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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떠난 어떤 부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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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슈가

"젓국 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그게 뭐야?"

"나도 잘 몰라.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

"...... 오늘 날이 흐린데?"

"오히려 좋지. 흐린 날 따뜻한 국물 당기잖아."

"좋아. 가보자."


젓국 갈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식명이었다. 젓국이면 젓국이고 갈비면 갈비지 '젓국 갈비'라니.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유튜브 영상에서 본 것 같기도 했다. 강화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국물이 말간, 일종의 갈비 전골.


젓국이면 어떻고 갈비 전골이면 어떠랴. 그가 가자는데. 나는 소지품과 반려견 짜장이의 짐을 손에 잡히는대로 챙기기 시작했다.


"나오니 해가 비치네. 당신은 운도 좋다, 정말."

운전대를 잡은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갈까 말까 하는 게 보였다. 사실 그 구간을 지나고 다시 하늘은 흐렸지만 뭐 어떠랴. 한낮인데 해는 비칠 때가 되면 또 비치겠지.


한 시간여를 달려 목적지 식당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은 우리 빼고 단 한 테이블 뿐이었다. 식당은 깔끔했고 채소는 싱싱했다. 주인도 친절했다. 반려견 동반 가능한 식당이었고 다행히 짜장이는 옆 좌석 캐리어 안에서 조용히 우리의 식사가 끝나길 기다릴 모양이었다.


"정말 맛있다. 생각보다 더 괜찮네. 당신은 어때?"

"응. 나도. 기대보다 훨씬 맛있어."

젓국 갈비는 생각보다 신기한 음식이었다. 샤부샤부처럼 맑간 국물에 잘게 자른 돼지갈비가 여러 점 들어있고 배추, 무, 파, 팽이버섯, 단호박 채소가 풍성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새우젓은 전체적인 감칠맛을 담당했다. 아 그러고 보니 강화도 특산물 중 하나가 새우젓이었지.


급할 게 없었다. 식사로 주문한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야무지게 나눠 먹고 우리는 걸어서 산사로 향했다. 전등사. 반려견 동반 출입이 가능한 절이어서인지 귀여운 강아지들이 주인을 따라 대롱대롱 걷는게 보였다. 천천히 산책하고 기도 드리고 약수도 한 모금씩 마시고 천천히 내려왔다. 이대로 집으로 가기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카페, 갈까?"

"나야 좋지. 바다 보이면 더 좋겠다."

그가 스마트폰을 뒤적뒤적 하더니 '찾았어!' 한다. 목적지를 그곳으로 정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카페는 생각보다 거리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만족 스러웠다. 역시 우리 말고 다른 손님은 한 테이블 정도. 주문하고 2층으로 올라오니 바다뷰는 아니지만 뻥 뚤린 갯벌뷰가 보인다.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어서인지 오히려 운치 있게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이날 나는 모든 것을 괜찮다고 결정하기로 한 사람 같다. 설령 비바람이 불어서 돌아왔어도 "괜찮아, 다음에 가면 되지."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이 날 내가 집중한 건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이었기에. 이건 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에 관한 이야기나 돈 이야기, 어떤 결정에 관한 이야기, 무엇에 관한 판단이나 충고 따위는 나누지 않았다. 그러기로 무언의 약속이나 한 사람들처럼.




2여 년 전 화마가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 우리는 여름 휴가에 동해로 떠났다. 입시 중이라 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동반하고서. 좋아하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좋았지만 날은 잔인할 정도로 더웠고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그냥 시원한 데서 OTT나 보고 책이나 읽다가 맛있는 걸 먹는 그런 여행을 원했는데 남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행까지 와서 왜 바지런히 움직이지 않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 생각해 보면 그 와의 여행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바빠서, 너무나 바빠서 일상에서는 누리지 못한 풍요로움- 이를테면 멋진 경치, 랜드마크 방문, 끼니때마다 맛있는 식사와 디저트- 을 집약해서 즐기고 싶어 했다. 마치 다시는 못올 사람처럼. 대부분 속도가 빨랐고 대부분 과했다. 여행에서 우리의 속도는 이렇듯 어긋났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달랐다. 어떤 부담도 계획도 없이 당일 아침에 시작되었다. 가서도 각자의 '지금, 여기'에 충실했다. 과하지 않았고 그래서 편안했다. 남편은 지금 새로운 일을 준비하며 스킬업과 충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래서 여타의 여행과 결이 달랐던 걸까?




그는 웬일인지 카페에서 아이스라떼를 주문했다. 평소 아메리카노만 주문하는 사람인데. 라떼를 주문한 그가 왠지 스위트하게 느껴졌다. 이 시간이 강화도로 불쑥 젓국 갈비를 먹으러 나온 시간이 아니라, 연인 사이의 데이트처럼 느껴졌다. 뭐 어떤가. 세상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니까, 나 좋을 대로 해석하면 그만이지. 풉. 나도 참 엉뚱하다는 생각을 한다.


갯벌 뷰가 장관인 카페를 나올 때 화장실에 들렀다. 뭔가 아쉬워서다. 핸드 워시가 에이솝이다. 아, 이 사장님 부부 카페 운영에 진심이구나. 나는 기다리고 있던 남편에게 말했다.


"소금빵, 하나 포장해 가자. 린이도 분명 좋아할 거야."

화장실 핸드 워시를 보고 소금빵을 사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비약이 심한 걸까. 풉. 또 웃음이 나왔다. 돌아오는 길 운전은 내가 했다. 조금이라도 쉬라는 배려에서였다. 물론 직접 운전할때보다 내가 운전할 때 그는 더 긴장하는 듯 하지만.


돌아오며 생각했다. 20년 만에 떠난 첫 부부 여행이었다고. 일상에서 벗어나 오직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몸과 마음을, 뇌를 쉬게 해 준 시간.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혔던 기나긴 할부의 시간을 끝내고 마침내 우리는 온전한 하루를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를 미래의 행복을 좇았던 시기를 지나 이런 시간이 도래했다고. 이 감각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우리에게 '부부의 여행'라는 배송은 이제 막 도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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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의 일을 하며 얻은 것을 씁니다. 마음 속에 파고드는 작가이고 싶은 사람. 진심 글쓰기 모임을 운영합니다. <감성 콘텐츠>출간, 등단, 예술활동증명, 26년 에세이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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