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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Sep 24. 2020

[산티아고 순례길] 만남, 작별, 재회의 장 빰쁠로나

[4일] #2. 빰쁠로나(팜플로나)

<빰쁠로나>

빰쁠로나는 원래 나바라의 원주민이 살던 곳이다. 11세기 프랑스인과 유태인이 이주해오면서 문화, 예술, 전통이 어우러진 역사적인 도시가 됐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인상적인 건축물과 함께 현대적이고 편리하고 아름다운 산업도시의 면모를 갖췄다. 빛나는 예술, 문화 행사, 환상적인 축제,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사람들로 방문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빰쁠로나는 작은 마을 단위가 모여서 구성된 도시들의 도시이다. 서로 다른 역사와 출신의 대립이 잦아서 성벽으로 분리시켰다. 현재에도 도시 곳곳에 구획으로 나뉜  성벽을 볼 수 있다. 빰쁠로나에서는 고대 로마,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의 다양한 건축물의 형태를 엿볼 수 있다.


해자가 있는 다리를 지나, 공원을 지나, 계속 오다 보면 성벽을 따라 언덕을 오르게 된다. 주변이 아름답게 잘 조성되어 있다.


<성벽>

빰쁠로나 방어막인 성벽은 16세기에 건설되었다. 5 각형 형태의 수비 거점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많은 유적이다. 이 성벽이 함락된 것은 딱 한 차례였다. 1808년, 눈 오는 겨울,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꾀를 냈다. 평화롭고 재미있는 눈싸움을 연출했던 것! 성벽을 방어하던 스페인 군사들은 놀이에 홀려 의심 없이 성문을 열고 나왔다. 이때 프랑스인들은 틈을 놓치지 않고, 숨겨놓았던 무기로 스페인군의 항복을 받았다. 무혈입성인 것이다. 현재 성벽 주변에는 멋진 공원이 있다.


빰쁠로나에 들어서는 순례자들이 통과하게 되는 문이다.


<수말라까레기 문> (Portal de Zumalacárregui)

프랑스 문이라고 불리는 이 아치는 1553년 건설되었다.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어두운 밤 홀로 이 다리를 건너 빰쁠로나를 떠난 군인의 이름(수말라까레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치 위엔 황제의 문장인 두 개의 머리 달린 독수리가 있다. 18세기, 개폐식 다리 바깥쪽 문을 추가, 부벽과 평형추 등이 남아 있다. 까미노 순례자들은 빰쁠로나로 들어오기 위해 이 문을 통과하게 된다.

<위 상자 글들은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자료 참조>





성문을 딱 들어서면 보이는 뷰다. 중심에서 벗어났지만, 여기서부터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골목이 주는 멋이 있다.


빰쁠로나에 일찍 도착할 수 있다면 공립 알베르게로 가도 좋을 성싶다. 대도시의 규모만큼이나 크고 좋은 환경을 자랑한다는데, 나는 빨리 도착할 자신이 없어서 사설 알베르게를 택했다. 숙소는 바로 성문 앞에 있다. 작은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중세에서 현대로 바로 넘어온 듯, 깨끗하고 예쁜 현대식 시설이 보인다. 아기자기한 내부에 사람들이 앉아있는 모습! 스텝들 모두 성격 좋은 사람들이었다. 지친 순례자를 위로하듯 즐거운 표정이었다.


오래된 건축물 안에 현대식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다. 수비리 숙소 주인장이 예약해줬을 뿐,  나에게는 앞 광고든 뒷 광고든 없다.


부엌과 테이블 사이가 통로다. 쭉 가다가 서너 계단 밑으로 꺼진 반 지하로 내려갔다. 등산화와 스틱을 두는 곳! 큰 배낭은 복도 벽 쪽에 쭉 걸어서 보관했다. 내 배낭! 잘 도착했다. 레인 커버를 벗기자,  순례자 여권이 보였다. 독일인 아버지가 레인 커버를 잡아당겨 툭 집어넣은 듯! 그게 어딘가! 그가 발견해서 보내주지 않았다면, 잃어버렸을 것을! 빰쁠로나 숙소 도장도 이어서 찍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주인장은 뭔지 모르지만 감격스러운 내 '여권 투시 포스'에 배낭이 잘 도착해서 좋냐며 웃었다. 안쪽 복도로 들어서면 화장실과 샤워실, 세탁실이 나온다. 스텝의 친절한 안내는 계속됐다.


