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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Dec 02. 2020

어제쯤 슬기로워질까요, 우리의 부부생활

부부생활에도 교과서가 있다면

이 글에서 말하는 부부관계란 부부의 성생활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부부라는 개체의 심오한 역학적 관계. 우리는 1년 차 병아리 부부다. 알다가도 모를 지극히 주관적인 부부관계를 조명해 본다.



부부관계는 식빵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아내는 촉촉한 속을, 남편은 바삭한 껍질을 좋아한다. 각자가 좋아하는 부분을 상대에게 양보하지만 계기가 어떻건 결과적으론 불만만 쌓인다.

‘하, 난 속이 좋다고. 혼자 사 먹든지 해야지.’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닌가? 겉을 다 먹어버리면 나는 뭘 먹으라고!’ 마음속 무언의 아우성들이 고구마 백만 개를 삼킨 듯 쌓이지만 오해가 풀릴 기회는 없고 미움만 쌓인다. 어쩌면 운이 좋아 그 기회가 마련된다 치자. 이미 쌓인 미움은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부부관계에는 ‘소통’이 중요하다. 말로 하지 않으면 다 알 수가 없다. 마치 회사에서 좋게 말하면 ‘정보공유’, 안 좋게 말하면 ‘쇼잉(showing)’이라고 하는 것처럼. 부부관계는 때로는 정보공유 차원을 넘어 과도한 쇼잉이 필요할 때가 많다.



부부관계에는 종종 공공의 적이 등장해 주셔야 한다. 상대가 절대 깨지지 않는 돌멩이인 양 여기며 망치로 두드리다가도 다른 돌멩이가 두두 등장! 하는 동시에 망치는 새로운 돌멩이를 향한다. 서로를 향하던 망치 하나씩 합쳐 총 두 개가 외부를 향하니 두 배 이상의 시너지다. 그 와중 함께 땀도 흘리고 고생도 할 터. 동료애가 싹튼다. 이를테면 눈엣 가시 같은 회사 동료라든지, 얄미운 친척이라든지. 껄끄러운 이웃이라든지, 공공의 적은 많다.

그러나 적의 존재만으로 부부관계가 끈끈해지는 건 위험하다. 부부관계의 유대감이 늘 부정적 근원에서 오는 꼴. 평생 부정적 존재를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유대감을 쌓아줄 긍정적 이벤트를 주기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부부관계의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하지만 돈, 육아 등 현실적인 문제가 판치는 부부생활에서 순도 100% 무지갯빛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게 쉽지만은 않으니 슬기로운 부부생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ps. 요즘 우리 부부는 맥주와 함께 쇼미더머니를 시청하며 ‘술’기로운 부부생활 중이다.)



부부관계는 역설적이다. 혼자 있고 싶은데 같이 있고 싶다. 잘 지내고 싶은데 어쩔 땐 잘해주기가 싫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다른 출연자에게 ‘넌 보이면 짜증 나는데 안 보이면 불안하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비슷한 맥락이다. 천사와 악마가 어깨동무하고 난리 브루스를 춘다. 악마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부부관계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악마가 난리 브루스의 리더가 되기 전에 천사가 리드하도록 마인드 세팅하는 것이 관건. 예를 들어 남편이 얄미워 보여서 잘해주기 싫을 때, 반대로 남편에게 힘이 돼주고 싶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는 거다. 최근엔 회사 일이 힘들어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남편이 걸핏하면 틱틱대는 탓에 꿀밤을 쥐어박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충을 토로하던 남편의 어깨를 두드리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남편이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이해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떤 때는 크게 싸워 밥도 같이 안 먹는다. 나는 알아서 잘 챙겨 먹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그냥 굶는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남편의 영양제를 챙긴다. 대충 그런 식이다.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모르는 걸까. 부부관계에 대한 질문은 끝이 없다. 요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는 [슬기로운 생활], [바른생활]과 같은 이름의 교과서들이 있었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 샴푸는 환경을 해치니 조금씩 써야 한다, 물은 아껴 쓴다 등등 올바른 생활의 지침들이 담겨있었다. ‘슬기로운 00 생활’ 드라마 시리즈도 어쩌면 여기서 비롯되었으려나.

슬기로운 생활



부부관계와 관련된 책을 적어도 열 권 가까이 내 돈 내산 했다. [슬기로운 생활_부부편] 딱 한 권으로 정리되면 얼마나 깔끔한가.



우리 부부 언제쯤 슬기로워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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