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학부는 철학과 사학과 국어국문학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는데, 당시 지도 교수님이시면서 인문대 총괄 교수님이셨던 류교수님이 떠오른다. 그 분은 당시 '천재 작가'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교수님은 당시 매해 국문과 학생 중 10명 남짓을 선정해 글쓰는 모임을 이어가도록 독려했다. 무슨 말을 해도 비문이라고 지적받을 것 같았던, 누가 봐도 곧 작가 타이틀을 달 것 같은 선배들과의 살벌했던 첫만남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00소설회>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매월 글을 완료하고 합평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수님 없이 우리끼리 할때가 많았고 참여한다 해도 별 말씀 없으셨다.
교수님은 집필법 이런 건 안가르쳐 주시고 그저 쓰라고 하면서 간식을 사주거나 당시 흔치 않았던 여주나 가평 때론 강원도 소재의 콘도 같은 곳을 빌려서 1박 글쓰기 여행 보내주기도 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교수님 사비였을 것이다.
20대의 나는 ‘자기는 천재 작가라는 소릴 들으면서 우리는 왜 구체적인 방법을 안 가르쳐 주나?’싶었는데 그 분은 아셨던 것 같다.
듣고 보고 읽고 써온 이력이 각기 다른 개인에게 대체 어디서부터 가르쳐줘야 하는지 막막함과 글쓰기 스킬 전수의 그 가벼움을. 그것만은 아니었을 거다. 00소설회는 실체 있게 꾸렸지만, 문하생들이 스스로 깨우치기를, 그때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려주셨던 것 같다.
돌고 돌아, 20년후 글쓰기와 글쓰기 코칭을 업으로 하면서 20대때의 내가, 그 시간이 종종 떠오른다.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더 성숙해져 있을까?
당시 이름을 떨쳤던, 학교 안팎 작가 선후배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개개인이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지, 아닌지는 잘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지속해서 쓰는 사람만이 작가로 남는다. 그러고보면 언제 글쓰기를 시작했는지는, 언제까지 쓸 것인지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교수님에게 자주 칭찬을 받는, 반듯하게 정리된 필통을 가지고 다니는 문하생은 아니었다. 가방에 흔한 볼펜 하나가 없어서 '저 볼펜 좀...' 빌리기 일쑤였지만 가끔 교수님의 눈을 동그랗게 뜨게 하는 글을 쓰는 제자였던 것 같다. 글을 쓸 수 있을때나 없을때나 계속해서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교수님과 그때 철부지 우리들이 떠오른다.
교수님이 모난 돌멩이 같았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 그때 우리가 풍족한 간식을 먹으며서도 서로를 치열하게 쓰도록 만들었던 팽팽했던 합평 시간, 여름에는 올라가다 쪄죽을 것 같았고, 겨울에는 입에서 김이 나왔던 인문관 옥탑방을 만난다. 그때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