깔끔한 부엌,  아침에는 풍성한 간식들이 놓이는 곳이다.




2층 계단으로 오른다. 바닥에 조명이 있다. 신경을 많이 쓴 인테리어! 유리문 앞에 섰다. 앗! 내부가!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내가 문명의 이기 앞에 감동을 먹다니! 어둡지만 군데군데 자기만의 불빛을 낸 큐브 속 순례자들!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벙커가 주는 편안함! 현대식으로 깨끗하게 정비된 곳에 있으면 마음까지 편해진다.


벙커는 개별화되었다. 침대 안에 개인 보관함이 있고, 개인 전등과 콘센트도 있다. 커튼을 치면 아늑한 공간! 큰 배낭은 반지하에 두고 귀중품과 일상품을 보관함에 넣도록 했다. 자물쇠를 잠그는 법을 알려주던 스텝이 짐을 넣어둬도 안전할 거라고 한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언제나 보조가방을 메고 다니던 긴장감! 사람들 대부분 내부에서 홀가분하게 다녔다. 나도 그러고 싶었지만,  마음을 놓기 시작하면 영혼까지 놓기 쉽다. 칠랄레 팔랄레! 나의 멘털 리듬! 그냥 보조가방은 가지고 다니는 걸로!


벙커 2층 모습!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롭다.
늦게 왔는데 1층 침대를 내줬다. 수비리 숙소 주인장의 전화 때문일까? 침실에 적힌 내 이름이 틀리다.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대부분 자기 이름도 엉망이라고 했다. 세계에서 쏟아져 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어찌 다 알아듣겠나! 전화 예약 때 대충 적은 이름이겠지?


1층은 드나들기 편하다. 맞은편 중년 부부는 한 사람은 2층이라서 그런지, 나란히 앉아서 소파처럼 쉬고 있었다.




까미노를 시작한 지, 고작 며칠밖에 안 지났다. 그런데 왜 까마득한 옛날에 시작한 것 같지? 하루도 쉬지 않고 걸어와서일까?  오는 동안 순례자 대부분 '빰쁠로나에 도착하면'이라는 말을 했다. 대도시 빰쁠로나에 가면 해결할 수 없는 게 없다는 듯! 이곳에 며칠 머물겠다는 사람들! 나는 더 머물 생각도 못했다. 쉬지 않고 걸어온 그 기운으로 계속 걸어야 할 것 같은데? 계획 없이 시작한 순례길! 세부적 계획은 더더욱 없었다. 빰쁠로나에 도착해서 느낀 점은 사람들이 모두 들떠있다는 것! 관광객들이 많이 섞여 있어서 그런가? 순례자들도 휴가 온 사람들 같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여유로워졌다.


일단 샤워부터 끝내야지!
그리고 빨래도 하자!
늘 그랬듯이


배낭 보관대를 지나 화장실, 샤워실, 세탁실이 있는 통로에서 한쪽으로 비켜서는데,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한다. 아! 피레네 롤랑의 샘에서 만난 여인! 그녀의 이름은 쥬벨! 아일랜드 사람이었다. 뭔가 신나는 눈빛이 그녀를 스쳤다. 환한 미소로 내게 수다를 떠는 그녀! 자신은 여기에서 이틀을 묵을 거라고 한다. 빰쁠로나도 좋고, 이 숙소도 너무 좋다고! 나도 호들갑스럽게 맞장구쳤다. 둘이 마주 보며 낄낄 거리는 모습! 아무리 세속과 떨어진 까미노라고 해도 현대식 시스템이 좋긴 좋은가 보다. 샤워하고 빨래하고, 동네 한 바퀴 돌며 슈퍼에 들러 저녁 찬거리를 사야지! 콧노래를 부르며 배낭에서 이것저것 챙기는 사이, 쥬벨이 빨래를 모아서 함께 세탁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오! 그런 제안 좋지!”

