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문예지 에세이 부문 신인상 수상작(2023년 3월호 수록)
“이제 마지막 초밥입니다.”
한남동 골목 초입에 위치한 오마카세 집이다. 실내는 인테리어랄 것도 없이 깔끔했는데 오히려 이게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화려한 것보단 수수함에서 정직함이 읽혔다. 음악은 틀어 놓았는지 헷갈릴 만큼 작았는데 그 편이 대화하며 식사하기엔 최적의 장소란 느낌이 들었다. 예약 잡기가 왜 어려운 집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오늘 미팅은 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자리다. 나로서는 꼭 수주해야 하는 회사 대표와의 미팅 날짜가 정해지자마자 여기 오기까지 적합한 장소 선택을 하느라 사실 고민을 좀 했었다.
“우니를 밥 위에 올리고 감태로 감싸 마무리한 초밥입니다.”
갑자기 내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감태? 이게 감태 맛이라고? 감태가 이렇게 고급 요리 일리가 없었다. 내가 아는 감태는 그저 해안가에 널린 해초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입으로는 대화를 이어가는데도 이상하게 머릿속은 이미 그날로 돌아가고 있었다.
십여 년 전, 신혼 때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와 남편과 셋이서 친정집에 내려왔다. 평소보다 일찍 출발해서인지 도착했는데도 아직 해가 손바닥만큼 남아 있었다. 차가 친정집 비좁은 공동주택 입구로 들어서는데 눈앞에 누군가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였다.
“어르신, 여기 공용 장소를 이렇게 사용하시면 안돼요. 사람들 지나다니는 자리라!”
“알지. 아는디, 여가 햇볕이 잘 들어와서 말리기가 좋아 그러는 겨.”
“그래도 여기에 이렇게 펴놓으시면, 사람들 다니기도 불편하고 차 다니는 길이라 어르신도 위험할 수 있어요.”
“오늘이 우리 딸이랑 사위가 오는 날이라 오늘만 말릴껴”
“아버지, 왜 경비 아저씨에게 사정을 하고 있어요?”
“이것 좀 널어 둔다니까 안 된다는 겨. 조금만 더 마르면 되는디!”
“감태가 뭐라고 남한테 사정을 해요? 먹고 싶으면 사 먹으면 되지. 그거 얼마나 한다고요?”
“산 거랑 직접 딴 거랑 다른 겨. 만만해 보여도 감태 따서 말리는 거 보통 일 아녀. 앞으로 나도 몇 년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니께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주고 싶어 그러지. 김서방이 좋아하니께”
매몰찬 내 타박과 다르게 아버지에게 감태는 그런 의미였다. 그렇게 사정해서라도 온전한 그것을 입에 떠 넣어주고 싶은 부정(父情)의 매개물이었던 거다. 아버지 옆에는 김양식장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나무틀에 푸릇푸릇한 게 얇게 펴진 채로 햇볕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감태였다. 틀은 한 10개쯤 되어 보였다. 감태는 바다에 떠다니는 것을 대충 걷어다가 대강 말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적당히 구워져 적당한 크기로 단정하게 잘려 매번 밥상 위에 올라온 감태만 보았지 감태 틀도, 말리는 장면도 그날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친정에 오면 늘상 한상차림 밥상에는 아빠가 손수 잡은 우럭찜과 굴을 넣은 국, 꽃게로 끓인 겟국지탕으로 가득했다. 백년손님인 사위가 온다고 남들처럼 갈비찜, 잡채, 고깃국들로 치장한, 상다리 부러질만한 기름진 그런 밥상이 아니었다. 이게 나는 달갑지 않았다. 더구나 남편은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마 돈을 아끼려고 그러시나, 한때 이런 생각까지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셈을 할 줄 아는 분이 아니란 걸 잘 알기에 시원찮은 대접에 더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러 길래, 아버지가 그때 보증만 안 섰어도 우리 이렇게 주차할 데도 없는 좁은 데로 안와도 되는 거였잖아요. 우리 원래 집은 마당도 넓고 감태고 뭐고 맘껏 널어도 됐었는데…”
“… …”
갑자기 이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주워 담고 싶어도 때는 이미 늦었다. 차 다니는 길에 감태를 말리는 아버지를 보고 걱정이 되어서였는지, 경비아저씨에게 한 소리 듣는 아빠를 보고 내 자존심이 무너져서인지, 이날따라 유독 가시 돋친 말이 툭하고 나와 버린 것이다.
