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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Dec 14. 2021

밥을 해주지 않아 미안하다는 엄마에게

우리 가족은밥을아웃소싱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서 생활했다. 중고등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은 서울로 가면서 따로 살았고, 늦게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벌써 따로 살아온 세월이 13년이나 됐더라. 중고등학교 때는 주말에 종종 집을 들르고, 성인이 되고부터는 명절 때만 내려가는 정도였으니, 고향집은 '내 집'같은 편안함보다는 부모님의 집과 같은 곳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을 했다. 많은 90년대생이 이런 맞벌이 가정에서 자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집은 엄마도 아빠도 일을 했다. 초등학교 때 까지는 학교 가기 전 엄마가 뭐든 챙겨주시곤 했다. 아침을 잘 먹지 않는 아빠였기에, 아침에 우리 네 식구가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일은 드물었다.


초등학교 때가 엄마가 정기적으로 우리의 밥을 챙겨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나와 동생은 기숙사에서 살았기에, 엄마가 우리의 밥을 챙겨줄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주말마다 집을 갔지만 '집밥'보다는 주로 외식을 했다. 우리 가족에게 외식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타지로 대학을 가고서는 더욱 엄마가 밥을 챙겨줄 일이 없었다. 아예 따로 살았기에 내 밥은 내가 챙겨 먹으면 됐다. 기숙사에 있을 때도, 서울에 있을 때도, 군대에 있을 때도 남들이 다 그립다고 하는 ‘엄마 음식’이 사실 내게는 없었다. 엄마는 집에서 요리를 잘 안 했기에 그리워할 엄마 음식이 없었다.


요즘 들어 엄마는 늘 나와 동생에게 밥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엄만데 그거조차 못해준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듯 말했다. 아들 군대 제대하는데 집에서 밥도 하나 해주지 못했다고 속상해했다. 


미안하다는 엄마지만, 사실 나는 엄마가 집에서 밥을 안 한다는 것에 대해서 한 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 엄마는 우리를 키우기 위해 돈을 버는 것만으로도 바빴고, 그 와중에 요리를 제외한 집안 살림도 했으며, 쌍둥이 두 아들을 동시에 명문대에 보낸 대단한 엄마다. 엄마는 집안일의 일부인 밥을 아웃소싱 했을 뿐이다. 나는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우리 가족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택했을 뿐이었다. 


나는 차라리 엄마가 '밥 하는 것'은 엄마의 역할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한다. 집에서 밥 먹기를 그토록 원했으면, 엄마가 아닌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하면 됐다. 그러지 않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무언의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밥 하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 속상하다. 


20대 후반이 되고, 13년 만에 네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엄마는 또 말한다. 밥도 하나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도 우리 엄마를 비난할 수 없다. 엄마 매일매일 외식하는 우리 집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걱정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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