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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Dec 13. 2023

에세이 읽는 마음

에세이는 ‘가벼운 글’이라는 오해에 대한 작은 해명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에세이’라는 단어를 보면 다들 무슨 생각을 할까. 가벼운 글? 쉬운 글? 아무나 쓰는 글? 에세이가 무슨 문학이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더러는 잡문, 그러니까 ‘잡스러운 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에세이가 들으면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굴욕적인 별명이다. 아주 예전엔 “이런 건 책으로 내지 말고 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적어서 포도알이나 받아라”라는 평이 보이기도 했다.


 일 년에 책을 백 권 정도 읽는데, 에세이가 그중 절반을 차지한다. 나에겐 소중한 에세이 작가들이 많이 있고, 좋아하는 작가들이 낸 소중한 에세이도 많기 때문이다. 이슬아, 정혜윤, 김하나, 황선우, 김혼비, 정선아, 장일호, 김신회… 정말이지 다 헤아릴 수도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에세이는 흔히 ‘가벼운 글’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서점 가판대에서 ’마음에도 엉덩이가 필요해‘ 같은 에세이 제목을 흘깃 보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마음에 엉덩이가 필요하다는 건 무척 시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20분 정도 훑어보면 내용을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읽기 쉬운 에세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세이라는 장르 전체에 편견을 갖고 매도하는 건 옳지 않다. 나는 정혜윤을 읽으며 울고, 김혼비를 읽으며 웃는다. 타인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글을 쓰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전업 에세이스트의 글도 훌륭하지만 다양한 직업인들의 에세이 중에서도 아름다운 책들이 많다. 황석희 번역가의 ‘번역: 황석희’라든지, 황예지 사진가의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이나 정혜윤 PD의 ‘삶의 발명’, 장일호 기자의 ‘슬픔의 방문’ 같은 소중한 작품들. 신형철 문학 평론가나 이동진 평론가의 에세이도 말할 것 없이 좋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평소에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 일부분을 정제된 글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 눈치를 많이 보고,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은 어떨지 계속 유추해 보는 피곤한 성격이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늘 궁금했다.  그렇다고 딱히 물어볼 수는 없으니 혼자 조용히 궁금해했는데 에세이를 읽으면 궁금증이 조금씩 해소가 됐다. 사람들은 이럴 때 이런 걸 느끼는구나, 하고. 에세이는 나의 사유를 일깨워 주는 훌륭한 선생님이자, 작가들의 은밀한 속마음(중 아주 조금)을 엿볼 수 있는 통로다.


 에세이가 아니었다면 법학과를 전공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한 뒤 프랑스 요리 학교로 유학을 다녀온 푸드 에디터(정연주 작가)의 이야기나, 우리나라 최초 강력계 여자 형사(박미옥 작가)의 일대기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또 정세랑이나 황정은, 백수린 등 사랑해 마지않는 국내 현대 문학 작가들이 산책은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작품을 쓸 때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 일상을 살아갈 때 어떤 화두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어찌 알겠나.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받고, 공감을 얻는다. “세상엔 이렇게나 멋진 사람들이 있어!”, “엄청 유명한 작가도 나랑 똑같은 고민을 한다!”


 에세이를 계속 읽기만 하다가 작년부터는 조금씩 써오고 있다. 써놓은 글을 몇 주, 혹은 몇 달 뒤에 보면 ‘이걸 내가 썼다고?’하는 생각이 든다. 놀랄 정도로 글을 잘 써서 그런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예전에 썼던 기사를 어쩌다 우연히 발견했을 때도 그렇다. 단순히 기억력이 안 좋은 것일지도. 그래도 이 글은 안 까먹을 것 같다. 에세이에 대한 사랑을 최초로 고백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썼으면 이제 온라인 서점으로 들어가 에세이 신간 목록을 쭉 살피고, 장바구니를 비울 시간이다. 어떤 작가의 어떤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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