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날개 Oct 05. 2020

[산티아고 순례길] 당신은 럭셔리 순례자입니까?

[5일]#1. 빰쁠로나 하루 더 묵기

한 번쯤 럭셔리를 누려라!


순례자는 무소유와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가진 게 많지 않아, 이 순례길을 택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최소 비용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이기에! 가졌어도 버리는 걸 배우는 길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 럭셔리를 꿈꿀 수 있다.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갖춰지고, 조금 더 맛난 것을 먹을 수 있는 정도! 순례길에서 먹고 자는 것을 아껴서 한 방에 럭셔리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 럭셔리라면 얼마나 럭셔리일까? 식사 한 끼 2만 원! 숙소 5만 원으로 럭셔리를 즐길 수 있을까?


건물 사이로 나무들과 벤치들이 이어져있다. 그래서인지 도시가 삭막하지 않다.


세미와 아침부터 바빴다. 하루를 온전히 잘 보낼 방법이 뭘까 고민했다. 일단 돌아다니면서 도시를 즐겨보기로 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나다니는 재미! 마치 순례자가 아닌 여행객이 된 듯하다. 순례자가 아닌 여행객이란? 여행자도 분명 현지 사람이 아니다. 다만 짧은 시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인데, 순례자들은 고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나그네 같다고나 할까? 물론 대부분 정해진 루트대로 가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라는 것! 거리와 방향과 목적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의 상태랄까.


순례길을 떠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호기심에, 심심해서 걷는 사람도 있으려나? 그러기에는 감내할 것들이 많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쉬운 방법들을 택하는 사람들조차,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중단하게 되는 길! 스스로 얼마나 질책하게 되는지! 지켜보는 사람들도 안타까워한다. 이 모든 과정이 순례자의 과정이다.


빰쁠로나 광장 주변, 순레자들은 이 길에서 원하는 것을 해결할 수 있다.


휴대폰 매장에 들렀다. 유심칩을 여유분을 대도시에서 사가는 게 나은가 싶어서였다. 세미가 대만에서 사 온 유심칩에 대해 문의를 했다. 나는 15유로에 데이터 전화가 되는 유심칩을 골랐다. 유럽은 물론 한국까지도 전화를 걸 수 있다고 했다. 사는 시점이 아닌, 뜯는 시점부터 유효기간이 생성된다고 했다. 한국에서 사 온 유심칩은 임시로 쓰려고 제일 싼 걸 준비했다. 빰쁠로나에 오는 동안 데이터가 끝날 것 같아서 필요할 때만 켰다. 아직 데이터는 남아있었지만 일단 두 개를 샀다. 당장은 한국에서 사 온 데이터가 떨어지면 바꿀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한 달 정도 쓰면 데이터가 끝날 때 써야지! 사용 가능 국가에 KOREA가 안보였다. K 쪽을 훑어보고, 사우쓰 코리아인가 싶어서, S 쪽도 봤지만 없었다.


매장 직원이 한국에 전화를 걸 수 있는지 자기가 확인해주겠다며 유심칩을 뜯었다. 왜 뜯지? 뜯으면 지금부터 ‘시작’ 아니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그리고 내 휴대폰에 꽂아서 뭘 보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아직 개봉 안 된 거라며 염려 말라고 했다. 두 개 다 그런 식으로 확인해준 것이다. 똑같은 제품이다. 하나가 되면 나머지 하나도 되는 거 아닌가? 그녀의 말은 이랬다.

"인식하기 쉽게 해 준 거야. 어쨌든 한국으로 전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확인했잖아!"