내가 팔짝 뛰며 좋아하자 그녀도 신이 났다. 그러자 한 사람이 더 다가왔다. 자기도 묻어서 같이 하자는 것! 이렇게 스스럼없이 의기투합하게 되다니! 순례자 모드는 사람을 뭉치게 한다.  

“세탁 3유로, 건조 3유로! 총 6유로인데, 셋이 나눠서 내면 각자 2유로씩에 세탁과 건조를 다 할 수 있네!”

“와우! 신난다. 깨끗하게 빨래하고 뽀송뽀송하게 말리는데 겨우 2유로에 해결되다니!”

"너무 좋아!"


별 거 아닌 일에도 참으로 기쁨이 넘치는도다! 우리 돈으로 환산을 하면 1유로에 1,300원이니까, 6 유로면 8천 원 가까운 돈이다. 그걸 각자 2유로만 내면 된다고 하니, 2,600원에 모두 끝낼 수 있는 것이다. 그냥 느끼기에 2유로에서 6유로 사이는 별로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한국돈으로 계산하면 큰 차이다. 1유로를 자꾸 푼돈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오래갔다. 1유로가 동전이라서 그렇다. 더 작은 단위  50센트는 거의 부스러기 돈처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50세트도 650~700원이다. 잔잔바리로 귀찮다고 막 던져놓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여행 중반부터는 순례자 모드로 변해서 그 돈들도 알뜰히 챙기며 다녔다.


자, 이제 빨래는 각자 파트별로 바꿔주기로 하고! 저녁 준비하러 나가봐야 할까? 일단 테이블에 앉아서 쉬는 분위기인데! 누군가 문 밖에서 들어오며 춥다고 야단이다.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는 그녀! 대만에서 온 인상 좋은 여인이었다. 커트머리인데, 중국계라기에는 얼굴이 조금 탔다. 남들이 자기 보고 동남아 사람이냐고 묻는다며 능청을 떠는 그녀! 참 유쾌한 친구다. 무엇보다 내 또래 동양인이라는 게 반가웠다.


세미는 일찍 도착해서 빰쁠로나 여기저기를 훑어보고 왔단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파악했다고! 눈도 크고, 키도 큰 세미가 춥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거위인지, 오리인지, 삐져나온 깃털 옷을 입고서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세미! 버젓한 중국식 이름을 알려줘도 발음이 어려워서 못 따라 한다. 그래서 쉬운 영어 이름을 택해서 쓴다고 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보며 물었다.

“어디서 오셨나요? 중국 사람인가요?

그때 그녀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저는 대만 사람입니다.”

나는 그녀의 의도가 뭔지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나게 '하하하' 웃었다.

“알아요. 당신이 뭘 말하는지! 그래요. 당신은 대만 사람이군요. 반가워요.”

그녀는 내 웃음으로 선뜻 마음을 연 표정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소개를 저렇게 해왔을까 싶었다. 더러는 '대만도 중국인데?'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녀에게 직접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잡한 그들의 역사만큼이나 우리도 당장 해결하지 못한 역사가 있지 않은가. 독일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의를 줬던 것처럼, 각 나라마다 겪고 있는 상황, 역사, 사회 현상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세계 역사 속에 여러 나라의 이해들이 섞여있으니 말이다. 첨예하게 나뉘는 그 시선들과 함께!



외국 나가면
라면에, 고추장에, 김치가 당긴다.
아직은 초반이라
굳이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먹고 싶었다.


