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1.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가는 길
자고로 배낭여행에서 시작된 짐이란
인생을 담은 것!
서두른다고 서둘러도, 짐 싸는 일이 굼뜨다. 침낭을 주머니 안에 구겨 넣고, 그걸 또 배낭 아래쪽으로 쑥쑥 밀어 넣어야 한다. 그로 인해, 어제 자기 전에 배낭에 짐을 대충 집어넣고 자고, 아침에 도로 꺼내서 싸야 하는 것이다. 때때로 짐을 배낭 밖에 두고 잘 수 있지만, 여럿이 쓰는 알베르게에서 짐을 꺼내놓을 있을 공간이 별로 없다. 더불어 베드 벅스가 짐에 묻어서 배낭에 들어갈 우려 때문에 입구를 꽁꽁 동여매고 자는 게 속 편하다.
짐을 배낭에 넣고, 아침에 다시 그 짐을 끄집어내서 다시 짐을 싸서 넣는 일이 살짝 지겨울 때가 있다. 그래서 대충 쑤셔 박고 가는 날도 있는데, 이런 날에는 꼭 중간에 필요한 물건을 꺼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또한 울퉁불퉁 배낭 안에서 찌그러져 살려달라고 외치는 짐들의 비극을 겉에서도 엿볼 수 있다.
수행을 하듯 하루하루 짐들을 싸는 일부터 순례의 시작이다. 맨 아래에 침낭을 넣고, 옷을 넣고, 세면도구와 잡동사니를 넣고, 비상약과 비옷, 물과 간식들을 넣는다. 짐 꾸리는 일은 간단한 일인 듯하면서도 시간이 걸렸다. 더러 자크로 배낭 둘레를 빙 둘러서 열고, 차곡히 짐을 넣는 배낭도 있었다. 세미가 그런 배낭을 가졌다. 배낭 크기는 작았다. 그래서인지 짐도 간결했다. 그걸로 되겠냐 싶을 정도로! 그녀는 애초에 얇은 패팅과 반팔티셔츠를 챙겨 왔다. 극단적인 구성이지만 많이 고민한 결과이다.
그녀에 비해 나는 옷이 좀 많은 편이었다. 고어텍스 점퍼에, 무게와 부피가 안 나가는 바람막이 점퍼 두 개! 긴 팔 티셔츠 두 개, 긴 바지 봄가을용 두 개, 거기에 추울 때 껴입을 얇은 내복 한 벌까지! 사실 속옷도 넉넉히 준비했다. 날이 좋지 않아 빨래가 마르지 않을 것에 대비했다. 물론 세미보다 더 두꺼운 패딩도 있었다. 애초에 늦여름에서 늦가을까지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한겨울 추위에도 대비해야 했다.
<알아두면 좋아요>
한낮의 뜨거운 햇볕은 돋보기를 살에 대고 있는 듯 따갑다. 당연히 여름옷이 필요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에는 적당한 가을 옷이 있어야 했고, 비바람과 눈보라에는 방수와 통풍, 보온에 필요한 옷들이 필요했다. 아예 추워지면서 따뜻한 겨울 옷이 있어야 했지만, 무겁지 않고, 걸을 때 땀이 나지 않아야 했다. 이런 면에서 순례길에서 옷은 웬수다. 버리지도 못하고, 짊어지자니 무겁다. 추위와 더위에 약한 사람,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 건강에 자신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할 옷에 많은 고민을 쏟아야 한다.
순례길 짐 싸기는 인생을 담는 고민과도 같다. 대비를 철저히 하자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러기에는 감당할 짐이 많다.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우면 돈으로 감당할까? 동키를 이용해도 된다. 다만 매번 이용하기에 경제적 부담도 있고, 변수에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결론은 짐을 잘 줄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그냥 기본만 준비해서 가다가 추워지면 두꺼운 옷 하나 사 입어도 된다. 얇은 옷은 버리든가 기부를 하면 된다. 나 또한 중간에 새 제품을 사입기도 하고, 벼룩시장에서 득템을 하기도 하고, 기부도 했다.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주의할 것은 진짜 벼룩이 옮아올 수 있으니 세탁은 물론 고온건조까지 해서 입어야 한다.