스페인에서 한국은 KOREA가 아니다. COREA다. 겉에 KOREA가 없어서 내가 당황해서 못 찾은 거였다. 그녀도 몰랐는지, 왜 굳이 뜯어서 휴대폰에 넣고 확인했을까? 몇 번 다시 물어도, 지금 개봉한 게 아니라고만 했다. 음, 그런데 이거 뭐지? 이 개운하지 않은 기분? 세미도 덩달아 내 유심칩에 대해 재차 확인해서 물었다. 현란한 세미의 영어 발음으로 정확하게 한 번 더 확인했지만 역시 대답은 같았다. 세미도 이 제품을 하나 살까 하다가 중간에 대도시에 들러서 사겠다고 했다. 나도 그랬어야 했다.


한 달 정도 지나서 나는 길바닥에서 욕을 했다. 이 전문적이지 않은 매장 직원으로 인해 나는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이때부터 유효기간이 카운팅 되고 있었던 것! 하나를 쓰고 나머지 하나를 또 쓰려고 할 때 이것 역시 유효기간이 똑같이 카운팅 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효기간이 거의 끝날 때 알게 되었으니!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오픈해서 휴대폰에 꽂는데, 아무 영향이 없다니? 천연덕스런 직원의 미소와 걱정 말라는 말! 내게 사기를 친 게 아니라, 모르고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 거였다. 친절은 고마우나 내게 피해를 준 것이다.


나는 일단 자책했다. 왜 물어봤을까? 왜 한국도 정말 되는 거죠?라고 물어봤지? 결국 나를 탓하면서 곁들여 그 직원을 욕하며 걸었다. 다행히 혼자였다. 길 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 와중에 길은 왜 그리 멋진지! 왜 그토록 날은 좋은지! 그래서 더  열 받아서 눈물이 핑 돌았다. 뭐든 쉽게 가는 게 없다. 뭐 이리 인생에서 안 겪어도 될 일을 다 겪고 사는지 모르겠다. 남들 평범하게 사는 인생, 왜 이리 유난스러울까?


그저 '이거 하나만' 쥐려 해도
모든 게 스치는 바람 같았다.


오래전 누군가 내게 말했다.
"좋은 글 쓰시려고, 그런 걸 거예요."  
또 누군가는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면서 나를 위해 소원을 빌었다.
"이분, 좋은 글 쓰게 해 주세요."

인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떠올랐다. 인생의 힘든 터널을 지날 때, 내 30대 때 만난 20대 친구들! 우정이라는 게 어떤 형태로든 머물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산과 바람이 친구가 되고 하늘과 별이 연인이 되어 주던 때! 그때도 자연은 그대로인데, 나만 늙었나 싶었다. 30대라고 해도 인생 처절의 끝판왕처럼 배낭을 짊어지고 걸었다. 그런 영혼을 위로해주던 깊은 영혼들이 20대였다. 여행하는 자들은 이미 붓다의 경지에 선 자들인지 모른다. 나는 그 길에서 이미 치유를 경험했기에!


인생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깊이에서 얻어진다.  


20대 친구들과 라떼 얘기를 할 것도 없고, 당나라 군대 얘기를 할 것도 없다. 그저 유쾌하고 속 깊은 청춘들의 대화에 슬쩍 끼어서 고개를 끄덕이면 된다. 예전 배낭 여행자들은 모두가 친구였다. 아, 이것 역시 라떼 발언이겠다. 사실 만나서 좋을 것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럼에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쉽게 마음을 나눴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선입견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 격을 어찌할까. 내가 나이를 먹어서 달라진 시선도 인정해야겠다. 그저 조용히 내 지난날의 젊음을 보듯 그들의 시간도 지켜보면 되려나?


인생에서 떠돈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없고, 정착한다고 만족스러운 삶도 없다. 그저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의 영혼은 그렇게 부유하다 떠나는 게 아닐까 싶다.


삶에서 겪는 시행착오는 실패가 아닐 것이다. 그저 경험하며 다음에 참고하고, 조언을 구하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 하지만 가끔 멍청이가 된 순간을 떠올리면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알바타 살바타 도인처럼 마음을 들여다본다 해도 쉽게 떨쳐 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게 함정!