아일랜드 친구 쥬벨은 먼저 동네를 좀 돌아보면서 식사를 하고 오겠단다. 그때 한국 사람들이 근처 중국 마켓에서 라면을 샀노라, 중국 음식점에서 뭘 먹었노라, 알려주는데, 이상하게 '소고기 뭇국'이 먹고 싶었다. 소고기를 볶다가 무를 펑펑 썰어서 넣어서 소금 조금 넣고 끓이면 될 것 같은데! 여기에서 소고기는 싸고 좋은데, 무가 안 보였다. 철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원래 드문 건지!  대만 친구 세미는 나랑 저녁을 같이 먹겠단다. 돼지고기를 사서 한국 고추장으로 볶아먹자고 했더니, 좋아라 한다. 벌써 한국 음식이 그리워지다니!


슈퍼에서 장을 보려고 할 때였다.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난 메디에게 연락이 왔다. 자기가 지금 빰쁠로나에 있다며 얼굴을 보자는 것이다. 나보고 어디에 있냐고 계속 물었다. 밥 먹으려고 장을 본다고 하자, 자기랑 밥 먹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샤워하고 세탁하고, 저녁식사 준비까지 하느라 그녀가 일찍부터 보낸 문자를 늦게 본 거였다. 일찍 봤다면 약속을 했을 텐데! 이미 세미랑 저녁을 먹겠다고 했는데, 그녀를 버려두고 가기도 애매했다. 메디는 처음에는 헤밍웨이 카페에 있다가 지금은 순례자 코스가 잘 나오는 식당에 있다며 빨리 오라고 했다.


새 친구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자고 한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세미에게 상황을 얘기했다. 내게 얼른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라고 했지만, 사실 메디와 미리 약속한 저녁식사도 아니었다. 그녀가 다른 일행들과 함께 있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 세미와 함께 메디한테 갈까도 싶었다. 하지만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시키는 시간이 이미 지났단다. 힘들어서 그런지 회로가 살짝 꼬였다. 저녁을 사 먹을 생각을 안 하고 왜 해먹을 생각을 했을까? 걸어오는 내내 먹고 싶은 걸 떠올리면서 와서 그런가 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사람이 단순해진다는 말이 맞다. 먹는 거랑 잠자리만 만족스러우면 됐다. 거기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면 기쁨이 하늘을 찌른다. 친구도 이러한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겠지?

 

슈퍼가 있는 작은 광장에서 메디가 있다는 카페를 찾는데 없었다. 시청 쪽 광장까지 갔지만 못 찾았다. 내일 일찍 떠나야 한다는 메디, 어떻게든 오늘 나를 꼭 보고 가겠단다. 남자면 얼마나 애틋한 사랑의 서막인가! 순례길에서 로맨스를 꿈꿀만한 남자를 볼 수 없었다. 남자들이 많지도 않았지만, 있어도 나이가 맞지 않았다. 너무 젊거나 너무 나이 들거나! 내 또래 사람들은 만나기가 힘들었다.


조금 피곤한 탓에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메디가 정말 적극적으로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왜 그토록 나를 보려고 하는 걸까? 지도를 보내주고, 전화를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길치인 건 인정하지만, 골목이 다 똑같은 유럽 대도시, 구글 지도가 아무리 알려줘도 내가 알아볼 것 같은가! 나는 자꾸 엉뚱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때 메디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왜 안 오냐고 해서, 지금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한국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그대로 두면 절대 못 찾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나 보다. 한국 남자는 순박한 건지, 어눌한 건지, 조금 기운 없는 목소리로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뭔가 자기 목소리를 숨기고 있는 느낌이랄까? 순간,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났던 한국 남자가 떠올랐다. 그 호주 여인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던 그 원인 제공자! 설마! 이 널린 천지에 한국 남자가 그 남자 하나겠어?


길을 설명해주는데 한숨이 나왔다. 이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길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 영어가 어려워서? 길이 복잡해서? 아니다. 아무리 한국말로 듣고, 지도를 보내줘도, 길치는 길을 못 찾는다. 결국 슈퍼가 있는 쪽에서 쭉 올라가면 헤밍웨이 카페가 있는 광장이 나온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가기도 얼마나 힘겨운 과정이었는지! 다행스럽게도 있다.


