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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Jan 19. 2021

<잔소리>

사는 게 열등하냐고, 삶이.내게 물었다.

<잔소리>

나는 수학선생님이다. 아이들이 수학문제를 잘 풀도록 만드는 게 내 일이고, 그들의 성적으로 나의 능력을 평가받는다. 수학선생님은 생계형 직업이다. 밥벌이란 말이다. 밥벌이는 무조건 잘하고 봐야 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이들한테 ‘공부좀 해라’ 이런 뻔한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뻔한 잔소리는 결말도 뻔하다. 듣지 않는다. 너희 나 엿먹일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물으면 벌써부터 사람 좋게 웃으면서 그건 절대 아니란다. 그냥 좀 더 놀고 싶을 뿐이란다.


 뭐 중학생 정도는 아직 괜찮다. 문제는 고등학생이다. 이것들은 공부하는 시늉 내기에 달인들이다. 한다고 하는데, 노트에 적힌 걸 보면 성의도 없고 진심도 없다. 가끔 욱해서 한마디 한다. ‘이거 내 성적 아니다 얘들아.’

 밥벌이라서 나는 열심히 해야 된다. 밥벌이가 아니라서 아이들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 이 간극이 빚어내는 섭섭함은 모두 나의 몫이다. 어렸을 적, 그렇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던 어른들의 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이 상처받는 거다.


 대체 얘들은 강의실에 왜 앉아 있는 걸까. 어차피 공부도 안 할 거면서. 그럴거면 나가서 친구들이랑 PC방이나 가던지.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비뚤어진 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얘들도 자기가 왜 여기와 앉아 있는지 모르는 거다. 얘들 때매 망쳐진 내 커리어도 피해자이지만, 얘들도 피해자다. 가끔 학원은 이렇게 총체적 난국이다. 이 꼴 안 보려고 내가 예전부터 수학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려고 했던 거다. 몇 번이나 그럴 뻔 했다. 밥벌이도 문제이거니와 내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떠난다면, 얘들은 또 숙제만 왕창 시키는 학원에 끌려가겠지, 그게 눈에 밟혀서 여태 여지껏, 한 교실 안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나누고 있는 거다.

‘너나 나나’

너나 나나 뭐가 다르겠냐. 너도 너를 잘 몰라서 여기 있고, 나도 아직 나를 잘 몰라서 여기 있는 것뿐인데. 너도 참 안 됐다. 그리고 나도 참 안 됐고. 공부 좀 하라는 잔소리의 마지막은 어김없이 푸념으로 끝이 난다. 철없는 아이들을 향해 시작한 쓴 소리가 결국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꽂히고서야 긴 잔소리는 끝이 난다.


 우린 생각보다 우리를 잘 모른다. 학생도 선생님도, 소년도 노인도 자기를 잘 모른다. 다들 잘 몰라서 많이 둘러가고, 조금 늦게 도착한다. 잔소리는 다른 말로 고백이다. 내가 나한테 해야 될 말을, 진실과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타인을 향해 뱉는 말이 잔소리다. 엄마들은 많이 불안했고, 젊은 시절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많을 뿐이었다. 그렇게 못 지킨 약속들을 우리한테 쏟아냈고, 나는 다음세대에 다시 쏟아내고 있다. 오늘 저녁엔 엄마가 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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