빰쁠로나는 하늘과 광장과 건물이  잘 어우러진 예쁜 도시다.


빰쁠로나 데카트론으로 가려고 했더니, 3킬로를 생으로 걸어야 했다. 재미있는 건 하루 20킬로 넘게 걸어도 1킬로 오버하는 건 꺼려진다. 마치 돈 받고 20킬로 걷고, 그 이상은 공짜로 걷는 기분이랄까? 순례길 외 걸음은 더해지지 않으니 말이다.


세미와는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황소상 앞에서 사진 찍고, 시청 앞에서 사진 찍고, 광장 여기저기, 헤밍웨이 카페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세미는 포토존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어, 이 황소상 앞에서 찍으면 돼! 거기 서봐!”

“가만, 여기 어디에 헤밍웨이 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 볼까?”

나는 정말 아무 정보 없이 부유 중일뿐! 애써 정보를 찾아보지 않은 면도 있었다. 선입견 없이 그저 마주하고 싶은 마음? 이라기보다, 시간이 없었다. 한 달 남은 시간 비행기표부터 기차표, 배낭과 등산화는 물론 이것저것 사네 마네, 가서 보네 아니네, 정말 영혼을 태우는 과정이었다. 그 사이 책을 읽을 틈도 없었고, 오로지 영향력 있는 카페를 드나들며 실시간 정보를 얻는데 주력했다. 생전 처음 가는 유럽 여행을 이렇게 준비 없이 가도 되나 싶었지만, 별 탈 없이 파리 도킹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내게는 도킹이었다. 물론 그렇게도 가능하긴 했지만, 이왕이면 미리 대한민국 순례자를 위한 협회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정보를 얻었다면 좋았을 성싶었다.


길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걸었더라면 최소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았을 텐데! 가끔 걸으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저 순례자 사무실에서 준 일정표대로 갈 뿐이다. 작은 마을 단위 지명은 외울 엄두도 못 냈다. 내가 출발한 곳과 도착할 곳만 충실히 외워도 훌륭하다. 어디에서 들어본 지명인데? 내가 거쳐왔다고? 이런 의구심이 드는 매치가 안 되는 곳도 많았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젊으나 나이 먹으나 같은 현상이다. 지명은 나중에 외워도 된다. 추억하듯 산티아고 사진을 보면서 내가 걸었던 길을 반추해도 된다. 순례길에서는 오로지, 그 순간, 걷는데 집중하며 걸으면 된다. 노란 화살표를 잘 따라가면서!  


우리에게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표지석! 노란 화살표와 조개 무늬가 우리의 나아갈 길을 알려준다.


<산 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ín) 중 백미로 꼽히는 빰쁠로나 소몰이 행사, 엔시에로(Encierros)>

산 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ín)는 7월에 열린다. 이 축제의 백미로 꼽히는 빰쁠로나의 소몰이 전통 행사, 엔시에로(Encierros)는 산토 도밍고 언덕에서 시작된다. 성당의 종소리가 경주의 시작을 알리고, 아침 8시에 총성과 함께 시작된다. 우리 문이 열리면 소들이 거리로 내몰리며 질주를 벌인다. 그 긴장감과 흥분, 스릴 넘치는 행사는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그에 따른 위험도 크다. 사상자가 발생하니, 조심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홈페이지에 게재된 소몰이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한다. 또한 소들도 죽거나 다쳐서 동물협회에서 항의를 벌이는 행사이기도 하다.



길 한복판에 소몰이 행사 관련 동상이 세워져 있다.


드디어 배가 고팠다. 오늘, 이 시간을 위해 우린 아침부터 그렇게 훠이훠이 걸었나 보다. 어제 메디가 먹었던 그 레스토랑에서 순례자 메뉴를 시켜 먹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애매했다. 숙소로 돌아가서 쉬자고 했다. 그만큼 숙소를 좋아했다. 세미랑은 숙소 가는 동안 여기저기 사진 찍기 바빴다. 세미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나와 잘 맞았다.


