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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은 Dec 02. 2023

120L의 논문

젊다는 핑계로 아직 헤매는 중


1. 취업을 했다.

실험실에 나가기 3일 전, 그동안 프린트 해두었던 논문들을 모두 파쇄기에 갈았다.

우리 실험실에 있는 파쇄기의 용량은 30L 였는데, 3일동안 4번을 비워냈다.

120L의 논문.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 같지만 나는 대학원생 치고 논문을 그렇게 많이, 열심히 읽던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악착같지 못 했던 대학원생은 결국 연구자로서 더 나아가는 것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여 취업을 했다.

그래도 나름 공부에는 어느정도 도가 텄는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필기를 합격했고,

랩미팅으로 발표 또한 단련이 됐는지 면접 점수도 잘 받아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다.

연구자로 사는 삶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적어도 경제적 궁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대한 기대는 꽤나 크게 다가왔다.







2. 박사 진학을 포기했다.

박사 진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변 사람들은 첫 째로는 흥미, 둘 째로는 경제적 여유를 꼽았다.

나는 두 가지 모두 크게 충족하지 못했다.


매드사이언티스트가 말하기를,  논문을 덕질하 듯 읽어야한단다.

실험실에 4년이나 있었는데, 논문 읽기는 항상 힘든 일이었고, 논문 발표는 항상 어려운 일이었다.

만화책 읽듯 논문 읽기라... 내가 만화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탓인지, 읽자고 마음 먹은 내 의지와 달리 논문만 열면 동태눈깔이 됐다.


그렇다고 마냥 재미없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Field study에 대해 비교적 큰 흥미를 느껴서, 그런 것들은 머리속에 꽤 깊은 잔상으로 남았다.

논문 발표를 하면서 이것 저것 토론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교수님이 인정해줄 때면 성취감이 차올랐다.

하루종일을 투자해서 Figure 하나만 괜찮게 만들어도, 그 날 하루가 뿌듯했다.


그래서 굉장히 애매했다. 강한 이끌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랬다고 죽도록 하기 싫은 것도 아닌, 그런 애매한 상태.

차라리 뭐 하나 확실했으면 좋았을걸. 그러지 않아 고민의 시간이 길었다.


결정적으로는 아버지가 퇴직을 했고, 2023년에는 R&D 지원이 굉장히 어려울 시기일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슬슬 안정감을 찾고싶다는 혀가 긴 핑계들로 박사 진학을 포기했다.







3. 길에 대한 고민은 언제 종결되는가.

대학원보다 회사가 견디기 쉽다고 다들 입모아 말했다.

근데 그게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 말일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물리적으로 일이 많은 것도 있었지만, 그 부담감이 정말 하늘을 찔렀다.

상사와 민원인이 던지는 ‘책임’이라는 직구가 너무 아팠다.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 무서웠다.


모든 회사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는 악명 높은 부서였기에 아무런 기대 없이 왔지만,

매일 벌벌 떨며 일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주변 선생님들은 첫 직장이라 그렇다며 위로해줬고,

아버지는 당신의 삶에서 진리와 같았던 '버티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냈다.









4. 포기는 왜 배추한테만 주나요?

결국 나는 첫 직장을 6개월만에 포기하고 이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말릴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직장이었다.


평생 다닐 수 있는 곳을 버리고 1년 8개월 계약직이 되었다.

연봉도 근 1천만 원이 줄었다.

고향을 떠나야 했다.

우리나라 기준에서의 나름 좋은 신붓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


예상대로 이곳에 안정감은 없었고, R&D 예산은 대폭 삭감의 위기에 있다.

매일매일이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1년 8개월 후에는 어떤 포지션으로 있게 될지, 집은 또 어떻게 구해야할지 막막하다. (전세사기는 언제 없어지나요?)

도망치는 곳에 행복은 없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올까봐 무섭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후회는 없다.

이번 겨울에 원하던 출장의 기회를 얻었다.

지금 아니면 하기 힘든 경험을 하러 간다.

더 큰 연구실에서 학위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배추 셀 때나 쓰는 ‘포기‘를 인생에 버무린만큼,

그리고 포기해서 잃은 것들을 스스로 아쉬워하지 않으려면,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고,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해야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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