메디가 캡처해서 보내준 지도! 보기에는 정말 단순하지만, 일단 방향 찾는 것부터, 골목도 헤맸다. 길치는 지도 까막눈!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빰쁠로나! 그는 이 카페에 자주 들러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단다. 내가 찾은 광장 안에 있다.


사실, 길을 찾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는지 모르겠다. 배가 고프고, 생각보다 복잡한 거리! 얼른 얼굴만 보고 가야지 했는데, 발도 아프고 내 체력도 바닥났다. 광장 둘레로 식당가와 카페들이 있었다. 주홍 불빛을 뿜어내며 늘어선 곳! 낭만적이었다. 야외테이블은 저녁에는 추워서 그런지 투명 벽을 세워놨다. 헐레벌떡 그들 앞에 서자, 메디가 신나게 다가와 나를 와락 안는다. 켁! 그녀의 일행이라고? 테이블로 눈길을 옮기자, 어정쩡하게 반기는 한국 남자들! 음? 한 사람은 내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냐 싶은 한국 남자! 도대체 순례길에 한국 남자는 너뿐이더냐! 나는 별소리 없이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옆에 있던 동생이라는 남자는 피레네를 넘어오면서 만난 사람이란다. 군대 갓 제대한 성격 좋아 보이는 친구였다. 오늘은 호주 여인을 슬프게 했던 그 한국 남자도 밝은 성격이었다. 론세스바예스 때와 달랐다. 사람은 세 번은 만나야 실체를 알게 되는가 싶었다.


광장 주변으로 카페와 바들이 즐비하다. 왼쪽 편에 순례자 코스가 잘 나온다는 식당들이 있다.


이미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앉아서 수다만 조금 떨다가 가자 싶었다. 메디는 특별히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일 수 있다. 얼핏 듣기로 이 한국 남자도 인도를 다녀왔다고 하니, 뭔가 공통점이 있다고 여긴 게 아닐까? 메디가 자신의 일을 아직 말하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특별히 인도에 애정을 가진 말투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나는 새 얼굴 친구에게 장난처럼 말을 걸었다. 그도 스스럼없이 대해줬다.


바쁘면 오지랖을 펼칠 시간이 없다. 메디와 수다 떨기도 바쁜 시간! 한국 남자에게 호주 여인을 만났다는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말기로 했다.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사실, 다른 사람 얘기까지 할 시간이 없었다. 메디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 만난 것처럼 좋아라 했다. 메디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과하게 반가워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짧은 만남이었는데, 그토록 반갑단 말인가? 나는 그녀와 수다 떠는 시간이 좋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0분 남짓! 슈퍼가 문을 닫기 전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야 했다. 간단하게라도 저녁식사를 해결하려면!

 

후식이 나왔다. 이게 다 순례자 메뉴에 포함된 금액이라고 했다. 애석했다. 이 좋은 걸 못 먹게 되다니! 나의 이런 아쉬움을 알고 메디가 말했다.

"내일 와서 먹어! 점심때부터 먹을 수 있어!"

"아, 그렇구나! 대만 친구랑 와서 먹으면 되겠다."

이러면 깔끔한 것을! 그들의 후식이 나왔다. 아이스크림이 고급스러운 접시에 데코까지 되어 나왔다. 맛보라며 내게 찻숟가락을 내민다. 한 입 떠먹고 맛있다는 표정으로 일어섰다.

"가야 해! 저녁 만들어서 먹기로 했거든! 오늘 처음 본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

메디가 일어나서 나를 앉혔다. 이건 한국식 리액션인데? 신선했다.

"같이 일어나! 우리도 가야지!"



메디가 사진을 찍자며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일단 셀카 모드!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음, 역시 한국인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해! 한국 남자들도 포즈를 취하며 즐겼다. 피식 웃음이 났다. 메디가 신나게 이리저리 방향을 돌려가며 사진을 찍어댔다. 새 얼굴 청년은 여태 보아온 한국 젊은 친구들과 달리 환한 미소를 뗬다. 민간인 신분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아직은 사람이 귀한 때인가 보다.