숙소에 도착하자, 아일랜드 쥬벨이 오늘도 혼자 분주했다. 사진기를 큰 걸 들고 있는 걸로 봐서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넓고 아름다운 빰쁠리나를 예술 혼으로 찍는구나 싶었다. 어제 세탁 이후 늦게 들어온 그녀와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그저 벙커에 누워서 장난스러운 포즈로 나와 사진을 찍은 게 다였다. 이것도 웃긴 게 침대가 모두 조용한 탓에 가만히 사진 찍는 포즈로 서로 얼굴만 들이대고 사진 찍고 키키 웃고 말았던 것!

식당 쪽으로 나와야 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어제 봐 둔 순례자 코스 식당을 말할까 하다가 말았다. 그녀 나름대로 스케줄이 있는 듯한데, 괜히 헷갈리게 하지 말자 싶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빰쁠로나에서 이틀 머물기로 했단다. 다리가 아파서, 힘들어서가 아닌 원래 계획을 가진 것! 그야말로 '계획이 다 있는' 친구였다.


알베르게 침대에서 잠시 기절하듯 쉬었다. 결국, 그 시간이 왔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야 할 시간! 성수기 때는 선착순이라고 했던가? 비수기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했다. 일찍 가야지! 세미는 내 맞은편 2층 침대에 있었다. 마치 일행으로 침대를 잡은 듯하지만, 우린 여기에서 우연히 만난 사이이다.


숙소 문을 열고 나섰다. 거리에는 순례자들이 넘쳐났다. 구석진 성문 쪽, 우리 숙소 앞으로 이렇게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순례자들이 많이 오갈 줄이야. 성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매일 이 시간에 도착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런데 성문으로 들어오는 순례자들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앗! 미국 여인 잉카였다.

“잉카!”

나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잉카도 힘들어서 언덕을 헉헉 올라왔지만, 나를 보더니 번쩍 손을 들었다. 우린 괜히 히죽거리며 웃었다.

“오늘 드디어 빰쁠로나 입성했구나. 숙소는?”

“지금부터 찾아봐야지. 호텔로 했어!”

“호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역시 럭셔리 여인이야!”

세미와도 인사를 짧게 나눴다. 잉카는 이제 막 도착했기에 숙소를 가야만 했다.

“잉카! 나는 점심 먹으러 간다. 기회 되면 또 보자!”

“알았어. 맛있게 먹어.”

그녀가 빰쁠로나에 도착하면 호텔에 묵을 거라는 걸 알았다. 일찍이 내게 흘렸던 말이었다. 내가 그때도 건성으로 ‘럭셔리 순례자’라고 했더니 그녀가 웃었다.

“그러게! 나 까미노에서 완전 럭셔리됐어!”


호텔 하나 예약한 걸 두고, 럭셔리라고 말할 건 없다. 나름이겠지만, 이곳 순례길 호텔 값은 우리나라 호텔처럼 소름 끼치게 비싼 것도 아니었다. 공립 알베르게 보다 조금 비싼 사설 알베르게에 가는 것도 사치네 뭐네 죄책감이 드는데 호텔이 웬 말이냐! 는 거였다. 여기 순례자들 기준으로 호텔은 럭셔리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나중에 내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묵은 숙소는 괜찮냐, 얼마냐, 등을 물었다. 답해줬더니 그냥 귀찮다며 하루 더 그 호텔에서 묵겠단다. 그러면서 답문자를 이렇게 보냈다.

[나 럭셔리 여행 중이야. 그렇지?]

