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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Oct 27. 2023

나만 몰랐던 피부 건조 유발 습관

종합문예지 등단 및 발표 에세이(2023년 9월호 수록)

"요즘 무슨 일 있어요? 피부가 그냥 까칠해 보이네~"

"아. 그래 보여요?"

 

단골 두부집 사장님은 고우신 분이었다. 동그란 얼굴형에 하얀 피부 눈매가 선한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곱게 살림만 해오셨을 것 같은 얼굴이다. 그런데 장사도 잘하셨다. 두부 한 모만 사러 가도 그렇게 시식해보라고 권했다. 콩물 만들 때 나오는 거라 돈 안 받아도 된다며 콩비지를 덩어리째 봉지에 척척 담아주곤 했다. 사람들은 저녁 지을 시간이면 두부 가게로 몰려왔다. 그런 두부 사장님이 없는 말을 지어냈을 리 없었다. 나도 모르게 뺨을 쓸어댔다. 서걱서걱 푸석한 느낌이 들었다. 


두부 한 모를 사서 들어오는 길이었다. 1층에서 비밀번호를 누른 뒤 별표만 누르면 문이 열릴 참이었는데 ‘오늘 저녁 청국장 어때? 오늘따라 청국장을 너무 먹고 싶네' 남편의 육성이 들리는 듯했다. 다시 두부 가게로 돌아가 남편이 부탁한 청국장용 된장을 사 오고 나서야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을 수 있었다.


요즘 자꾸 뭔가를 깜박 깜박한다. 이것저것 하는 일도 많은 데다 중학교를 준비해야 하는 아이 교육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 때문이라고 위안해 본다. 세수라도 하고 저녁을 해야지 싶어 욕실로 갔는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내가 봐도 불과 2~3개월 전과 달라져 있었다. 눈 밑은 푹 꺼져있고 칙칙한 피부는 탄력이 없어 축 처져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건조함이었다. 거울 속 여자는 자기 얼굴을 매만지면서 물음표를 하고 있었다. 나도 나이가 든 걸까. 오늘 밤 씻고 나서는 토너만 바르지 말고 에센스도 발라야겠다고 다짐한다. 아니면 팩이라도 붙여볼까? 하지만 이 욕실을 나가게 되면 금세 잊을 거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혜숙, 요즘 잠을 통 못 자? 안색이 그냥 많이 안 좋네."

"언니, 제 얼굴이 그래요?"

아이 친구 엄마인 J 언니는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된 동네 언니다.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을 때부터 알고 지냈다. 그녀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퍼줄 때도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티 안 나게 해주려는 게 느껴진다. 그런 언니가 이야기를 꺼냈을 정도면 사태가 심각하다는 소리다.

 

나도 한때는 피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피부 생각을 하면 대학교 때가 떠오른다. 대학생 연합 서클 활동을 했던 터라 나는 늘 가야 할 데가 많았다. 서울을 종으로 횡으로 가로질러 다녔다. 무슨 모임이 그렇게 많았는지 신촌에서 혜화동으로 혜화에서 왕십리로 왕십리에서 정릉으로 정릉에서 다시 신촌으로, 이동은 시내버스를 주로 이용했는데 버스를 타면 그렇게 잘 잤다.

 

공모전 시기에는 종종 밤샐 때가 있었는데, 새벽에 들어갔다가 아침에 대강 씻고 나오곤 했다. 선크림은 꼭 발라야 한다고, 안 그러면 주근깨 생긴다고, 나중에 너 후회한다고 언니가 그렇게 말했어도 나는 맨얼굴로 다녔다. 그래도 피부는 반짝반짝 빛나기만 했다. 아마 그 또래는 비슷비슷하지 않았을까? 젊다는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피부가 좋은 편이셨다. 별다른 것을 하지 않는데도 윤이 나고 매끄럽고 적당한 탄력이 있었다. 그건 아주머니들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다섯 남매 중에 내가 제일 엄마를 닮았다. 동그란 얼굴, 갈색 눈동자, 좀 튀어나온 광대뼈, 통통한 손이며 통통한 발볼까지. 뭐하나 딱히 장점이라고는 할 수 없는 특징들이지만 나는 엄마를 닮은 그런 내가 좋았다.