사진은
쓰리쿠션으로 전달하시오!


메디는 한국 남자를 신뢰하는 눈빛이었다. 마치 ‘우리 회사의 기대 유망주야!’라고 소개할 것만 같았다. 남자 역시 메디에게 인정받아서 좋다는 눈빛! 저 눈빛은 분명, 론세스바예스 때 호주 여성에게 보인 눈빛과 달랐다. 그는 그때 과하게 몰입한 호주 여성이 부담스러웠던 건가? 메디에게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상처가 많다고 했다. 사진 찍은 것도 메디를 통해서만 받겠다고 했다나? 이 무슨 쓰리쿠션의 사진 전달 방식인가! 행여 사진 핑계로  연락처라도 캐물을 줄 알았던 거야? 오, 그놈의 인기로 피곤했던 거야? 그런 거야? 오버가 좀 있는 친구네 그려? 내 휴대폰 사진에는 메디와 내 사진이 주를 이루는데 말이야.


짧은 빰쁠로나의 추억! 두 남자도 내일 빰쁠로나를 떠난다고 했다. 메디는 일정상 내일 아침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고! 그래서 그토록 오늘 밤에 꼭 만나자고 했던 거였군! 다시는 못 볼 순간의 사람들! 여행이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좋았고, 아무리 행복했어도, 잡아둘 수 없는 물거품이다. 다시 그 장소로 그 사람들이 똑같이 만난다고 재현될 상황도 아니다. 이미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니고, 그들도 그때의 그들이 아니다. 환경 또한 그때의 환경이 아니다. 함께 다시 그 장소로 그 사람들이 갈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저 지금 이 순간! 잠시 머물다가 각자 좌표대로 움직이면 끝이다. 한 번쯤 앓이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여행지에서 마음에 들어온 사람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그 순간 기억 속 사람일 뿐! 물론 현실로 소환된 사랑도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사랑! 그래서 귀한 사랑이겠지!


육안으로 본 거리의 느낌을 휴대폰 렌즈로 다 잡을 수 없다. 내 휴대폰은 흔들리기까지! 대부분 상태가 이랬다.


메디는 네덜란드 사람이지만 독일에서 일을 한다. 무슨 일인지는 여태 비밀이다. 혹시 첩보요원인가? 했더니,  대놓고 하하하 웃었다. 얼떨결에 넷이 또 모여 광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놈의 사진은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그녀는 사랑이 많은 사람!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그럽고 진지한 눈빛!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눈빛! 내가 언제부터 놓쳤던 그 눈빛! 닮아야 할 그 눈빛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다.

“너희들 독일로 꼭 와야 해!”

나에게는 뜬금포인데, 한국 남자들은 계속 들었던 말인가 보다. 대충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지!' 정도로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나도 그냥 '다음에 가겠다'며 인사치레를 했다. 그러자 메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이라는 건 없어. 그냥 까미노 끝나는 대로 바로 독일로 와! 응?”

어, 뭐지? 이 진지함! 당연히 가고 싶지! 하지만 어찌 내일을 장담하겠나! 그보다 까미노 예산과 일반 여행 예산에는 차이가 있다. 이번 까미노를 끝내고 독일에서 머물 여유는 없을 듯했다. 한국 남자도 메디의 진지함에 웃었다. 그러고 보니 메디 앞에서 한국인인 우리는 그냥 어린 동생들처럼 순해졌다. 메디가 사람을 사랑으로 대해서 그런가 싶었다.


남자 둘이 먼저 가고, 메디와 나는 광장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돌면서도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케케케 웃어댔다. 그녀가 사진을 찍어주길래,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며 '우~!' 관능적인 표정을 지었더니 웃겨 죽는다. 이번에는 메디 차례! 자기도 나처럼 빙그르르 돌며 광장을 누빈다. 뭐지? 이 빙구 같은 구석? 나랑 똑같은 과가 분명해! 순간포착으로 찍었지만, 내 휴대폰이 못 따라간다. 야간 조명에 살짝 흔들린 모습이 몽환적이다.