내가 농담으로 답을 [즐기시게!]라고 쓰다가 뭐 때문에 잊어버리고, 한밤 중에야 알았다. 답을 안 보낸 것이다. 아마도 휴게실 식당에서 먹는 얘기 중이었을 것이다. 먹고사는 얘긴 중요하니까! 중간에 그녀가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냈다. 홀로 얼마간 길을 걸었다며 뿌듯해하던 그녀에게 그때도 길게 답을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내가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던  '이루나 카페'이다. 어쩐지  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내부는 생각보다 어두웠다. 적당한 어둠이 주는 몰입감과 높은 천장에서 전해지는 예술미가 영감을 불러일으키은 듯하다. 창가 쪽은 이보다 환하다.


<당신은 럭셔리 순례자입니까?>

사실 까미노 호텔은 싼 편이다. 주로 5만 원에서 7만 원 정도면 개인이 머물 수 있는 방을 잡는다. 눈치챘겠지만, 그냥 호스텔 수준이지만, 환경이 멋지다. 알다시피 호텔이 표방하는 게 바로 유럽식 아닌가? 이미 유럽식 건물에 갖춰진 것이니까, 그리 비쌀 필요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멋스러운 호텔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 몸 뉘이는데 몇 천 원이면 공립에서 지낼 수 있는데, 굳이 그 돈을 주고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날들이 축적되면 순례길 비용이 얼마나 커지겠는가. 공립이 치열한 것이 바로 이거다. 빰쁠로나에서 내가 묵는 사설도 공립보다 조금 비쌌다. 공립은 침대 하나에 5유로에서 8유로 정도, 즉 8천 원에서 1만 원 정도다. 사립은 대략 10유로에서 15유로 정도, 대략 13,000원에서 2만 원 안팎이면 된다. 좀 더 퀄리티 있고 식사 포함 여부에 따라 그 이상으로 낼 수도 있다.

독방을 쓰는 게 보통 30유로부터 시작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50유로 이상인 듯하다. 좋고 큰 집을 빌려서 여럿이 쓰는 방법도 있다. 대도시에 가면 여럿이 며칠 머물면서 호사를 누려도 좋을 듯하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서로 갈등도 있다. 누가 좋은 침대를 쓰네, 마네! 그런 건 여행길, 순례길에서 알아서 감당할 몫! 몸이 안 좋거나 절대적으로 쉬고 싶을 때, 호텔에 머물면 어떨까? 하지만 대부분 순례자들은 많은 순례자들이 얽혀 있는 공립 알베르를 좋아한다. 나도 초반, 순례길에 적응할 때까지는 공립을 자제했지만 점차 공립 안에 뛰어드니 더 스펙터클 해지는 이야기들이 전개되었다. 계속 같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돈을 떠나서 그 재미로 공립 알베르게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공립 알베르게는 미리 예약이 안 된다. 론세스바예스 만 예외다. 한국에서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을 해야만 머물 수 있다. 오리손 사설 알베르게도 미리 한국에서 예약해야 하지만, 환자나 노인들은 급하게 침대를 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성수기에는 택도 없을지 모르겠다. 이것 역시 모험이다. 미리 여유 있게 예약을 하자.  

생장 순례자 사무소에서 2유로를 내고 얻는 자료에서 공립 알베르게 포함 사설 알베르게가 안내되어 있다. 사설은 미리 예약을 해도 되고,  당일에 길 중간에 전화해도 된다. 자리가 있느냐가 관건! 비수기에는 굳이 예약이 없어도 되지만 축제 등 현지 상황에 따라 방이 없는 경우도 있다. 침대는 도착하는 순서대로 잡을 수 있다. 환자나 노인들을 위해 몇몇 1층 침대를 빼놓기도 한다. 모두 환자이고, 모두 노인이어도 팀별로 공평하게 1층 침대와 2층을 함께 쓰도록 한다. 때론 앞뒤 안 맞는 배치가 있기도 하다. 마음 상할 수도 있지만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차피 하루만 자면 지나칠 곳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바로 여행자, 순례자 덕목을 배워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오늘 럭셔리 점심해볼까?