아일랜드 친구 주벨과 세면장에서 셀카를 찍었다. 배경은 화장실 복도! 두 번 이상 만나면 인연이라 하지 않나? 오다가다 만나 반갑게 대화를 했으면 셀카 찍는 건 기본이다. 너와 나는 친구! 뭐, 그런 정도의 인증이랄까? 서양 친구들과 사진 찍을 때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게 배경이다. 그냥 얼굴만 큼지막하게 잘 나오면 된다. 요즘 어플을 쓰면 내 실제 얼굴은 성형 전 얼굴, 사진에 찍힌 얼굴은 성형 후 얼굴로 만들 수 있다.
요새 성형외과에서 주문하는 내용이 다르다지 않은가. 전처럼 연예인들처럼 해달라고 하지 않고, 어플로 완성된 자신의 환상적 얼굴을 내민다고 한다. 그야말로 본판을 중심으로 의느님이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제 얼굴 버전으로 일단 찍는다. 이렇게 찍어도 어떤 날은 혈색이 좋고, 어떤 날은 다크서클 대전이 벌어질 때가 있다. 이래야 실제 내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나중에 사진을 보내줄 때는 약간의 신의 손길 같은 터치를 좀 해서 보내주기도 한다. 상대도 나도 서로 좋은 것만 기억하기!
서양 사람들은 인물 중심으로 사진을 찍고, 동양 사람들은 배경 중심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얼굴만 보름달처럼 크게 찍어놓는 일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애초에 부탁할 때 담고 싶은 프레임을 설명해주면 좋다. 사고의 중심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삶의 패턴도 달라진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라 일컫는 세상도 이 기본적인 사고의 틀에서 움직여지니 말이다.
내 느린 걸음으로 동행할 수 있을까?
세미는 당분간 나와 동행하겠노라고 했다. 무릎이 아직 아팠지만 더 쉬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강인한 여인! 아직 순례 초입이라 그만두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피레네에서 잠깐 접질린 것이 시큰 거리긴 했지만, 파스를 바르고 주물러대다가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되면서 고비를 넘겼다. 다만, 오래 걸으면 뻐근한 건 여전했고, 문제는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는 것! 각자 다양한 이유로 순례길에서 고초를 겪지만, 그 역시 자신이 극복해야 할 몫이다. 주변 사람이 아무리 돕는다고 해도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자신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각자 힘든 과정을 겪다 보면 남을 돌볼 여력이 없어진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기와 걷는 순례길이라고 해도 여자, 남자가 아닌, 사람으로 대면해야 할 문제들인 것이다. 너무 기대지도 요구하지도 말아야 하고, 섣불리 자기 몫 이상을 감당하려고도 해서도 안 된다. 누구든 길에서 무너지면 손해다. 적당히 자신의 짐은 자신이 짊어지고, 서로가 역할 분담을 잘해서 걸어야 한다. 자기 사이도 이러한데, 남으로 만난 인연들은 더더욱 조심해야 하지 않겠나.
나는 세미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세미, 나는 걸음이 느려. 네가 빨리 걷고 싶을 때 나 때문에 속도를 늦추지 마! 숙소에서 만나면 되니까.”
그러자 세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무릎 아프잖아. 천천히 걸어갈 거야. 함께 걷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면서 가면 되지.”
그녀가 사려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보다 서너 살은 적은 나이라고 했지만 어쩐지 언니 같은 눈빛이다.
걸음이 느린 나는 무릎이 아픈 그녀보다 더 빨리 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건 어쩌면 자신감을 나타내는 지표일지 모르겠다. 상처 받은 사람보다 더 많이 상처를 받은 사람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정작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은 있지만, 스스로 그럴 수 없다고 한계를 지어버린 건 나였다. 무작정 걸을 수 있다고 나선 길이지만,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 가다가 멈추는 곳이 내 흔적의 끝이겠지!
빰쁠로나는 정말 큰 도시였다. 아침부터 걷는다고 걸어도 여전히 도시 안이었다. 보도블록 길에서 스틱을 짚고 걷자니 어색해서 손으로 들었다. 세계적인 브랜드 피잣집을 지나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도시의 가게들을 천천히 구경하며 걸었다. 아직 도시를 빠져나가고 싶지 않은 것인가? 느리고 느리고 느린 속도! 내가 세미를 배려한 것인지, 세미가 나를 배려한 것인지, 서로 그러는 것인지, 평소보다 느리고 느린 걸음! 그래서 바쁜 도시의 아침을 오롯이 챙겨볼 수 있게 되었다.
