책을 살 필요도 없었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많은 능력자(^^)들이 올려 둔 레시피를 보고 취향에 따라 재료를 생략하거나 추가하는 이른바 홈베이킹을 해보았다. 이사 온 지 5년 만에 빌트인으로 있는 오븐을 처음으로 사용해보았다. 비교적 난이도가 쉬운 머핀부터 시작해서 파운드케이크를 굽고,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슈크림빵도 굽고, 내가 좋아하는 소보로빵도 만들어보았다.


아침식사로 내가 직접 만든 빵을 먹으면서 남편은 너무 행복해했다. 남편이 출근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TV를 보며 빵을 먹는 시간에 나는 자고 있지만 남편은 나의 사랑과 정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같이 마트에 장 보러 갔었는데, 남편이 베이커리와 과자 코너를 지나면서 "파는 것보다 자기가 만들어 주는 빵이랑 과자가 더 맛있어. 이제 빵이랑 과자는 안 사 먹어도 되겠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남편이 어린아이처럼 느껴져서 귀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버릇(^^)을 잘못 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웃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 매일매일 남편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하고, 빵을 구우면서 절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건강’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모양과 맛도 중요하지만 몸에 해로운 재료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동안 요식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진심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매일 남편을 위해 정성껏 차리는 식사,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건강하고 맛있는 메뉴를 개발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요즘 나는 빵을 구워서 나의 소중한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 멀리 사는 친구에게 파운드케이크와 쿠키를 택배로 보내고, 조카에게 어린이날 선물로 쿠키를 보내면서 혼자 뿌듯해하는 내 모습이 조금 웃기기도 했다. 친구 집을 방문하는 날에는 양손 가득 빵과 쿠키를 들고 갔었다. 나의 양손을 보고 “그냥 오지, 뭘 그렇게 많이 사 왔냐?”는 친구에게 “사 오긴, 이거 전부 다 내가 만든 거야”라고 말했을 때 친구의 표정과 반응은 나를 며칠간 기분 좋게 했다. 가끔 만나는 지인들에게 머핀과 쿠키를 선물로 주고 너무 맛있다는 말을 들으면 행복하다.

요즘 소중한 사람을 위해 빵과 쿠키를 굽고, 마지막에 포장할 때 느껴지는 뿌듯함을 만끽하고 있다.

그동안 난 청소하고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은 좋아하고 잘하지만, 요리에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종종 미각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 요즘은 '내가 요리에 재능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음식을 하고 빵을 구우면서 느끼는 지금의 행복과 기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현재의 이 행복함과 만족감을 만끽하면서 지내보려고 한다.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을 내 감정에 충실하면서 소중한 사람들과 즐겁게 살아보려고 한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한 다음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