어쩌면 아침저녁으로 어린 아이를 맡기고 회사 다니던 내 신세의 고단함을 괜히 이 사건에 얹어 하소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아버지가 내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말 해놓고도 속상한 내 마음과 같을 것이다. 다행히도 유독 감태 반찬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일단락되긴 했지만 나는 그날 이후로 감태를 먹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버지가 자상한 편인 건 아니었다. 유년 시절 내가 본 아버지는 무뚝뚝했다. 막내인 나에게도 아버지가 웃으며 번쩍 안아 준다든지 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런 아버지가 달라지신 건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즈음이다.
아버지가 친한 지인분의 신원 보증을 섰다. 그 지인은 큰 액수의 회사 돈을 횡령했고 아버지는 횡령 당사자의 채무를 대신 떠안아야 했다. 가뜩이나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이건 날벼락 같은 사건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아버지의 작은 체구가 쪼그라들어 더 작게 느껴졌다. 그런데 은행에 큰돈을 내어 주고도, 평생 살던 집에서 나왔어야 했는데도 아버지는 별다른 내색 없이 평소처럼 가게에 나가셨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버지는 일을 했다. 오히려 그 일이 있기 전보다 더 일찍 가게를 열고 더 늦게 가게를 닫았다.
언뜻 보기에 체념이 빠른 것처럼 보였지만 그건 체념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아버지의 최선이었다. 평생 일군 삶의 터전이 타인 손에 덧없이 날아간 순간에도 아버지는 당신의 억울함을 앞세우기보단 가족부터 챙겼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했다. 심지어 지방 국립대에 장학금 받고 가기를 바랐던 막내딸이 아무 연고 없는 서울로, 그것도 사립대에 간다고 했을 때마저도 오히려 “장허다 우리 딸, 그려, 그렇게 해라. 어떻게든 되겄지” 이렇게 다독이셨다.
넉넉하게 뒷바라지 못해주어 미안하다고 드러내놓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누구보다 미안해하신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어떻게든 등록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시던 분, 그게 내 아버지였다. 딸 결혼식에서 사랑한다는 말 대신 아무도 못 보게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셨던 분, 그게 아버지였다.
“감태로 알려져 있는데 원래 이름은 가시파래라는 고급 식재료에요. 감태는 자라는 환경이 까다롭고 채취가 어려워서 양이 많지 않아요. 이 알싸한 맛이 일품이라서, 한마디로 초밥집에서 고급 재료로 순식간에 떴지요. 손님들도 이름은 잘 모르시는데 한번 드시면 특이한 맛이라고 좋아들 하셔요. 수급이 잘 되면 좋겠는데 귀한 재료라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셰프는 감태만 몇 장 올린 접시를 내 앞에 내밀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데 알 수 없는 뿌듯함 같은 것이 가슴에 차올랐다. 곧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접시에 담긴 감태에 아버지 얼굴이 어리기 시작했다. 접시는 드넓은 푸른 바다가 되고 그 위에서 감태를 낚는 묵묵한 아버지가 보였다.
감태는 청정 바다에서만 자라 희귀하다. 감태는 높은 파도에도 꿋꿋하다. 감태는 한번 먹으면 잊지 못할 알싸한 맛이 있다. 감태는 푸르다. 감태는 귀하다. 이런 감태가 아버지를 닮았다. 발견하기 어렵지만 그래서 더 희귀하고 소중한, 시련이 있어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꿋꿋이 자신의 한 생(生)을 기어코 살아내는, 그런 우리 아버지를 감태가 꼭 닮았다.
“대표님,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벌써 일어나는 거예요? 자리 옮겨서 와인이라도…”
“제안은 감사한데 다음에요.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대표를 소개해 준 지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자리를 옮겨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게 당연한 수순이고, 게다가 주최자인 내가 먼저 자리를 뜨는 건 상대에게 실례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었다. 계약도 절실했지만 그 보다 더 절실한 게 있었다.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급한 일 말이다.
신호가 한번만 더 가서 받지 않으면 끊어야지 싶었는데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막 잠에서 깬 듯 평소보다 작고 어눌한 목소리다.
“...혜숙이냐?”
“아직 안 주무셨어요? 아버지! 감태, 감태 말이에요. 주말에, 아, 아니 내일 내려갈게요. 저 혼자면 어때요? 두 시간이면 가는 걸요. 왜냐고요? 감태, 아버지가 딴 감태가 너무 먹고 싶어서요!” -끝-
문예지 등단 작품부터 발표 신작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결말을 알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는 캄캄한 가시밭이 인생이라면 무수한 일들 중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일들만을 모아 글로 쓰겠습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별로 수를 놓듯 한편씩 써내려가 그밤 밝힐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별을 보고 누군가는 따듯함을, 누군가는 의욕을, 누군가는 희망을 얻는다면 그 또한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가혜숙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