 

나를 보면서 엄마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 언젠가 엄마와 이별한다고 해도 엄마를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금까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이유가 퍼뜩 떠올랐다. 그해 가을 유독 여러 사람에게 동시다발적으로 피부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바로 그 이유 말이다. 

 

당시 나는 식구들이 자러 들어가는 밤이면 나도 자러 들어갔다가 조용히 베개를 들고 거실로 나오곤 했다. 물을 먹으려고 거실로 나온 남편이 발견하고 '안 자고 뭐 하려고?' 던진 물음에 '응 할게 남아서.'라고 얼버무렸다. 나와서 뭘 했냐면, 핸드폰을 켠다. 핸드폰 화면이 가로로 전환되지 않게 세로로 고정해놓은 뒤 한 웹툰 사이트에 접속했다.

 

친구가 추천해 준 웹툰이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엄마가 어느 날 불현듯 딸의 집에 나타나 요리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잔소리도 한다는 엉뚱하면서 슬픈 결말이 예상되는 설정의 웹툰이었다. 하룻밤에 딱 한편씩 아껴봤다. 다 보고 나면 허전할까 봐 그렇게 했다. 웹툰을 보고 난 뒤 핸드폰 속 사진을 들여다본다. 많이는 아니고 역시 하룻밤에 한두 장, 그렇게 아껴가며 엄마의 사진을 봤다. 그때쯤이면 이미 눈물은 한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곤 했다. 그렇게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은 작은 회색 베개에 쏙 흡수되곤 했다. 어둠 속에서도 베개에 얼룩진 부분은 선명히 보였고 눈물 자국은 낮에 더욱 선명했다. 그러다 잠이 들곤 하는 날들이 한 달, 두 달, 석 달 지속되었다.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알고 보니 매우 상관있는 일이었다. 내 피부가 급격히 건조해진 것과 지난 몇 개월간 내가 밤에 했던 행동들은 상관관계가 있었다. 밤마다 내가 한 행동을 떠올려보니 피부 나빠졌다는 말을 왜 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염도 높은 눈물이 타고 내려간 볼은 그나마 가볍게 발랐던 토너를 씻어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안 바른 40대의 맨얼굴은 밤새 메마르고 쩍쩍 갈라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낮에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았어도 화장품을 찾아 바른다든지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해도 할 말 없었다.


"혜숙, 이거 한번 써볼래? 아는 동생이 줬는데 너무 많이 줬네.“

"이게 뭐예요 언니, 고마워요, 잘 쓸게요!“

”응, 오늘 밤부터 하나씩 뜯어서 꼭 바르고 자.“

J 언니가 써보라고 내민 건 농축 앰플 화장품 한 상자였다. 그녀가 건네준 앰플은 마치 처방전대로 지은 효능 좋은 약상자 같았다.

 

이제 밤마다 웹툰을 보면서, 엄마 사진을 보면서 울다가 잠드는 일은 그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낮에 얼이 반쯤 나간 상태로, 까칠한 얼굴로 다니는 것 또한 엄마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안 계시고 처음 맞는 추운 날에도 이렇게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려야 했다.

 

그것이 엄마를 보내드리고 처음 맞는 겨울에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사려 깊은 J 언니는 내 피부 상태도 내 마음도 짐작하고 남았을 것이다. 그녀가 건넨 앰플이 쪼르르 나를 보며 어서 써달라고 독촉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 개씩. 눈물이 나려고 하는 시간에 발라주라고. 이제는 환하게 웃어도 된다고. 앰플 상자가 마치 오르골인 양 그 속에서 그토록 그리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끝-



문예지 등단 작품부터 발표 신작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결말을 알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펼쳐지는 캄캄한 가시밭이 인생이라면 무수한 일들 중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일들만을 모아 글로 쓰겠습니다. 캄캄한 밤하늘에 별로 수놓듯 한편씩 써내려가 그 밤을 밝힐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 별을 보고 누군가는 따듯함을, 누군가는 의욕을, 누군가는 희망을 얻는다면 그 또한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가혜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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