해가 떠오르는 도시의 아침, 벅찬 일상 속에 스며드는 공기,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과 차들의 움직임, 순례자라면 더 일찍 움직여 이 분주한 도시를 빠져나갔어야 했다. 어쩌다 보니, 걸어도 걸어도 아직도 도시인 그 길을 9시가 훨씬 넘어서도 걷고 있다.
며칠 쉬었다가 걸어서 더 힘든지! 세미와 나, 누구도 빨리 걷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슬렁 거리며 사진도 찍고 주변을 기웃거렸다.
“카페에서 크로와상과 카페 콘 레체(카페라테) 먹고 갈까? 좀 더 가다가 마실까?”
세미랑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눴다. 숙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나왔으니, 지금 먹는 건 과한 것인데, 도시 속에 있으니, 지쳐서인지, 배가 고파지는 느낌이었다.
그때 익숙한 얼굴 하나가 지나갔다.
“어? 안녕하세요!”
잉카랑 차를 마셨던 중국계 남자와 우쿨렐레를 멘 남자였다. 단단히 벽을 두른 경계심으로 나를 대했던 중국계 남자! 별로 안 반가워야 정상인데, 한 번 봤다고 그런 건지, 순례자들이 없는 시간, 대도시의 공허함 때문인지 무척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누가 보면 함께 길을 걸었던 사이인 줄 알겠다.
“아, 안녕하세요.”
그들도 그제야 나를 알아본 눈치였다. 진작부터 알아봤는데, 모른 척하고 지나가다가 딱 걸렸을까? 그럴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은 아니리라. 중국계 남자는 처음 볼 때와 달리 인상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안경이 바뀌어 있었다.
“어? 안경 바꿨어요?”
“아, 그걸 기억하세요? 맞아요. 안경이 부러져서 테를 바꿨어요.”
나도 내가 놀랍다.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남자들의 긴장스런 질문 ‘뭐 달라진 거 없어?’에 나도 똑같이 긴장의 침을 꼴깍 삼키는 편에 속한다.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도 무신경한 인간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신기하게 그렇다고 내게 화를 내는 친구들은 없었다. 그저 원래 그런 친구로 날 대해주었다. 고마운 친구들! 그때는 그런 게 용서가 되던 때였나 보다. 사실 남자의 안경은 내가 필요에 의해 쏟은 관심이었다. 내 안경이 망가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달고 왔기에!
그는 빰쁠로나에서 안경을 새로 했다며,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고 했다. 사실 여행할 때 물건이 고장 나면 난감하다. 새로 사야 할 경우, 여행 경비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값도 값이지만 지역에 따라 아예 구하지 못하거나 여행 일정이 지체되거나 수리조차 못 받는 경우도 있으니, 여분의 것을 준비해두는 게 좋을 듯싶었다. 그래서 내 배낭에는 선글라스와 별개로 안경이 하나 더 있었다.
순례자가 이미 빠져나간 도시는 한가로웠다. 서둘러 걸어야 했다. 도시가 너무 커서 노란 화살표를 찾기 어려웠다. 대도시로 들어오고, 빠져나갈 때 종종 화살표를 잃는 경우가 있다. 도시에 묻히는 것인지, 상대적으로 외진 골목에 있어서인지, 영 헤맬 때가 많다. 그럴 때는 괜히 걸음을 더할 필요 없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다. 도시 여기저기 차도를 건너는 동선 때문에 길이 꼬일 수 있으니!
중국계 남자가 눈빛을 번쩍였다.
“이 길을 내가 잘 알아요. 지금 난 두 번째 순례길을 걷는 중입니다.”
“오우, 그러셨구나!”
우쿨렐레 남자가 스마트 폰을 꺼내 구글 지도를 펼쳤다. 세미도 자신의 지도 앱을 살폈다. 나는 지나가는 순례자를 기다렸다. 내게는 아직도 지도보다는 사람에게 먼저 물어보는 습성이 있다. 길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다행이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구글 지도는 가끔 순례길을 자세히 안내하지 못한다. 구불거리는 길을 계산 못하는 것인지 안내된 시간보다 훨씬 더 걸어야 할 때가 있다. 물론 내 걸음 속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구글 지도는 순례길의 구불거리는 길을 인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직선거리와 평지만을 계산하나 봐요.”
어떤 게 진실인지 모르지만 체감 거리는 이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지다는 것!
