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품을 팔며 열심히 약국 자리를 찾아보다가 괜찮아 보이는 곳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 보기도 하는데요. 이것을 임장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부동산처럼 약국도 임장 경험이 중요한데요. 직접 매물을 보고 분석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좋은 자리를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이죠.
저도 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몇 번 임장을 가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임장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처음으로 임장을 갔던 곳은 제가 사는 도시에 나온 직거래 매물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사는 곳은 지방 소도시라서 매물 자체가 귀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직거래 매물인걸 확인하고 바로 약속을 잡아 방문했습니다. 임장을 가면 뭘 봐야 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가본 거죠.
다행히 매도 약사님이 좋은 분이라 제가 서툴러 보이니 직접 데이터를 보여주며 설명해주셨고, 묻지 않은 것도 이것저것 가르쳐주셨습니다. 규모도 크지 않고 많이 바쁘지도 않아서 혼자 운영하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공간 속에서 일하는 제 모습을 그리며 잠시 달콤한 상상을 해봤습니다. 아침에 약국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며 조제를 하는 모습을 말이죠.
그런데 잠시 후 조제실 안쪽을 둘러보는 순간 그 상상은 와장창 깨졌습니다. 마치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창고 공간과 언제 만들어진 건지 알 수도 없는 재래식 화장실을 봤거든요. 약국 건물 자체가 오래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앞쪽은 리모델링이 된 상태라 크게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안쪽은 리모델링을 안 한 것 같았습니다.
제가 헉, 하고 놀라니까 매도 약사님도 멋쩍게 웃으며 본인도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금방 적응되더라고 말씀하셨어요. 남자 약사님이라 크게 개의치 않으셨던 건지.. 저는 도저히 적응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었는데 말이죠.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에 왔지만, 도저히 그런 창고와 화장실을 사용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결국 그 약국은 포기했습니다. 다른 조건은 괜찮았는데 조금 아쉽기는 했어요.
얼마 후 새로운 약국자리를 또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인근 도시였는데, 엄밀히 말하면 조금 더 시골이었어요. 다행히 차로 가면 20분 정도의 거리라 그렇게 멀지는 않아서 한번 가보기로 했습니다.
고향에서 병원을 개원하고 싶어서 원장님이 새로 건물을 지으신 곳이었어요. 2층은 병원을 할 예정이고 1층에 약국 임대를 놓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건물주가 병원 원장님이었죠. 이런 경우 병원 이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은 장점이지만 대신 임대료가 조금 비싼 편입니다.
하지만 신규 병원일 경우 통상적으로 요구하는 지원금이나 인테리어 비용에 대한 말이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직접 건물을 보니 역시 새 건물이라 깔끔하고 좋더라고요. 앞서 낡은 건물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원장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예상치 못한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규라서 처음에는 건수가 좀 적을 수도 있지만 아마 차차 올라갈 거라는 말과 함께, 일정 건수 이상 처방전이 발행되면 바닥권리금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보증금의 세 배나 되는 큰 금액을 말씀하셨어요. 제가 조금 멈칫하자 웃으면서 한꺼번에 큰 금액을 주기 힘들면 매달 조금씩 나눠서 줘도 된다는 친절함(?)까지 베푸셨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큰 액수의 바닥권리금이라니요... 다른 업종이면 받지 않을 바닥권리금을, 약국이기 때문에 처방전이 일정 건수 이상 나오면 달라는 것은, 결국 후불로 지원금을 내라는 말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 건물에서 약국을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어요. 이런 신박한 방법의 지원금 요구라니... 원장님이 건물주인데 그렇게 지원금까지 지불하면 철저하게 갑을관계가 형성될 것 같은 미래가 그려졌습니다. 역시 건물주가 최고라는 생각과 함께, 여기는 하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지나가다 보니 그 자리에 약국 입점 예정이라고 붙어있더라고요. 누군가는, 그 자리에, 그 금액의 지원금을 약속하고 들어간 거겠죠. 휴....
연이은 좌절만 안겨준 임장 경험이라 조금 우울했지만, 둘 다 나와는 인연이 없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언젠가는 내 마음에 드는 약국 자리가 나올 거라고 믿으면서요.
브런치의 글쓰기 알람을 받고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과거형이고, 사실 얼마 전 약국 계약을 하고 9월 중 오픈을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그렇게 약국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계약을 하고 나니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서 힘드네요.. 하하...
아마 당분간은 오픈 준비로 계속 바빠서 글을 쓸 여유가 없을 것 같아요. 혹시 제가 한동안 글을 안 올리더라도 구독자 님들 어디 가지 마시고..ㅎㅎ
약국 오픈하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 개국 과정을 담은 글을 차근차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구독자 님들의 응원 덕분에 약국 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