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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명 Dec 03. 2024

치매의 시작

치매 초기에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이게 그때의 우리 가족만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엄마가 같은 말을 반복해서 물어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자꾸 길어지는 엄마와의 전화통화가 귀찮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가 기회였는데 말이다. 아직 엄마의 인지가 남아있을 때, 여행을 좋아하고 딸의 결혼을 그토록 기다렸던 아이들을 특별히 사랑했던 엄마의 모습이 있을 때 더욱 함께 했어야 했던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그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며 서로에게 많은 것들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가. 그런데 엄마의 병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이 남은지 몰랐다. 그리고 엄마의 변화에 버텨내며 그때그때 대처하기에 급급했다.


첫 손녀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그렇게 예뻐하셨다. 아이가 우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계실 정도였다. 이전에도 옆집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을 좋아하며 아이에 대해 특심한 마음을 가졌던 엄마는 2년 후에 둘째 손녀가 태어났을 때는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잠깐 볼일이 있던 내가 익숙한 카페에서 엄마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다녀왔을 때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아이를 다른 분이 안고 계셨다. 그때 엄마는 잘 모르는 아이라며 자신의 손녀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가셨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챙길 여유도 없이 그분께 잠시만 부탁드리고 급하게 카페를 나온 나는 엄마를 찾아다녔다. 엄마는 홀로 카페를 나가 골목마다 헤매고 다니시고 계셨다. 그래도 골목마다 다니시느라 멀리 가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치매는 엄마가 즐거워하던 모든 것들도 가져가버렸다. 짧은 여행을 그토록 좋아했던 엄마는 치매가 심해질수록 그 어디도 즐기지 못하셨다. 새로운 곳에서는 자신의 집이 아니라며 불안해하셨다. 어느 때인가 아이들과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 밤 엄마는 자고 있던 내 옆을 떠나 집을 나가셨다. 그때는 그 지역 경찰까지 동원해서 엄마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치매는 엄마를 괴로움과 슬픔으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었다. 평생 참고만 살았던 엄마. 괴롭고 힘들어도 누구 하나 의지할 곳이 없었던 엄마는 그렇게 치매로 도망을 친 것 같았다.

가족들은 엄마를 보며 슬프고 힘들어했지만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셨다.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치매에 걸리고서야 마음껏 하고 계신 듯했다.


가장 큰 변화는 감정 표현이 직설적이며 급작스러워졌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던 엄마가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느낀 면이기도 하다.

평생 욕이라고는 모르고 산 듯 순했던 엄마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부터 했다. 그건 사위나 손녀를 가리지 않았다. 식당에서 누군가가 엄마에게 호의를 베풀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무시한다 여기고 화를 내셨다.


잘 보살펴 드리면 같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와장창 깨져버리는 평화는 엄마의 화로부터 시작했다. 인지가 없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냥 화가 나면 설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잠잠해 질대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은 이를 닦다가 화가 나셨는데 그대로 칫솔을 집어던지고 나가버리셨다.

남편과 아이들이 따라나가서 어디로 가시는지 한참을 쫓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나도 같이 화가 나기도 했다. 아무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같이 화를 냈다. 욕하지 마시라고.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마시라고... 그러면 엄마는 더 불같이 화를 내었다. 몇 번 그렇게 하다가는 더 이상 같이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슬프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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