길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 순례자가 나타났다. 어느 길로 갈 거냐고 물으니, 자신도 스마트폰 상으로 지도를 보는 게 헷갈린다고 했다. 여성이 지도를 못 본다고 했던가? 그럼 그녀도, 나도, 세미도 마찬가지일 테지! 믿을 거라고는 두 번째 순례길을 걷는다는 중국계 남자와 아까부터 지도를 보고 있는 우쿨렐레 남자뿐!
드디어 비장의 칼을 뽑는 중국계 남자! 그의 손가락 끝을 바라본다. 갈림길 오른쪽에 있는 길!
차들이 달리는 내리막 담장길이다. 그의 확신에 찬 눈빛, 그리고 덧붙인 그의 말!
“이제야 생각났어. 이 길이 맞아!”
그리고 그는 획 몸을 돌려서 군대의 “왼 발, 왼 발” 외치며 걷는 사람처럼 빠르게 그 길을 걸어내려 갔다. 새로 만난 여성 순례자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 안 쓰는 얼굴로 아직도 지도를 보는 중이었다.
세미와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봐도 길 건너 큰 공원으로 가로질러 갈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 상식선에서, 대도시에서 쭉 길을 내면 될 텐데, 왜 굳이 내리막 오르막으로 구불구불 돌려서 길을 만들었을까? 공원 쪽으로 사람들도 많이 오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순례자 복장이 안 보여서 그렇지, 저 길을 통해서 가지 않을까 싶은 생각! 조금 기다렸다가 사람들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세미와 눈이 마주쳤다.
“가봤던 길이라잖아. 가보자!”
그래, 맞아, 가봤던 길인데, 그는 왜 아까는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을까? 지도로 찾은 길이라면 안심이 되겠구먼! 어쨌든 최종 선택으로 중국계 남자를 믿고 따라가 보자였다.
한참 동안 걸어내려 갔다. 차가 달리는 좁은 내리막 보도블록 길! 담장에 딱 붙어서 가면서도 굳이 도시에서 이렇게까지 해서 순례자 길을 만들었을까 싶었다. 역시나 어디에도 화살표는 보이지 않았다. 한 사람만 갈 수 있는 폭에 담벼락에 바짝 기대는데, 배낭까지 메고 있으니 아찔했다. 차가 없다 싶다가 갑자기 생생 달리는 차들로 피곤이 몰려왔다.
그때였다. 한참 앞서던 중국계 남자가 휙 뒤돌아보았다. 그가 갑자기 저 아래에서 오던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아마도 길을 물어보는 듯했다. 진작 위에서 물어보지, 왜 다 내려와서 저러나 싶었다. 역시, 길을 잘못 들어선 모양이다. 이럴 때는 좀 난처해하거나, 미안해하는 정도의 표정과 액션이 필요한데 말이다. 그들은 지하철 환승이라도 하는 듯 고민 없이 방향을 틀어 차도를 건넜다. 뭐냐, 이 반전의 방향? 좋다. 방향을 틀어서 가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아니라는 신호 정도는 보내고 가야 하지 않나? 일단 자기들만 건너갔다. 따라오는 건 너희 마음이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순례길에서는 자기가 힘들면 남을 돌볼 여지가 없다. 그는 지금 경황이 없는 게 분명했다.
“괜히 따라왔어.”
“죽어도 거슬러서 못 올라가!”
세미와 나는 투덜댔다. 아니, 이 길이 잘못된 길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길은 통하겠지!”
“내려가던 방향으로 계속 가면 샛길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급기야 꼼수를 모색했다. 하지만 확신 없는 우기기였을 뿐, 우린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길을 물었다.
“이 길로 가면 순례길이 안 나와요. 저 위 공원 쪽으로 올라가서 강을 건너세요.”
이런! 아까 그 공원길이 맞았다. 위에서 현지인들에게 물었어야 했다. 섣부른 경험치를 맹신한 대가다. 걸으려고 나선 길인데, 조금 더 걷는다고 이토록 억울하다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공원 안쪽으로 쭉 올라가자, 중국계 남자와 우쿨렐레 남자가 우리 쪽을 흘깃 돌아봤다. 여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니, 왜? 세미와 나는 약간 삐친 건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미소로 서로를 봤다. 우린 일부러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 세미도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그들이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중국계 남자가 마음에 걸렸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걸음 속도가 느려서 우리와 함께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드디어 도로가 외곽으로 뻗어나가는 지점이다. 마을이 보인다. 한적한 마을 언덕에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사람이 지나가거나 말거나 흙먼지를 날리며 뭔가를 절단하고 있다. 먼지는 물론, 뭘 태우는지 연기도 자욱했다. 여차하면 숨을 못 쉴 것 같다. 사람들은 태연하게 잘도 지나갔다. 나도 적당히 멈춰있다가 아저씨들이 딴짓하는 틈에 뛰어가야지 싶었다. 멀찍이 서있는 내게 지나가라 손짓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급기야 잠시 멈춘 사이 냅다 오르막을 뛰기 시작했다. 이런 스피드가 내게도? 겨우 끝 지점에 다다라서야 숨을 돌렸다.