우리는 미리 식당 테이블에 앉았다. 주문은 ‘순례자 메뉴’였다. 훌륭했다. 와인 한 잔씩 나올 줄 알고, 세미에게 미리 내 잔까지 주겠노라했다. 그런데 한 병 나왔다. 감동! 나는 비록 술을 못 먹지만, 못 먹어도 고(?)였다. 스테이크에 감자튀김은 왜 이리 맛있고! 새우볶음밥과 샐러드, 뭐가 이리 완벽하지? 세미와 나는 두 종류의 사이드 메뉴를 선택했다. 덕분에 골고루 맛볼 수 있었다. 볶음밥도 샐러드처럼 사이드 메뉴라니! 물도 푸른 병에 담긴 고급스러운 물이었다. 술 대신 물이 나온 것인데, 아무래도 한 사람 당 술 한 병, 물 한 병을 준 것 같다. 낮부터 흥분한 얼굴로 밥을 시키는 모습이 주인장에게 감동을 준 것일까? 어쨌든 후식은 어제 미리 봤던 아이스크림인데, 역시 맛있고, 멋졌다.


<순례자 코스 메뉴 ; 순례자들이여, 걷느라 수고 많았어! 맛있는 거 먹고 쉬거라. 옛따 보상이다!>

빰쁠로나 순례자 메뉴는 대체로 15유로! 꽤 훌륭한 편에 속했다. 보통 순례자 코스는 10유로에서 12유로 정도이다. 조금 비싸다 싶은 곳이 15유로인데,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우리 돈 2만 원에, 든든한 식사와 사이드 메뉴, 술과 후식까지 곁들여지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특히 정성껏 차려진 메뉴를 볼 때면 감동이 배가 된다. 스테이크의 경우, 고기가 얇은 곳도 많지만 맛은 좋았다. 우리가 기대하는 두툼한 스테이크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분위기의 데이트 비용을 따져본다면 젊은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다.

술 못 먹는 내게 와인이 서비스로 나오는 것은 조금 아깝다. 가끔 콜라는 안 되니,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안 된다고 한다. 대신 물이 나온다. 와인은 물처럼 싼데, 어딜 가나 콜라는 그보다는 좀 비싸다. 콜라를 먹으려면 별도로 값을 지불해야 한다. 아무래도 미국 수입품이라 로열티가 붙겠지! 대부분 순례자 코스에는 한 사람 당 한 잔의 와인이 나온다. 물을 시키면 작은 생수 한 병이 나오는 식이다. 아이스크림은 컵으로 떠서 나오기도 하지만 하겐다스류 하드가 접시에 딱 하니 나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 먹으려면 비싼 것들인데, 여기는 서비스로 곁들여진다니!.


우리에게는 주 메뉴 같은 볶음밥 종류가 사이드 메뉴에 속한다. 두 사람이 각기 다른 사이드 메뉴를 선택해서 맛봐도 좋다. 와인이나 물과 함께 빵이 곁들여져 나오다.


고기가 싸고 질이 좋다. 스테이크 용은 그보다는 값이 나간다. 스테이크용이 아니라도 고기가 두툼하니 맛있다. 순례자 메뉴 중에 이보다 얇은 고기도 있지만  대체로 맛이 좋다


이름 난 곳은 이유가 있다. 순례자 메뉴라고 해서 대충 나오지 않는다. 하나씩 시키면 얼만데, 세트로도 이리 나오나 싶을 정도로 호강을 만끽할 때가 있다.  [앞광고 뒷광고 아님]


저녁식사 때가 됐다. 대충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놀다가 어제 슈퍼에서 샀던 음식들을 떠올렸다. 휴게실 식탁으로 내려갔다. 중년의 한국 남자가 있었다. 세미가 떠먹는 요구르트를 그에게  내밀었다. 1유로에 여섯 개짜리 요구르트! 일단 싸니까 한 묶음 사서 선심 쓰게 되는 품목이다. 세미도  나도 좋아해서 둘이 나눠 먹자며 샀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것도 하나씩 살 수 있다는 것을! 여하튼 묶음이 이렇게 싸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우유, 치즈! 푸딩, 요플레! 모두 맛있고 쌌다. 1리터 우유가 천원도 안 되니 말이다.