메디는 나의 모델


메디는 은빛 커트 머리에 눈가 잔주름이 멋있다. 몸은 그야말로 모델처럼 날씬한데, 세월이 묻은 얼굴도 멋지다. 나는 괜히 큰소리로 외쳤다.

"메디는 나의 멋진 모델이야!"

그녀가 내 너스레가 싫지 않은 듯 헤벌쭉 웃었다.

'이 귀여운 것! 안 친해질 수가 없어!'

메디는 나의 멋진 모델! 이 말은 그녀가 모델처럼 아름답다는 의미도 있지만 진짜 내가 나이를 먹으면 그리 돼야지 싶은 모델이었다.


역시 내가 널 잘 봤어!


메디와의 짧은 만남,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다.

“수! 독일로 꼭 와줘! 한국 남자한테도 말했어. 너도 꼭 와! 알았지?”

“메디, 아무래도 이번에는 안 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이미 끊었어. 순례 끝나면 기간이 빠듯해! 다음에 갈게!”

“아냐, 비행기는 뒤로 미루면 되잖아. 독일로 와봐. 이번에 끝나고 꼭 와!”

이처럼 누군가를 강렬하게 초대하다니!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헤어지기 전에 말했다.

“수, 저 한국 남자, 인도도 갔다 왔대. 너도 인도 갔다 왔잖아. 말이 잘 통할 것 같아서 같이 보면 좋을 거라 생각했어. 근데 저 한국 남자가 한국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 하더라고!”

“눈치챘어. 론세스바예스에서 봤을 때부터 느꼈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런데 그가 메디랑 동행할 줄 몰랐네!"

"그 호주 여자 기억하지? 우리랑 론세스바예스에서 밥 먹었던 여자!"

메디가 호주 여자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기억하지! 저 한국 남자랑 순례길을 같이 걸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아까 오다가 그 호주 여자 봤거든! 나한테 조금 화난 말투였어.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난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왜 그랬을까? 한국 남자랑 사이가 안 좋아져서 그런 거라 짐작했어.”

“오, 그래, 너도 느꼈구나. 나는 그녀와 수비리에서 만났어. 한국 남자도 같이! 수비리에 방이 없다고 해서 다음 마을로 갔어."

"어머, 너희도 수비리에서 방을 못 잡았구나!"

아마도 이들도 공립에서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공사를 하는 줄 몰랐겠지!

 "그런데, 그녀들이 아침에 다시 택시 타고 수비리로 간 거야! 거기서 다시 걷겠는다는 거야. 이해가 안 갔어."

오다가 다른 순례자들에게 들은 주인공이 바로 그녀들이었구나!

"내가 저 한국 남자랑 같이 말을 하니까, 눈빛이 이상해져서 나한테도 툴툴거렸어.”

“어머나, 그랬구나. 메디가 한국 남자랑 말하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겼구나. 어차피 자기 남자 친구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우린 모두 순례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인데! 한국 남자가 너한테 편하게 대하는 게 질투 났나?”

“맞아. 수, 너는 정말 눈치가 빠르다. 네가 그걸 다 느꼈구나. 역시 내가 널 잘 봤어.”

“너도 마찬가지야!”

셀프 칭찬들이 늘어지고, 메디의 '독일 와라' 랩이 다시 흘러나왔다.

"메디, 우리 다시 연락하자. 잘 가!"

"그래, 수! 꼭 독일로 와야 해!"

나는 메디에게 '안녕!'을 고하고 냅다 뛰어야 했다. 저녁이 더 늦어지면 안 되었으니!   