이미 앞서 올라갔던 세미가 한가롭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인통이 놓인 테이블에 화분으로 장식된 카페 앞이었다. 커피라도 한잔 하고 싶었지만 문을 안 열었다. 아직도 안 열었네? 이른 아침도 아닌데! 손을 망원경처럼 하고 창문을 넘어다 봤다. 보아하니, 오래전부터 문을 안 연 듯했다.
그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왔던 길! 잔돌이 흙으로 갈릴만큼 길 양 쪽에는 마치 타이어 바퀴처럼 길이 나있다. 가운데는 굵은 돌, 양쪽으로는 가는 돌과 흙, 그 길을 거닌 사람들은 보이지 않지만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흔적인 것이다.
길 속에 길이 된 이 길은 사람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길이다.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 신을 닮은 게 인간이라면 자연은 그 자체로 신이다. 우리는 신 속에 있는 신을 닮은 그림이다.
걷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경우가 있다.
혼자일 때 노래인지, 시인지, 랩인지를 흥얼거릴 때도 있다. 그야말로 나 혼자 말을 하고, 나 혼자 웃고 있고, 나 혼자 밥을 먹으면서, 그런 증상들이 나타난다. 문득 나 누구랑 얘기하지? 하는 심경으로 주변을 돌아볼 때가 있다. 이 와중에도 남의눈을 의식하다니! 그때마다 자연 속에 담겨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자연을 본다는 느낌보다 조금 더 확장된 느낌! 자연과 내가 구분 없이 한 덩어리가 된 것 같다.
나를 담고 있는 풍경 속에 그저 나는 일부인 것이다. 하늘과 땅과 나무와 새들의 노랫소리, 이 모든 자연의 흔적 속에 내가 있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은 허구이다. 인간 또한 세상에 담겨있을 뿐! 매트릭스니, 홀로그램이니, 뭐든!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순례길에서 막연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애쓰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자연과 조우하게 된다.
길 중간에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된 듯한 의자가 보였다. 멀리서 보면 짜리 몽땅 선인장인 듯 위장한 팔 잘린 나무들 옆에 나무 의자가 마련되어있다. 이 녀석 역시 나이가 많아서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 않으니까 좋냐? 나도 힘들다며 한숨이라도 내쉴 것처럼 초라하다. 하지만 이 늙고 초라한 나무와 의자가 나름 푸른 하늘과 평야를 배경으로 있어서인지, 좀 멋져 보였다. 어쩌면 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가니, 가지 있는 나무 아래 의자가 있었다. 조금 더 쉴까 어쩌고 하다 보니, 그 옆에 십자가 돌무더기가 보였다. 처음에는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만들어서 돌을 얹어서 소원을 비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차마고도에 오르면서 중간중간 기도의 돌탑이 있듯이! 그런데 그게 가슴 아픈 사연들이 담긴 순례자들의 흔적이었다.
걷는 게 그리도 위험한가? 사실, 평소에 매일 20킬로씩 한 달 넘게 걸어본 적이 있던가? 우리는 내 몸이라고 해도 내 몸의 한계를 모른 채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자고 무리하게 걷는 게 위험할 수 있다. 대부분 심장 문제와 탈진으로 인한 죽음이 많다고 한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서 모든 순례자들은 초반에 자신의 페이스 조절에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얼마 정도 걸어야 되더라, 하는 답이 나온다. 순례 안내지에 따라 움직이면 자칫 무리하는 날이 온다. 그리고 함께 가는 사람들에 맞춰가려고 자신의 한계를 생각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순례길 막바지에 그런 위험에 노출되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지만, 그대로 끝났다면 내 순례의 경험은 영원히 내 안에 담긴 슬픈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다. ‘설마 내가?’하던 나는 십자가의 돌무더기를 그저 다른 순례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념하는 자리 정도로 인식했다. 그게 내 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굳이 이런 곳에서?
