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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Nov 02. 2024

시나몬의 계절

스톡홀름의 가을

나에게 스웨덴의 시작은 가을이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삭막해져 

비행기도 제대로 뜨지 않았던 그 해 가을

나는 한국에서의 짐을 정리하고 

스웨덴으로 왔었다.

그 때 스톡홀름은 완연한 가을이었고 

그 첫인상을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아름다웠지만 

사람들과의 거리 유지가 필수였던 시기

여긴 한국보다 규제가 강력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그리 달갑지 않았던 그 때,

쌀쌀한 스톡홀름의 가을 날씨만큼이나 차가웠던 시기였다.

그래도 스톡홀름에서의 가을 풍경은 예뻤고 지금도 참 예쁘다.

하늘은 높고 나무들은 붉은색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계절

아침 저녁으론 굉장히 쌀쌀하지만 

낮엔 따뜻해서 반팔도 가능케 하는 그런 계절이다. 


북유럽하면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이 익숙했지만

가을의 스톡홀름을 시작으로 여기 살면서 

여기도 사계절이 나름 분명히 있고 각 계절별로 다양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같은 계절이라도 나라마다 느끼는 것들이 다를 수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조금씩 다르다는 걸 

한국 반대편 여기, 스톡홀름에 살면서 알아가는 중이다.

하늘이 맑은 날도 있지만 

스톡홀름의 가을엔 비를 빼놓을 수 없다.

비가 잦게 내리고 비 온 뒤엔 낙엽이 쌓이는 풍경

이 또한 스톡홀름의 가을 모습이다.

걷기는 참 좋지만 오래 바깥에 머무르긴 쌀쌀한 그런 날씨

저절로 카페에 따뜻한 커피가 고파지는 그런 계절, 


스웨덴에선 커피와 빵이 필수가 아닐 수 없다.

정겨운 동네 빵집


시내로 나갈수록 빵집이 꽤 자주 보이지만 외곽으로 나올수록 빵집도 귀하다.

동네 사랑방같은 빵집이 있는 동네엔 더 애정이 간다.

이 빵집은 스웨덴에 처음와서 먹었던 빵집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모양도 굉장히 투박하고 그냥 스웨덴스러운 그런 곳.

여기서 난 시나몬번을 알았고 카다멈번을 배웠다.


이 두 종류의 빵은 스웨덴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빵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동네 빵집에 당연히 있어야 할 단팥빵, 소보로빵 같은 존재


최근 들어서는 펌킨스파이시라떼가 카페마다 생겨나고 있다.

처음 왔을 땐 이정도는 아니였는데 여기도 점점 유행이 생기나보다.

한국만큼 유행속도가 빠른 건 아닌데 

이름있는 카페나 빵집에선 유행을 따라 메뉴를 개발하기도 하니까

한 곳에서 시작해서 우후죽순처럼 퍼지기도 한다.

생각보다 굉장히 향신료를 다양하게 즐기는 스웨덴 사람들

빵에도 커피에도 음식에도 

한국에선 낯설었던 향신료가 꽤나 많이 들어가 있다.

시나몬은 그래도 우리가 계피라는 이름으로 익숙하지만

카다멈, 타라곤, 딜, 사프란 등 갖가지 향신료가 여기저기 쓰이고 있다.

언제부턴가 유행되기 시작한 시나몬번데이

누가 만들어서 시작했는지 모르게 빵집에선 경쟁적으로 이 날이 되면 시나몬번을 잔뜩 만들어 판다.

많이 사야할 경우엔 미리 주문도 받을 정도로 굉장히 사람들이 시나몬번을 많이 먹는 날이다.

사실 이 날이 아니라도 시나몬번은 흔하고 인기가 많은 빵이긴 하지만

이런 이름이 붙은 날이면 또 괜히 먹어야 할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든다.


어릴 땐 계피맛이 싫어서 공짜로 은행에서 주는 사탕 같은 것도 계피맛이 나오면 엄마한테 떠넘기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계피맛을 즐기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게 이런 걸까?

어릴 때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을 내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그 참맛을 느끼고 있다는 게

그게 참 신기하다.

시나몬을 좋아하지 않고서 스웨덴에 왔으면 즐길 수 있는 피카의 범위가 굉장히 줄어 들었을텐데

다행이다 싶다.

스웨덴에선 스타벅스보다 더 보편적이고 더 유명한 카페가 있다.

바로 Espresso House

에스프레소 하우스

스웨덴에서 시작한 카페 체인점으로 지금은 북유럽 여기저기로 뻗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커피 맛이 엄청 좋은 건 아니지만 무난하고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 자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담없이 즐기는 것 같다.

나도 어느 순간 앱까지 깔아놓고 종종 찾는다.

특히 오트밀크로 만든 따뜻한 라떼는 지금 쌀쌀한 이 계절에 잘 어울린다.

아이스커피가 익숙하지 않은 여기 사람들에게 

여름이면 아이스커피를 당연하게 팔아주는 카페이기도 하다.

저녁시간이 빨라지고 있는 스톡홀름의 가을

가을에 접어들면서 가장 아쉬운 점인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중이라는 거...

아직도 서머타임이 시행되는 유럽에선 서머타임의 종료와 함께 밤이 굉장히 길어진다.

가을과 겨울의 그 사이 그 날이 있다.


카페에서 마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플랫화이트 한잔

그리고 종이책이 주는 포근함

가을에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해가 좋은 날은 낙엽을 밟으면서 알록달록 단풍을 즐기고

쌀쌀하다 싶을 때 들어간 카페에서 즐기는 향긋한 커피

어쩌면 이런 사소한 것들이 스톡홀름에서 갖게 된 소소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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