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형 Feb 01. 2023

지금 바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봐라

맞아, 아빠는 우리에게 늘 이렇게 말했지

서울에서 출발해서 양양을 가는 길이었다. 2시간 반이 걸린다고 하는데, 아빠는 공방에 출근하셨을까 하며 전화를 걸었다. 내심 아빠한테 즉흥적으로 혼자서 여행 가기로 했다고 우쭐대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운전하는 내내 심심할 것 같기도 했다. 아빠는 늘 내 전화를 빠르게 받는다.


어젯밤에 내일 어디든 가보자고 결심했다는 얘기, 아침에 운동을 하자마자 바로 양양으로 출발했다는 얘기, 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1시간이 넘게 흘러있었다. 살짝 배고파지기 시작하는데 휴게소가 왜 이렇게 머냐고 그랬더니, 아빠가 그러면 지금 바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보라고 말했다.


중간중간 내비게이션에 자꾸만 늘어나는 시간을 보면서, 괜히 초조해지고 있던 와중이었다. 아빠는 바로 다음에 보이는 나가는 곳을 따라 나가, 거기서 식당을 찾아 밥을 먹고 주변구경도 하면서 양양을 가라고 했다. 그러게. 누구랑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 길을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늘 계획에서 벗어나는 시간들이 아깝다고만 생각했다.


여행은 목적지에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 목적지를 가는 과정 중에 있는 모든 경험들이 곧 여행이라며, 고속도로를 나가서 구경을 해보라고 했다. 아빠가 어렸을 때는 네비가 없어서 어디든 지도를 보고 직접 가보면서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네비가 있으니 밖으로 나가더라도 다시 네비가 말해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가보라고 했다.


언제나 남들보다 빠르게 가야 한다며 애쓰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그때마다 나에게 그곳에서 나오라고 했던 사람은 아빠였다. 맞아, 아빠는 항상 아들들에게 청개구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공부하는 아들들에게 놀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었고, 돈을 열심히 벌어보겠다는 나의 결심에는 늘 시큰둥한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보고 지나가야 할 것들이 많다고 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곳은 춘천이었다. 춘천에 늘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었는데, 혹시나 해서 지도를 켜봤더니 10분 거리에 있었다. 아빠가 말한 대로 정처 없이 떠돌 수 있는 용기까지는 없었지만, 그의 제안과 나의 마음이 어느 정도 합의한 도전이었달까.


우리의 삶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 내 앞에 가는 차보다 뒤처지고 싶지 않아 속도를 내고 추월하기도 한다. 고속도로만 달리다 보니 그곳을 잠시 빠져나와도 된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살아가는 듯하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내게 빠져나오라고 했던 아빠의 말은, 내게 천천히 가면서 주변을 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빠져나온 길에서 만난 눈 덮인 논과 밭, 차 한 대 없는 도로, 그러다가 나타난 카페가 반가웠다. 그곳이 목적지가 아니면 어떤가. 길에서 만난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충만했다. 한참을 머문 뒤, 저녁이 돼서야 양양에 도착했다. 언젠가 내가 목적을 잃고 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마다, 지금 당장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보라는 아빠의 말을 기억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면 핑계가 필요했을 수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