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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은 Mar 14. 2024

퇴사를 하고 남극에 갔다

그녀는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되었는가


1. 퇴사를 했다.


2022. 12. 19. ~ 2023. 05. 19.

첫 직장을 퇴사했다. (이전 글, '120L의 논문' 참고)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동종기관 중 가장 몸집이 큰,

그래서 입사도 힘들고, 연봉도 아주 괜찮은 공공기관이었다.


업무량과 사내 분위기가 결코 쉬운 곳은 아니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첫 직장이니만큼 노하우도 없고, 면역력도 없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이직을 감행하고, 성공하면서 첫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지금의 생활이 쉽지 않다.


하지만 목표하는 바가 있는 만큼, 되뇌면서 내적 동기를 계속 부여하는 중이다.







2. 그 목표는 무엇이었나?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남극의 '월동연구대'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남극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영토이고,

'남극조약'에 의거하여 연구목적으로만 출입을 가능케 하도록 남극 연구에 관심 있는 나라끼리 약속했다.


남극 연구에 관심 있는 나라들은 각각 원하는 위치에 과학기지를 설립하였는데,

우리나라에는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 2곳이 있다.


남극의 겨울은 생물들의 활동이 적어지고, 인간도 야외활동을 하기에는 위험한 시기이다.

따라서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 정도까지 연구활동*을 하고, 철수한다.

*남극은 남반구에 있기 때문에 이때가 여름이다.


연구 인력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기지에 아무도 상주하지 않게 된다면

다음 연구가 다시 시작되는 11월에는 기지를 사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남극의 혹독한 겨울을 기지의 발전기, 상수도 등이 혼자 힘으로 버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매년 약 18명의 월동대원을 선별하여, 각 기지에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파견을 보낸다.


이 월동연구대는 기지 유지 및 보수를 하는 인력(유지반)도 있지만, 하계 연구대원들을 도우면서

관심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원(연구반)도 있다.

각 분야별로 1~2명의 연구원을 선발하는데, 나는 전공이 미생물이니만큼 '생물대원'에 지원하고자 했다.


가고 싶은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1) 갔다 오면 목돈이 생긴다.(...)

(2) 인간의 때가 가장 적게 묻은 곳의 모습이 궁금하다.

(3) 그런 외딴곳에서, 나는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안타깝게도, 나는 2023년 월동대와 2024년 월동대, 총 2번 지원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탈락의 이유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쨌든 결과는 슬펐다.


그렇게 포기하던 찰나에, 월동대는 아니었지만 마침 계약직연구원 공고를 보게 되었고

밑져야 본전이니 지원이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했다가 합격하게 되었다.


어렵게 잡은 기회니 만큼, 하계 연구대로라도 참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직을 했다.







3. 저, 남극에 가보고 싶어요.


운명의 장난처럼, 내가 입사하고 우리 팀에 약 2주 텀으로 2명의 신입이 더 들어왔다.

3명의 직급은 모두 달랐는데, 내가 남극에 갈 확률이 가장 낮은 포지션이었다.

(연구소에는 하는 업무나 학위에 따라 정말 다양한 직급이 있다.)


아쉽지만 어쩌면 이번 23년 말부터 이뤄질 하계연구대에는 참여하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언젠간 갈 수 있으리란 기대로, PI*께 계속 어필했다.

* Principal investigator, 연구과제 책임자


무슨 연구가 하고 싶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약 두 달여간의 시간 동안 꽤나 열정을 다해 일하고, 공부했다.


그리고, 어느 때와 같이 출근 후 들렀던 탕비실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듣게 되었다.



여은 씨, 이번에 같이 갑시다.



거의 반포기 상태로 기대도 많이 내려놓은 때였기에 더 어안이 벙벙했다.

기쁨과 동시에 걱정과 두려움도 크게 다가왔다.


열심히 하겠다고, 잘하겠다고 했지만 진짜 열심히 한다고 잘 될만한 일인지

잘 안되면 어떻게 할지, 수시로 드나드는 것이 불가능한 연구지인 만큼

실수 하나하나가 크게 작용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부담이 크게 다가왔다.

뭐,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걱정을 한가득 안고 8월부터 본격적으로 출장 물품을 포장하고,

(해상운송이기 때문에 8월에 연구 물품들을 짐으로 보내야 12월 초에 겨우 도착한다.)

연구 계획을 짜고,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정부로부터 남극출입허가를 받으며 바쁜 하반기를 보내고 나니



2023년 12월 11일,

출국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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