한적한 작은 마을, 사람들이 카페 앞 테이블에 앉아있다. 아침에 나와 셀카로 인사를 나눈 주벨도 있었다.
“주벨? 너 일찍 출발했잖아. 더 멀리 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응. 발이 너무 아파. 빰쁠로나에서 오래 쉬었는데도 아프네?”
너무 쉬었던 탓인가. 나도 오늘 걷는 게 더 힘들었다. 좀 여유 있게 쉬면 몸이 더 쉬고 싶어 하는 것일까?
“수, 난 오늘 이 마을에서 잘 거야.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 걸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은 곳인데, 그것도 볼거리가 뭐 딱히 없어 보이는 작은 마을인데, 굳이 여기서?라고 묻고 싶었지만 자기 몸의 이야기를 자기가 제일 잘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주벨은 조금 현명한 여인 같았다. 머리를 올백으로 스튜어스처럼 쓸어 올렸지만 우리식 대감마님 같은 기운! 나이는 나와 얼추 비슷하려나?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순례길 나이! 하지만 용케 사람들은 자기 또래를 알아본다. 그녀는 푸른 눈을 가졌고 선생님처럼 조금 단호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그녀에게 함께 힘을 내서 걸어가자고 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 주변으로 이미 좋은 친구들이 포진해있었기에 나는 나만 잘 걸으면 됐다.
밖에 있는 테이블이 꽉 차있어서 주벨은 내가 조금 걱정되는 듯 말했다.
“수, 점심을 먹으려면 카페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 테이블 많아. 메뉴도 골라봐.”
“그럴까? 그럼 점심을 간단히 먹고 가야겠다.”
그런데 세미는 안 먹고 가겠단다. 그냥 나 혼자 쉬었다가 가야 하나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블이 대 여섯 개가 놓인 곳에 아까 만났던 한국 여인들이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일찍 도착했는지 이미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 오셨네요. 여기 음식 맛있어요. 저희는 순례자 코스 시켰어요.”
“와우~! 저도 그럴까요?”
그런데 세미가 먹지 않겠다더니, 먼저 가겠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나보고 먹으란다. 자기는 나를 기다린단다.
‘아 부담스러워! 그냥 같이 먹지!’
사실 순례자 코스는 시간이 좀 여유 있게 먹어야 좋다. 그래서 나는 점심때보다 저녁에 먹는 게 좋았다. 한국 여인들이 자신들 음식을 먹어보라는데, 세미를 더는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카페 콘 레체와 크로와상 한 잔 만 하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세미가 그마저도 안 하겠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내가 사준다고 해도 그냥 먹기 싫단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모든 게 다 귀찮은 게 아닌가 싶었다.
뭘 어찌해야 할까 하다가 아직 배가 많이 고픈 때는 아니라, 좀 더 가서 먹든가 하기로 했다. 한국 여인들에게 먼저 간다고 인사를 하고 나와서 밖에 앉은 주벨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왜 안 먹고 가냐는 듯 주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보면 내가 혼나는 줄 알 것 같았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눈알을 크게 뜬다. 기쁘고 슬프고 화난 게 눈알에서 다 표현이 되었다. 그 눈알로 압도된다. 최면에라도 걸린 듯, 돈 있냐? 비번 뭐지? 물으면 알려줄 수도 있을 만큼 강렬하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종종 놓치는 것들이 있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성당과 건축물에 담긴 이야기들, 순례에 관련된 전설들도 놓친다. 이후에 자료를 찾다가 애석해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만큼 다른 것을 경험한 시간으로 여겨야 할 테다.
주벨이 묵은 사리끼에기 마을에는 전설의 샘이 있었다. 이곳 역시 몰라서 지나친 곳이다. 전설 내용은 이러했다.
<거부의 샘>
탈진한 한 순례자가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는다. 신과 성모 마리아와 야고보를 부정하면 샘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례자는 목숨이 긴박한 상황에도 그럴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 싶을 때 야고보가 나타났다. 그를 샘에 데려가 조개껍데기로 물을 마시게 했다. 그 덕에 이 순례자는 산티아고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전설 따라 삼만리다~!
서두르지 않을 거야!
