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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형 Jan 24. 2023

이유 없는 글쓰기의 이유

무슨 글을 써야 하나 생각하다 3주가 지났다

어김없이 새해가 밝았고, 글쓰기라는 목표는 죽지도 않고 살아왔다. 일을 계속 미루는 것은 완벽주의 때문이라는데, 나의 완벽주의가 참 여러 가지 도전을 망치고 있음에 분명했다.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쓰겠다 마음먹었건만, 1월의 3주가 지났다. 괜히 작년에 쓰다말았던 글을 다시 들춰보다가, 쓰지도 않을 책의 이름을 지어보기도 했다가, 이러다가 진정 글쓰기라는 목표가 죽어버릴까 싶어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면서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도 아닌 이 '글쓰기'라는 행위에 나는 왜 이렇게 집착하는가. 매년 올해의 목표에 '글쓰기'가 있었고, 적잖이 시도하다가 꾸준함에는 실패했다. 나도 책을 내보겠어라는 원대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주제로 어떤 글을 연재하는 것은 더더욱 의지가 없다. 특별한 의미는 없어보이는 이 일에 나는 왜 이렇게 간절했던 걸까.


생각이 많은 나는 이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도구로 글을 쓰곤 했다. 5년간 운영했던 브랜드를 폐업하고서 12편의 글로 이 시간들을 정리하는가 하면, 4개월의 부산 생활을 글을 쓰며 정리하거나 하는 식이다. 아마도 그 시간을 비워내고 싶었던 탓이었다. 글로 남겨두면 지난 과거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나는 지난 날을 회고하며 12편의 글을 쓰고서 더 이상 폐업한 나의 브랜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 나는, 오히려 글쓰기를 목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는 듯하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썼던 글은, 역할이 바뀐 듯 나를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글쓰기도 하나의 운동과 같아서 이토록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아마 글쓰기 근육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글쓰기에서도 근손실을 걱정해야 한다니 이 무슨 좌절스러운 생각인가. 지금 당장 정리해야하는 복잡한 생각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과연 지금 나에게 글쓰기가 필요한 것인가.


한 때 디자이너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주변 혹은 나 자신에 대한 관찰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 관찰의 행위가 디자인에서 중요하기에 이 둘이 닮아있다고 느꼈다. 어쩌면 나는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생각에 이 '글쓰기'에 간절할 것일 수도 있겠다. 내가 특별한 이유 없이 '글쓰기'를 하려는 이유는 이 '글쓰기'라는 행위가 내가 하는 일인 '디자인'과 닮아있기 때문인가보다.


글쓰기가 나의 디자인 작업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사실 더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든 거 같기도 하다. 마치 이것이 디자인 실력의 일부가 되어버린 마냥,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못하고 3주가 지났다. 과연 이것은 좋은 동기였을까. 생각보다 실리적인 이유는 인간의 동기를 떨어뜨리더라. 


새해의 첫 글이라고 하기에 부끄럽기에 짝이 없는 글이지만, 이 무의미한 완벽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자. 당분간 특별한 이유가 없는 글들이 난무하겠지만, 이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었다. 어떤 글을 쓰는 것과 상관없이 글을 쓴다는 행위가 목적이 되는 삶. 올해는 조금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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