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최근이었다. 우습지만 종교 금단현상을 경험했다. 갑자기 ccm이 듣고 싶어 지고 사실 6월 즈음엔 성스러운 종교의식이 하고 싶어 져 성공회 성당을 갔었다. 여종없 주제가 될만한 기독교의 여혐을 지적하는 에피소드들은 아니지만, 이 어이없는 경험들을 간단하게 기록해놓고자 브런치를 켰다.
일단 6월 달에 갔던 성공회 성당 예배는, 별로였다. 당연한 얘기다. 결국은 남성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나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다. 대중문화에 큰 관심이 없다. 그랬던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장르가 ccm이었다. 교회에선 "찬양"을 멜로디만 듣지 말고 그 안에 "메시지"를 묵상하라고 하지만 일단 노래가 좋아야 계속 듣게 되지 않겠는가.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만 좋아했던 노래가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아무튼 중요한 건 이 다음 이야기인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음악 어플에서 ccm 하나 들었다고 '내가 잠시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듣는 찬양 리스트'라는 것을 추천 목록에 띄웠다. (현대 빅브라더의 무서움..) 세뇌된 기독교인들은 이런 걸 보면 'zoo님이 방황하는 날 부르시는구나 엉엉 제삼다ㅠㅠ' 식의 흐름을 가진다. 하지만 난 탈종교 했으니까 화이팅! 썸네일을 터치했다. 덧글이 궁금했다. 노래는 나는 변하고 내 맘대로 살았지만 그분은그 자리에서 기다리시네 웅앵웅 하는 뻔한 가사였다. 덧글에 '성'적으로 타락한 나를 용서해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갑자기 팍식. 회개를 방패로 가해자임에도 뻔뻔스레 교회에 남아있는 가해남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들을 두둔해주는 교회 공동체도.
그리고 사실 이쯤에서 zoo님의 음성을 들었어야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그 타이밍에 딱, 음성이 들렸다면 할세는 눈물의 회개를 하며 다시금 여혐 종교의 늪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다행히도 이 글을 계속해서 쓰고 있다. 오히려 지금까지 주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내 정신승리였구나 라는 깨달음이 있었다. 신의 음성이란 무엇인가.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온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신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는 신도들이 많다.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으론, 내가 듣고 싶은 위로, 내가 듣고 싶은 궁극의 한 마디. 결국엔 내 마음의 소리였던 것인데 세뇌가 심해지다 보니 마음의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부끄럽게도 잠시 잠깐 금단현상이 나타났지만, 결국은 튕겨져 나왔다. 더 이상 한국 남성을 신뢰할 수 없고, 허상인 것에 목매달았던 것이 이질적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로 주님의 음성이나, 예비하신 뜻, 메시지 같은 말이 엄청난 허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다 이제 겨우 '그냥 할세'로 산지 1년이 되어 간다. 의미없이 뒤를 돌아봤지만,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답임을 알고 있다.
안녕하세요. 할세입니다.
드디어 브런치 구독자가 50명을 돌파했습니다. 와아악~! 글을 이렇게 더디게 올리고 있음에도 구독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영상 매체보단 글을 선호하는 저로서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좀 더 유머러스하게 그러면서도 가독성이 좋게 글을 쓰고 싶은데 부족한 글솜씨라 어떻게 느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글을 쓰다 보면 분노가 차서 쓰고 지우고 쓰고 다듬고,, 후후.,,
그럼에도 여종없은 계속 되야겠습니다. 몇 달 전에 제 글을 보고 이제 교회를 가지 않는다고 말해주신 분을 만났었습니다. 누군가의 탈종교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쓴 글이, 정말 계기가 됐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타켓층이 사실 좁은 글이죠. 그래도 그 소수를 위해서 아직도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여종없을 계속 써 내려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깨작깨작 손대고 있는 개그처럼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