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 연 May 18. 2023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공부

'최재천의 공부'를 읽고


“살면서 마트에서 물건 값 계산만 잘 하면 되지 국영수 점수가 무슨 소용이야?”

학창시절 지필평가를 앞두고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다보면 이런 원성이 종종 터져 나왔다. 시험기간이면 누군가의 입에서는 꼭 나오던 말이었지만 밑줄 쫙 별표 땡땡 노트의 글자를 하나라도 더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했던 우리에게 그런 의문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들 이미 어른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던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공부는 남 주는 것 아니라며 살면서 어딘가에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식의 얼버무림이 가장 흔했고, 몇몇 양심적인 어른들은 사실 그들도 잘 모르겠노라며 그래도 공부는 때가 있고 학생인 이상 공부는 해야 하니 힘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는 정도였다. 우리는 답 없는 의문 같은 것은 서둘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그저 공부한 노트를 꾸역꾸역 외웠어야 했다. 도대체 이 공부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라는 것인지를 알고 있는 친구는 최소한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2020년 <최재천의 아마존>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게 된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교수님의 영상과 강연을 찾아보며 나는 어느새 교수님의 팬이 되었다. 제목만 봐서는 정은커녕 호기심조차 일지 않을 것 같은 「최재천의 공부(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는 나또한 교수님의 저서가 아니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듣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공부라니. 우리나라에서 ‘공부’란 그런 단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완독 후 주변에 책을 추천할 때에도 이 책의 주 내용이 공부얘기라고 하면 대부분 반응이 시들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랬듯 일단 책장을 펼쳐 몇 장 읽어나가게 되면 교수님의 시원한 사이다를 한잔 쭉 들이키고는 다음챕터, 그 다음챕터를 서둘러 넘겨보게 될 것이다.                         



… 다만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의 교육부가 고질적으로 엉켜 있는 우리 사회의 교육 문제들을 풀어내기는커녕 점점 더 얽히고설키게 만드는 주범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습니다. 어느덧 교육부는 고르디우스의 매듭 한가운데 묶여 있어 스스로 풀어내기 어려워 보입니다. 어쩌면 이제는 얽힐 대로 얽힌 매듭을 단번에 베어버릴 알렉산드로스의 칼이 필요해 보입니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만들어진다고는 하는데 교육부 혹은 정치권력의 영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 … (본문 7p 중)


…“사회의 고통은 과목별로 오지 않는데 아직도 교실에서는 20세기 방식으로 과목별로 가르친다. 그 점이 오늘날 복합적으로 융합하는 산업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기 힘들게 한다.”라고 하셨어요. 생각해보니 시대에 발맞춰가지 못하는 교과목식 분류가 교실뿐 아니라 우리의 통치프레임에도 깊게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 남의 발을 밟으면 안 된다는 사고가 확고했어요. 일을 회피하는 만능 변명으로 통하죠. 환경부에 가서 이렇게 하자고 하면 산업통상자원부가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못해요. (본문 37p 중)




교육받는 자가 아닌 교육하는 자가 우위에 서서 교과목별 교육을 지속하는 모습을 들어 비판하는 교수님의 견해는 책 후반으로 갈수록 신랄해진다. 대상자의 역량향상이 아닌 평가자의 편의를 위한 평가방식. 이로 인해 심해지는 경쟁주의와 동반되는 도태·불완전에 대한 두려움은 궁극적 공부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역설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결코 명확한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계이기에 단순계적 발상으로 교육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따뜻하다. 앞서 설명한 세상이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하고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살아갈 수 있으며 향후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옳을 지를 이야기한다. 지나친 완벽주의가 아니라 엉성함과 실수를 끌어안는 것이 진짜 공부를 만들고, 떠밀려 하는 것이 아닌 느리더라도 집요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성장한다는 것. 지위가 올라갈수록 잘 들어야고립되지 않고 계속해서 배우며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서로에게 공간을 내어주고 존중하는 삶, 즉 궁극적으로는 연대와 공존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저마다의 삶 속에 저마다의 공부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알아가려는 노력이 축적될수록 이해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어요.”     

공부란 배우고 익히는 일이다.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알아가려는 노력은 결국 이해와 사랑을 불러온다는 교수님의 말씀은 내게 공부는 결국 삶이라는 말로 들렸다. 삶은 결국 세상을 만나고 알아가는 과정 아닌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공부는 더 이상 지겹고 고리타분하다는 오명을 써서는 곤란하다. 최재천 교수님과 함께 우리에게 공부는 꼭 필요하다고 맛있게 먹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 친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보태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헤아림과 관조를 위해서 필요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