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티봉 잡서 Jul 15. 2023

다 늙어서 간 대학원

과연 돈 값을 할 것인가?

올해 2월에 카이스트 대학원을 졸업했다.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예전에 한 선배가 가방끈을 늘이려면 빨리 늘이라 그랬는데. 그래야 길게 써먹는다고. 그 선배의 말대로라면 난 몇 년 써먹지도 못할 듯하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학비의 반을 지원해 준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결국은 졸업도 전에 퇴사하면서 내돈내산으로 학비를 다 내게 되었다. (졸업 후 2년을 채우지 못하면 비율에 따라 지원받은 학비를 뱉어내야 했다. ㅜㅜ)


졸업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링크드인과 리멤버에서 학력 세탁하기. 여담인데 전 직장에 나보다 먼저 입사했던 내 대학교 선배는 내가 입사하자마자 나를 은밀한 곳으로 불러서는 자신은 명문대 MBA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대학교 어디 나왔는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여하튼 학부를 명문대를 나오지 못한 나로서는 지금이라도 좋은 대학원을 나오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는 바이다.

보통은 석사를 하고 나서 그걸 레버리지 삼아 더 좋은 곳으로 취직을 하고자 진학을 하는 것인데 나의 경우 학기 중에, 그것도 지인 추천으로 이직을 하였다 보니 대학원의 혜택을 보았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앞으로 링크드인이나 리멤버에서 서치펌이 연락을 해오면 학벌도 보셨냐고 물어봐야 쓰겠다.


대외 타이틀 다음으로 대학원 진학 시 중요 시 여기는 것이 인맥. 고위 간부나 임원들이 흔히 가는 Executive MBA를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라성 같은 대기업의 사장님 같은 분들은 아니 계셨고, 내 위로 형님 세분 제외하고 50명 이상의 원우들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물론 나이 어린 친구들 중에도 스타트업 대표 같은 멋진 타이틀을 지닌 친구들이 있긴 하였으나 흔히 말하는 인맥이란 나를 끌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다들 너무 어린 축에 속했다. 내 입장에서 "좋은" 인맥이 아니라는 것이지 이런 세속적인 부분만 떼어 놓고 보면 정말 좋고 훌륭한 친구들이긴 하다.  


다음으로는 배움의 측면. 학과 교수님들 중엔 30년 넘게 가르쳐 오신 교수님도 계셨고 얼마 전에 엑시트 하고 교수가 된 80년대 후반생 어린 교수님도 계셨는데 다들 너무너무 훌륭하시긴 하나 뭐랄까 조금 일관된 면이 없달까 아무튼 교수님들마다 스타일이 너무 다른 측면도 있었고 중복된 부분도 있다 보니 커리큘럼이 꽉 짜여져 있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연로하신 교수님들은 30년 전 자료를 아직도 사용하시는 경우도 있었고 근래의 트렌드를 쫓아가시기 바쁘다는 느낌이 들었고 반면에 어린 교수님들은 트렌디하긴 하나 학문의 깊이가 얕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요즘 대학원 과정의 특징 상 단순한 지식 습득보다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이 더 많은데 특히 팀 프로젝트의 경우 같은 팀 원우들의 다양한 성격과 특징(?)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았지만 어린 친구들에게서는 열정과 속도를, 나이 많은 분들에게는 노련미와 한끗을 배울 수 있어서 큰 자산으로 남게 된 것 같다. 결론적으로 교수님께 배우는 것보다 동기들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았달까. 

이제는 대학교에서 배운 걸로 평생 써먹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길어졌다. 한 오십쯤 되어서 석사를 달았으니 육십쯤에는 박사를 해야 하나? 박사를 하면 얼마나 써먹을 수 있을까나? 아니지, 아니지. 효용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평생 배움의 자세로 살아가야지. 성장하는 삶은 배움을 반드시 수반해야 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국정과제가 '미성년 임신방지'인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