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형 Dec 13. 2021

내가 죽을 때 10개의 박스만 남으면 좋겠다.

생일선물로 애플 워치 대신 수납함을 원했던 이유

최근에 엄마가 "니는 스톱워치 그런 거는 안 끼나?"라고 물었다. 스마트워치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뭐할라고"라고 대답했고, 엄마는 "편해 보이길래"라고 말했다. 엄마가 쓸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엄마는 내가 쓰면 편할 것 같아 보여서 물어봤다고 했다. 며칠 전 손님이 스마트워치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했다던데, 그게 그렇게 편해 보였 나보다.


그러고도 며칠을 스마트워치에 대해 물어보더니, 내 생일날에는 기어코 애플 매장을 들렸다. 웬일인가 싶었는데 여전히 애플 워치 얘기였다. 내 손목에 이 모델 저 모델을 차보더니 작은 게 더 귀여운 거 같다는 둥 계속 이런 거 필요하지 않냐고 했다. 엄마는 젊은 아들이 남들 다 쓰는 스마트워치 하나 안 쓰는 게 내심 마음에 계속 걸렸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이런 걸로 마음 쓰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애플 워치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물건이었다. 서핑을 하고, 운동을 하기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많이 해봤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게 꼭 필요한 것으로 내 주변을 채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애플워치는 계속 나에게서 우선순위가 밀렸던 터였다.


나는 가방 하나만 들춰 메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노트북과 카메라를 넣은 가방 하나만 있으면 사실 어디든 가서 먹고살 수 있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실은 나는 물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이라 마음처럼 이런 것이 쉽지 않았다. 나는 '지운다'가 아니라 '편집한다'의 관점으로 나의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물건은 기억을 담는다. 이것이 우리가 물건을 하나의 추억으로 생각하고 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리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나의 수많은 흔적이 담인 물건들은 아직 우리집 곳곳에 즐비해있다. 나는 이것들을 모두 버릴 생각은 없다. 그저 튼튼한 박스에 정성스럽게 이름표를 붙여 어느 곳이든 정리를 해두고 싶은 것이었다.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은 애플워치가 아니라 내 물건들을 담아둘 수납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기억도 편집되어 남는다. 중요했던 기억은 중요하지 않은 기억이 되기도 하고, 아예 잊히기도 한다. 그때는 그 기억이 담긴 물건을 버릴 때가 온 것이다. 그때까지는 잘 정돈된 박스에 들어가 있기만 하면 된다.


생일선물로 받은 수납함에 물건들을 정리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내 짐들이 딱 10개의 박스에만 담겨있었으면 좋겠다고. 이 10개의 박스를 열어보면 내게 중요했던 내 삶의 기억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지 않을까.


엄마는 오늘도 애플워치 아직도 필요 없냐고 물었다. 내 생각에는 엄마가 갖고 싶은 게 분명한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