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이런 목표는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와이에 가서 서핑을 배우겠다, 치앙마이에서 트레킹을 하겠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인도에 가서 요가 클래스에 참가하겠다, 유럽 전역을 떠돌며 미술관을 둘러보겠다 같은 것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준비한다. (중략)
그러나 우리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 -
“사장님, 혹시 찐빵 하나도 되나요?”
그때 나는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찐빵 한 개라니, 내가 사장이어도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일 게 빤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아주 명랑했다.
“네~ 그럼요. 한 3분 정도 걸려요.”
사장님의 밝은 대답이 무척이나 기뻤지만. 그 커다란 찜기에 내 주먹보다 조금 큰 찐빵이 덜렁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멋쩍기 그지없었다.
괜히 먼 산을 바라보며 기다린 끝에 내 손에 쥐어진 작고 하얗고, 친절한 찐빵.
나의 첫 제주 홀로 여행은 이런 뜻밖의 것들로 진하게 남아있다.
2018년 10월 말에 간 홀로 제주 여행.
그때 내가 제주도에 간 까닭은, 사실 한라산 등반을 위해서였다.
갑자기 무언가에 씐 것마냥 ‘백록담을 꼭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은 채로, 3박 4일 중 3번째 날 한라산을 간다는 것만 계획했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와 기대도 없이, 이모의 시어머니(…)께 얻어온 등산스틱과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백록담을 보고 왔다.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3대가 덕을 쌓아야 그렇게 맑은 날씨에 물이 있는 백록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에 기억에 남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아무런 준비 운동도 안 하고
초코소라빵, 우유, 물, 초콜릿, 귤(지금 생각해 보면 밥 될 만한 것도 하나도 안 가져갔다.)을 짊어지고 가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줄지어 올라갔다.
몇몇은 슬리퍼를 신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젊다 젊어…’(라고 23살이 말했습니다.)하며 감탄하던 중에,
그 줄 말미에서 따라가던 남학생이 초콜릿을 애타게 찾는 것을 보았다.
나와 같은 처참한 체력의 젊은이가 안쓰러워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내 건네었는데,
마치 구원자를 보는듯한 그 표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 학생과 나 모두 정상에 무사히 올랐는데, 나에게는 내려오는 길이 더 고역이었다.
발목을 전혀 잡아주지 않는 야속한 아디다스 신발 덕에 발을 몇 번이나 삐고, 넘어졌는지 모른다.
지나가던 (베테랑같이 보이는) 등산객들이 걱정을 해주셔서,
조금 머쓱한 마음에 마침 바닥에 앉아 쉴 참이었다고 허세를 떨기도 했다.
그때 지나가던 노루 한 마리가 함께 걱정해 주듯 10m쯤 떨어진 거리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체감 상 한 5분간은 계속 눈싸움을 하듯 서로를 응시했다.
그 노루의 눈빛이 참 인상 깊었다. 학교에 있는 낮은 산에서도 심심찮게 보는 노루였지만,
좀 더 야생의 노루를 보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힘내라 너구리’ 같은 노루 덕에 남은 산도 무사히 내려왔고,
(주인아주머니의 시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아무도 없게 된) 민박집 온돌에
만신창이가 된 몸을 지지며 하루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2018년 4월, 친구들의 어학연수 종료 시점에 맞춰 캐나다에 갔다.
퀘벡에서 만난 뒤, 몬트리올-오타와-나이아가라 폭포-토론토를 여행하는 일정이었고,
나의 가장 큰 목표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는 것이었다.
만나는 날 보다 3일 정도 일찍 들어가서 퀘벡에서 하루를 혼자 지냈다.
밤에도 치안이 괜찮은 나라나 도시가 전 세계에 몇 안되는데, 그중 하나가 퀘벡이라고 했다.
‘젊음의 거리’에는 늦은 밤에도 운영하는 펍이 꽤 있었다.
깜깜해지는 시간에 맞춰 채비를 하고 젊음의 거리에 갔다.
퀘벡은 프랑스어를 주로 쓰기 때문에, 가게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섞여있었다.
그중 마음에 가는 펍에 들어가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연어 타르타르와 칵테일 한 잔을 시키고 이름 모를 가수의 공연을 보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중년의 남성이 말을 걸었다. 그것도 프랑스어로(…)
당황해서 그저 머쓱하게 웃고 있었는데, 그 옆 중년의 여성이 통역을 해주었다.
본인의 남편인데, 멋진 곳에 잘 찾아왔다고 환영한다고 했다.
별 것 아닌 환영 인사가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나라, 우리 세대에선 익숙하지 않은 ‘스몰톡’의 첫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 온화한 웃음으로부터 느낀 따뜻함과 당혹스러움이 한 데 어우러져,
나는 겨우겨우 목구멍 밖으로 “Thank you… haha.” 정도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겐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누군가에겐 아무런 용기가 필요 없는 일.
내가 영어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면, 그것은 필시 스스럼없는 스몰톡을 하기 위함이리라.
그리고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스몰톡에 능한 아이로 키우리라…
김영하 작가님이 말하는 ‘뜻밖’이라는 표현의 느낌을 알 것 같다.
등반하는 길에 널브러진 귤껍질과 '귤껍질 절대 버리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던 표지판 사이의 괴리감.
제주 깡시골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다양한 이방인들의 이야기.
리듬에 맞춰 자유스럽게 춤을 추던 캐나다인들.
여행에서 계획한 것을 달성한 것이 나무줄기를 만들었다면,
이런 ‘뜻밖’의 것들이 가지와 나뭇잎, 열매를 달아 비로소 ‘나무’의 모습을 완성시켜 주었다.
지금 다시 제주에 간대도, 나는 그 찐빵집을 다시 찾아가진 못할 것이다.
애월 어딘가 외딴곳에 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가장 근처에 있는 해변을 가기 위해 무작정 걷던 중에,
강아지를 만나 한참을 인사하고, 얼마 안 가 마주친 가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는 까닭은, 단 한 개의 찐빵을 귀찮아하지 않고 내어준
그 따뜻함과 요란한 습기가,
창고형 매장이 판을 치는 세상에도 남아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거대한 삶에 맞설 용기는 이렇게 작고 켜켜이 쌓인 사소한 것들로부터 오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