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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Dec 15. 2021

나는 매일 다른 바다를 만난다.

가끔 우울해도 괜찮은 이유

나는 무더웠다고 하는 여름, 부산 광안리에서 태어났다. 20년을 부산에 살았지만, 정작 바다를 가는 일은 그리 자주 있지 않았다. 원래 옆에 있으면 존재를 잘 모르지 않는가. 그 이후 7년을 서울에서 살면서 바다를 잊고 지내왔다. 종종 부산에 내려갈때에도 바다를 굳이 찾아가는 일은 없었다. 


다시금 바다를 만나기 시작한 것은 서핑에 관심을 가지고부터이다. 몇 해 전부터 여름이 되면, 서핑을 하러 양양을 가기도 하고, 송정을 가기도 했다. 그래 봤자 여름마다 한 번씩 한 것이니, 서핑'해봤다'정도이지 서핑'한다'의 수준은 아니었다. 어떤 뉘앙스인지 알테다. 서울에 살면서 서핑을 꾸준히 하기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지낸 지 7년이 지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산에서 꽤나 오랫동안 지내고 있다. 학창 시절 친구들도 다들 흩어져있어 부모님 외에는 딱히 만날 사람이 없는 이곳이다. 나는 부산에서 지내는 동안 서핑을 제대로 즐겨보기로 했다.


서핑을 시작한 5월, 새벽 일찍이 서핑을 가는 날이 많았다. 그때 송정의 바다는 넓고도 고요했다. 파도는 꽤나 긴 시간을 거쳐 한 번씩 왔고, 초보 서퍼였던 나는 그 마저도 놓쳐버리는 일이 많았다. 양양 바다의 거셌던 파도를 기억한다면, 송정 바다의 파도는 정말 드넓고도 잔잔했다. 


그랬던 바다는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어느새 금방 성이났다. 그날의 바다는 내가 알던 송정 바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세차게 치는 파도를 보며 "송정에도 이런 파도가 오는구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바다가 성이 난 덕분에, 나는 파도가 무섭다는 것을 배웠다. 그날이 바로 내 핸드폰을 파도가 집어삼킨 그날이다.


그러기를 며칠, 다시금 찾은 그날의 송정 바다는 우리를 재밌게 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나 보다. 그날은 속도가 빠른 파도가 5초에 한 번씩 왔고, 우리는 그저 그 파도에 몸을 싣기만 하면 됐다. 성이 나있던 파도는 또 온대 간대 없고, 오늘은 꽤나 장난기 많은 기분인 듯했다. 


나는 매번 하나의 바다를 나가지만, 매번 다른 바다를 만난다. 결코 '송정 바다는 이렇다.', '양양 바다는 이렇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날의 바다는 어떤 기분일지 아무도 모를 테니까. 8월이 지나고, 오늘의 송정 바다는 5월의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었다. 잔잔했던 바다가 그리워질 때쯤이었는데, 마침 잘 왔다 싶었다. 


오늘 바다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같은 바다도 매일매일이 이렇게 다른데, 같은 사람이라고 어떻게 매일매일 같을까. 가끔 화가 날 때도 있고, 가끔은 평온할 때도 있고, 또 가끔은 우울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바다다. 매일매일 다른 파도가 칠 것이다. 가끔 우울의 파도가 치더라도 괜찮다. 또 다른 파도가 또 다른 바다를 만드는 때가 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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