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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고미 Nov 30. 2024

11월의 스톡홀름은

진짜 겨울이 온 스톡홀름의 풍경들

겨울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걸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는 시기, 11월

내가 보고 느끼는 스톡홀름에선 10월 말이면 눈이 흩날리기도 하는데

올해는, 어쩌면 앞으로는, 10월에도 11월에도 눈을 보기 힘들어 지는 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눈에 띄게 느껴지는 겨울이 오는 신호는 바로 어둠이다.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기도 하고

10월 말 서머타임이 끝나고 원상복귀하고 나면

낮은 급격히 짧아지고 밤은 지겹게도 길게 느껴진다.


오후 늦게 부터 가로등에 불이 켜진다.

5시에 켜지던 가로등이

4시

지금은 3시...

나중에 동지가 가까워지면 2시에 켜지기도 한다.

지금보다 어릴 땐 저녁, 밤이 좋아서 밤거리를 거닐기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리고 스톡홀름에 살면선 밤에 걸을 일이 잘 없기도 하고

즐기지 않게 되었다.

혼자 외출을 하게 되면 되도록 날이 밝을 때 움직여서

해가 지기 전에 귀가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어둠이 일찍 찾아오는 계절이 되면

밤 12시를 기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가 아닌

오후 3시를 기점으로 마음이 조급해지는 신데렐라가 된 심정이다.

어둠이 깔리기 전 하늘을 연보랏빛으로 왜이렇게 예쁜지 이 순간은 또 황홀하다.

사랑해

네가 최고야

메리 크리스마스


어느 언어로 해석되도 참 예쁜 말들이다.

시내 곳곳에 장식이 생겨났다.

10월 31일까진 할로윈

11월 1일부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크리스마스를 향해서 살아가는 사람들

각종 선물이 될만한 것들은 포장지가 바뀌고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특집인 것들을 내세워야 한다.

크리스마스라는 명칭이 붙으면 또 뭔가 특별해지고

지갑이 더 쉽게 열리게 되는 마법이 걸린다.

이상하리만치 눈을 보기 어려웠던 올해 11월

물론 북쪽 스웨덴은 눈이 내리고 이미 겨울왕국이라 했지만

같은 북유럽이라도 상대적으로 조금 더 남쪽인 스톡홀름에선

11월에 보기 드문 초록빛이 아직도 계속되었다.

나뭇가지는 이미 앙상해졌지만 초록빛이 남아있는 11월이라니...

기나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여기선

이렇게 서서히 찾아오는 눈과 겨울이 좋기도 하면서

동시에 기후변화에 대한 불안이 갑자기 막 밀려들기도 하는

멜랑꼴리한 기분이 오락가락 들었다.

버스정류장 전체를 크리스마스 장식 조명으로 꾸며 놓았다.

할인중인 제품을 광고하기 위함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시선강탈이다.

이 정류장 뒤로 보이는 하늘색 건물을 공연장이다.

연주회나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고

올해 노벨시상식도 여기서 열린다고 한다.

영광스럽게도 올해 노벨시상식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으실 분이 한국인이다.

그 분이 여기 와서 상을 받을 생각에 괜시리 나도 기쁘고 울컥하고 그랬다.

안으로 들어가서 축하할 수는 없지만 같은 도시 안에서 무한히 축하드리고 싶다.


어둠이 길어지니까 실내 조명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사실 조명에 그렇게 예민하지 않아서 우리집 조명들은 그렇게 세련되지 못하다.

처음 이사오면서 이전 주인이 조명을 싹 다 떼어 가셔서

1월에 이사왔던 우린 어둠 속에서 며칠 살아야했다.

급하게 주문해서 제일 빨리 배송받을 수 있었던 게 그나마 이케아였고

이케아에서 급하게 막 주문해서 설치하느라

인테리어 감각을 살려 볼 생각을 못했다.

감각이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북유럽하면 나름 북유럽 풍의 인테리어를 욕심낼 법한데...

우린 참 단순했고 지금도 그냥저냥 만족하며

필요할 때마다 사서 모은 살림살이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도

그 부조화에 익숙해져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도 요즘은 예쁜 조명을 보면 문득 관심이 가기도 하지만

새로 설치할 엄두는 못내고 있다... 귀찮음이 꾸미고 싶은 마음보다 항상 크다.

겨울이 되면 항상 보이는 식물들

스웨덴어 이름을 직역하면 '크리스마스별'

영어로는 아마 포인세티아

빨간색 하얀색

크리스마스를 연상케한다.

올해 나는 빨간색으로 하나 들여놨다.

제발 부디 크리스마스까지만 살아 있어라!

스톡홀름에 드디어 첫 눈이 내렸다.

전날 얕게 내렸다가 그 다음날은 펑펑 내렸다.

눈다운 눈이고 이제 진짜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굉장히 늦은 거 같았고 너무 안오다가 오니까 반갑기도 했다.

눈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였는데...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녹아버렸다.

눈이 오고 얼마 안있어 비가 계속 내리다보니 빨리 녹았다.

눈이 와야 진짜 겨울이라는 여기 사람들도 많이 아쉬웠을 거 같다.

특히 아이들은 겨울 내내 썰매를 타고 눈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그러는데

실컷 즐기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신기루 같았던 11월의 눈.

오후 3시의 스톡홀름은

굉장히 어둡고

귀가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12월에 비해선 

아직은 어스름이 내리는 

그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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