호주 여성이 낮에 내게 했던 말이 스쳤다. 그가 말없이 가버렸다! 아마도, 택시를 타고 다시 끊어진 걸음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미친 짓이라고 여긴 한국 남자는 메디와 함께 돌아섰을 것이다. 메디와 한국 남자들이 끝까지 함께 걸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무릎이 아픈 호주 여성은 자신과 함께 택시를 타고 오지 않은 것에 화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걸음으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기에 원망이 서렸을 지도! 그래서였나? 론세스바예스에서 함께 밥을 먹지 않았다면 온전히 그 남자가 자신의 남자가 됐을 텐데, 괜히 메디라는 여자 좋은 일 했다고 여겼을까? 내가 메디랑 만나며 연락하는 사이고 친하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화가 났던 거였나 싶었다. 그러니까, 한국 남자와 같은 나라여서 내게 화를 낸 게 아니라, 메디와 친한 사람이라서 나에게 화를 냈던 게로구나! 아, 이건 뭐지? 너무 신선한 반전이로세! 다음날 메디는 사진을 몽땅 보내왔다. 나는 까미노가 끝나고, 잊힐 때 즈음 보내주고 싶었다. 그녀에 대한 느낌까지 적어서!



정말 미안했다.
그녀는 늦게 저녁을 먹어도
괜찮다고만 했다.


신나게 요리를 했다. 뒤치다꺼리는 대만 친구 세미가 다했다. 사람들이 식사를 다 끝낸 터라, 그냥 모아서 설거지를 해도 될 것 같은데, 내가 만드는 과정 중간중간, 바로바로 씻어놓는 센스를 보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식사 준비를 할 때는 쓰는 대로 씻어 놓는 게 맞다. 그때마다 식기가 필요한 사람을 위한 배려로! 한 서양 남자가 기웃거리길래 맛을 보여주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자기 앞에 놓인 피자인지, 큰 빵인지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세미와 나는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고기를 넣고 고추장을 막 넣으려던 참에 세미가 사진을 찍어줬다.


먹으면서 옆 테이블에 있는 한국 아저씨와 말을 섞게 되었다. 라면으로 식사를 하는 터라 우리 음식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낮에 세미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자 바르는 약을 주었단다. 세미 역시 빰쁠로나에서 이틀 더 쉬어가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무릎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세미는 한국 아저씨를 두고 고마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저런 권위적 말투를 쓰시지?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이상했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뭘 깜짝 놀라야 할까. 혹시 신부님? 스님? 아님 무속인? 왜 이런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몰라도! 뭐가 됐든 놀랄 일도 아닐 텐데! 그냥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아까 그 아저씨가 라면을 끓일 때 '어디에서 사 오셨냐? 중국 마트에서 사셨냐?' 묻는 내게 냉랭하게 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말 안 하면 되지 뭐! 세미랑 내가 발도 아프고 몸도 힘들어서 여기에서 이틀 쉬는 게 좋다고 얘기하는 도중에!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 하나!

"그런 걸로 쉰다고요? 까미노를 왜 하세요?"

분명 어리석은 것들아, 그게 앞에 붙은 것 같은 말투! 아니,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왜 선문답이 들어오지? 원래 같으면 이런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어쩌고 하겠는데, 내가 이 좋은 도시에서 이틀을 쉬겠다는데 왜 혼나야 할까?


나도 이제 늙어간다. 아직 늙지 않았다고 우기고 싶어도, 조금 더 젊었더라면 수월했을 길이다. 더 활기차고, 더 즐겁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녔을 거라는 생각! 하지만 늙으면  늙은 대로, 젊으면 젊은 대로, 어디든 내 눈 앞에 놓인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더디 가도, 힘겨워도,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다만 그 길을 걷는 동안, 자기 체력에 맞게 조절해야만 한다. 인생의 템포! 젊은 때와 나이 먹은 때는 시간의 화살 속도가 다르듯, 우리의 걷는 속도도 다르게 맞춰야 할 것이다. 한 발, 한 발,  숨 쉬며 걷는 이 길이, 하루, 하루, 우리가 살아내는 삶이라는 길과 같다. 너무 늦게 깨닫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까? 아직 깨어서 걷지는 못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삶의 이야기 속, 그 길 위에 서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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