중년의 한국 남자는 우리에게 냉장고에 자기가 넣어둔 볶음밥이 있다고 했다. 고마우니, 우리에게 그걸 먹으란다. 한국인의 정 문화 순례길에서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안쪽 침대에는 자신의 아내가 있다고 했다. 저녁식사로 샀는데, 안 먹을 것 같다며! 사실 우리도 점심을 잘 먹어서인지, 굳이 밥까지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가볍게 때우자 싶었는데! 일단 고맙지만 사양을 하고, 세미와 함께 다시 슈퍼로 나갔다. 다음 날 걸을 때 필요한 간식과 과일들을 미리 사놓자며! 저녁식사로 때울 빵도 살 겸!


유럽의 광장은 그 주홍 불빛 때문인지, 낭만스러우면서도 약간의 쓸쓸함이 전해지기도 한다.


벌써 주홍 불빛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다. 이제 하루만 더 자면 이곳을 떠난다. 빰쁠로나에서 좋은 벗을 만나 든든한 느낌이었다. 세미가 내게 함께 가자고 하는 걸 보면 오는 동안 벗이 필요했던 듯하다. 모처럼 마음 맞는 또래 동양 친구를 만나서 마음이 편했다. 주변 성곽을 두른 가로등을 따라서 쭉 돌아봤다.

순례자들은 이곳에 머물며 부지런히 돌아다녀도 빰쁠로나를 다 볼 수 없을 것이다. 순례길에서 고작 하루, 길어야 이 삼일 머물면서 그 마을, 도시를 다 볼 수 없다. 어떤 곳은 더 오래 머물고 싶고, 어떤 곳은 어서 달아나고 싶은 곳도 있다. 그게 마을이 되기도 하고, 숙소가 되기도 하고, 혹은 특정 사람으로 인해 그곳 전체가 싫어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한다. 빰쁠로나는 내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떠나보낸 장소로 깊이 새겨질 것이다.


광장에 있는 시청 건물인데, 이렇게 예뻐도 되나 싶다. 낮에 봐도 참 아기자기한 건물이다.


딱히 할 것도 없는 밤이 되어도 순례자들은 어슬렁 거리며 거리를 배회한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맥주 한 잔 나누기도 하고!


한가한 순례길과 달리, 밤에, 도시를 돌아다닌다는 게 피곤한 것인지! 급격히 졸렸다. 아일랜드 친구 쥬벨도 일찍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서 논다. 굳이 사람들이 있는 거실 겸 주방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쉬는 게 남는 거라서 그런지, 그녀는 누구와도 수다를 떨고 싶지 않았나 보다. 오늘도 입만 뻐끔거리며 그녀와 인사를 나눴다. 그녀가 조금 편히 누워 미소를 날렸다.


혼자 길을 걷는 사람들은 사람을 멀리하면서도 그리워한다. 가까이 있어도 거리를 둔다. 예민한 사람은 그냥 떨어지는 게 상책이지만, 혼자 있는 걸 즐기는 사람들과는 적당히 놀다가 떨어져 주면 된다. 그녀 마음을 나도 알기에 이 거리만큼만 그녀를 뒀다. 이제 빰쁠로나에서 충분히 쉬었다. 푹 자고, 내일 다시 출발이다.


그림자는 실제 키를 반영하지 않는지, 나보다 10센티는 더 큰 친구가 고만고만하게 나왔다. 그림자 세계에서는 같은 레벨인가? 쌀쌀한 탓에 점퍼를 입었더니 둘 다 눈사람처람 나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길] 만남, 작별, 재회의 장 빰쁠로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