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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라고미
Oct 07. 2024
65. 집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4박 5일간 혼자 스웨덴에 남겨진 일상들
몇 달 전부터 정해져 있던 남편의 해외 워크숍 일정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심란했다.
한 번도 스웨덴에선 남편 없이 남겨진 적이 없었어서... 타 도시로 2-3일씩 출장 간 적은 있었지만 스웨덴 밖으로 나만 두고 간 건 처음이라 더 그랬던 거 같다.
나도 나지만
우리 남편은 4박 5일 내내 회사 사람들과 부대낄 걸 더 걱정했다.
둘 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이유는 달랐다.
새벽 비행기를 타야 해서 남편은 깜깜한 새벽 택시를 불러 타고 집을 나섰다.
작별인사 하는 게 이다지도 헛헛하고 슬픈지...
해가 뜨길 기다렸다가 마트를 갔다.
장을 한 아름 보고 돌아가는 길
이뻐라 하는 나무를 보면서 위안을 얻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는데 나중에 노랑으로 물들면 다시 오겠노라 속으로 약속했다.
안녕 알렉스!
첫날은 흐렸다.
구름으로 뒤덮여 하루종일 음울했던 날
그래서 그랬는지 나의 불안지수도 굉장히 높았다.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고
괜찮을 거란 생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나도 내 일상을 찾아갔다.
아침식사처럼 보이지만 저녁식사였던
발코니에서 본 첫날 노을
혼자 자고 일어났는데 뭔가 어색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고 해가 쨍해서 좀 멀리 걸었다.
오트우유를 넣은 라떼를 마시며
남편과도 통화하고 친구와도 통화하고
나름 그 시간들을 잘 보냈다.
별 거 안해도 해가 좋아서 좋았던 거 같다.
우리 남편은 첫날 아침부터 챙겨 간 비상식량
한국 컵라면과 김치를 뜯었단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남편의 아침...
해를 잔뜩 받고 기운을 충전했다.
전날 잔뜩 끓여 둔 청국장
남편이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일 때
실컷 먹어두려고 욕심부려 물을 많이 잡았더니
한강이 되었다. 그래도 간은 잘 맞춰서 맛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3일 연속 먹으니 살짝 물렸...
오후엔 온라인으로 주문해 둔 한국식료품 픽업을 다녀왔다. 컨디션 난조로 센트럴까지 나가서 딱 할 일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스웨덴 시나몬번 데이
여기도 무슨 데이들이 꽤 있어서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챙겨 먹는다.
빵집마다 시나몬번을 엄청 만들어 팔아야 했던 날
아침 일찍 장 보러 가는 길에 빵집에 들러 시나몬번 하나를 포장해 왔다.
아담한 동네빵집
투박한 빵 포장
밝아지는 아침 해를 보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가져온 드립커피백을 내려서
사 온 시나몬번과 함께
모양은 신경 쓰지 않은 듯한 투박한 빵
다른 집보다 가격이 좀 저렴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사이즈가 작아서 그랬나 보다.
스웨덴도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원래도 물가가 비싼 편이었는데 더 사악해졌다...
점심은 김치볶음밥
거실 소파에 누워서 바깥 풍경을 보는데
안 나가면 후회할 것 같은 날씨였다.
나가서 걸었다.
진짜 가을에 흠뻑 젖은 스웨덴, 스톡홀름
도토리?
스웨덴 마트에서 산 스페인산 고추
한국에서 사 온 건멸치
경상도 사람이라면 알지도 모를 고추다대기
엄마가 해 준 그 맛이 그리워 처음 만들었다.
이번에도 물조절 실패ㅜㅜ
그래도 먹을 만한 맛이라 두고두고 먹을 듯
흰밥에 이거 하나면 끝
호박잎 찐 거랑 같이 먹으면 최고인데!
가을가을한 우리 동네 길목
지하철 대신 한 시간 반을 걸어서 찾은 카페
날씨가 좋아서 가능했다.
주말이라서 오픈런
그래도 내 앞에 주문줄이 생겼고
몇몇 테이블이 이미 채워져 있었다.
샌드위치 먹으려다 채소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아서 결국은 크로아상
그리고 플랫화이트
주문하고 20분 정도 기다렸다 받은 커피
참 느림의 미학을 느끼게 해 준다.
한 시간 독서
사람들로 북적한 카페를 나섰다.
Normal에도 짜파게티를 판다.
되게 반갑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 다리를 넘어가면 우리 동네로 이어진다.
지하철 선로를 끼고 걷는데
지하철에서 보는 뷰가 참 예쁜 구간이다.
이 다리 지나면 지하철이 말 그대로 지하로 들어간다.
가을가을한 길가를 지나는데 눈이 참 즐겁고 기분이 그냥 좋았다. 발은 비록 굉장히 피곤했지만
냉털김밥과 냉털로제떡볶이
한껏 먹고 남겼다가 다음날까지 먹어야 했다.
그렇게 나 홀로 4박 5일을 보냈다.
짧다면 짧을 수도 있지만
우리 둘에겐 굉장히 길게 느껴졌고
서로 조금 더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남편이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크로아티아 기념품
왼쪽 두 개는 남편의 호기심
오른쪽 두 개는 내가 검색해 보고 알려준 것
저녁은 배달시켜 먹었다.
남편이 시킨 같은 종류 더블패티 버거
맛있게 먹었다!
이 나라는 감자튀김을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데
남편은 안 좋아하지만 난 좋아하는 트러플마요에 찍어 먹다 결국 집에 있는 케첩을 꺼내 찍어 먹었다.
후식 커피와 자몽
남편이 돌아오자
집에 소음이 생기고
뭔가 더 채워진 느낌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안정감이 느껴진다.
다음 날 다시 꽃을 다듬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꽃다발
고마워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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