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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Jun 28. 2023

다시 돌아온, 예쁜 나이 스물다섯 살

'25살로 살기' 1주일 무료 체험에 당첨되셨습니다!

 

 6월 28일인 오늘부터 ‘만 나이 통일법’이 시작됐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부터 딱 7일 동안 25살을 누릴 수 있다. 하필 다음 주 수요일이 생일이라 일주일밖에 누리지 못하는 예쁜 나이, 예쁜 나의 스물다섯 살.     


 한국 나이로 25살이었던 때, 그러니까 2021년에 나는 인생에서 가장 처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해 2월에 치러졌던 대학교 졸업식에도 가지 않고 종일 방에 틀어박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하루에 10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있는 일은 그야말로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었다. 나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공부에 몰두했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하필 공무원 시험 1차 합격자 발표일이 나의 생일이었다. 더불어 너무나 전형적이게도, 그날은 폭우까지 쏟아졌다.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무서워서 채점을 하지 않고 있었다) 떨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대로 집에 있으면 비가 아니라 우울에 잠식할 것 같아서 큰 우산을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에게 연락할 기분도 아니었고, 내가 가장 의지하는 나의 친동생은 군대에 가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어서 무작정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곧이어 군산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경암동 철길마을로 향하는 버스가 내 앞에 섰다. 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듯 버스에 올라탔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서 겨우 철길마을에 도착했다. 어깨와 등, 바지가 비에 젖어 들어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기찻길을 걸어 다녔다. 비에 나의 우울이 씻기길 간절히 빌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 있다가 거지꼴로 집에 돌아왔다. 그날 분명 엄마가 저녁 식사를 걸게 차려주셨을 텐데, 뭘 먹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빗속에서 홀로 생일을 맞은 후, 나는 공무원 시험을 다시 준비하는 대신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뜻은 없었고, 다만 1년 동안 다시 공부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국민취업제도의 도움을 받아서 이력서를 넣고, 전국 곳곳으로 면접을 보러 다니며 낙담과 낙관을 번갈아 손에 쥐었다.     


 2021년의 12월은 일주일에 여러 번 면접이 잡혀 있어서 워낙 바빴던 기억밖에 없다. 수많은 탈락 끝에, 결국 크리스마스 다음 날 처음으로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다. 1지망 회사는 아니었지만, 나는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어디든 들어가서 나의 쓸모를 스스로에게 증명해야 했다.     


 이렇게 간단히 회고했을 뿐인데도 25살 때 감각했던 모든 통증이 되새겨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지금, 내게 다시 주어진 25살이 선물 같다. ‘25살로 살기 1주일 무료 체험 버전’ 같달까.     


 25살이 된 오늘은 피부과에 갔고, 따릉이를 탔고, 책을 읽었고, 저녁에 있을 에세이 수업을 준비하며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또,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영 강습도 등록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지만, 일상의 빛깔이 미세하게 달라진 듯한 느낌. 일주일 동안 나 스스로에게 근사한 25살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런 기분으로 평생을 살면,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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