세미나 나나 서두르지 않았다. 앞서 걷는 사람들 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마치 개미들이 줄지어 가듯 작은 오솔길로 된 산길을 따라갔다. 이 지대는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이었다. 주변 나무들 사이로 정말 좁은 산 길이지만 가벼운 코스였다. 돌아보면 넓은 시야가 확보된다. 언덕 위라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평야와 작은 마을들, 내가 걸어온 길이 다 보였다.
돌멩이로 하트 모양을 이룬 작품 옆에 의자가 놓여있었다.
"난 좀 쉬었다 가야겠어. 햇볕에 양말도 좀 말리고 갈게."
"조금만 더 가서 쉬자. 언덕 위까지 가자!"
오늘은 어쩐지 걷는데 참 게으르다. 세미가 졸랐지만 난 그냥 여기서 좀 쉬었다가 가겠노라며 널브러졌다. 세미가 어쩔 수 없는지, 언덕 위로 먼저 가겠노라고 했다. 사실 여기에 나무 그늘 같은 게 있는 게 아니었다. 멀리 언덕 위로 바람개비, 풍력 발전기가 보였고, 저 언덕 위에 뭐가 있는지, 사람들이 떠들썩한 소리도 멀리서 간간히 들리기도 했다. 여하튼 경사진 언덕을 한 호흡에 올라가야 하는 코스라서 일단 좀 퍼지고 싶었다. 왠지 일찍부터 지쳤나?
앞선 사람들이 빠르게 걷고, 결국 또다시 혼자 걷는 길이 되어 버렸다. 세미는 걸음이 빠른 사람이다. 내가 그 발걸음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 같이 걷는 길은 세미가 나를 기다려주어야 가능했다. 내가 빠른 걸음이었다면 내게 선택권이 있겠지만, 느린 걸음이기에 타인을 기다리게 하든가, 죽어라고 쫒아가든가, 그렇지 않으면 홀로 걷는 것이다. 고로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결국, 한 번 만난 인연이 계속 이어지려면 누군가가 자신의 걸음 속도를 늦춰야만 가능한 일이다. 보이지 않게 상대를 위해 애써줘야만 그 발걸음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의 언덕에서
너무 오래 쉬었다. 멍을 때려서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있었다. 이젠 정말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왜 이 언덕이 이토록 엄두가 나질 않은 것일까. 피레네를 오를 때 처음 만났던 언덕처럼, 이 언덕을 주저하며 겁을 먹고 있는 걸까. 오르고 보니, 이곳이 그 유명한 '바람의 언덕'이었다. 사전 정보 없이 오르다 보니, 갑자기 만나게 되는 반가운 만남이었다. 순례길을 한참 가다가 만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며칠 안 되어서 만나게 될 줄이야. 아쉽게도 이 유명한 장소에서 세미랑 같이 사진을 찍지 못했다. 서로에게 기념될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 포토존을 놓쳤다. 세미는 이 언덕에서 저 아래 의자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는 나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갔을 것이다.
왜 언덕을 코앞에 두고 더디게 오르려 했는지! 스스로 살짝 질책했다. 게을러서 그랬다는 결론으로!
‘멍청이! 이런 영혼의 자유가 느껴지는, 바람이 부는 언덕을 놔두고, 저 아래 의자에서 양말을 말리고 있었니!’
혹시라도 세미가 자기를 떼어놓으려고 내가 수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정말이지, 멍해서 그냥 걷기 힘든 날이었는데, 세미도 그런 듯했는데! 오해하지 않겠지! 바람 부는 용서의 언덕에서 세미를 기다리는 게 한 것이 미안했다. 그런데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세미가 가버린 건?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나는 이 용서의 언덕에서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 하나를 더 추가했는지 모르겠다.
이 용서(뻬르 돈)의 언덕은 순례자들에게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가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용서는 사실 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굳이 상대를 찾아가서 전화를 해서 나 너를 용서했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용서를 하는 자가 그간 용서하지 못한 자 때문에 고통스러웠을 테다. 용서를 받지 못한 자를 용서해서 복을 받는 의미 보단 용서를 통해서 나를 가볍게 만들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과정이라고 여겨진다.
용서의 언덕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큰 압도감은 없었다. 1996년 풍력발전기와 함께 세워진 철제 조형물이다. 앞장서 걷는 사람들,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 말을 끌고 가는 사람들, 소년 소녀처럼 자그마한 체구부터 여인네의 머릿결도 보인다. 뒤를 봐주며 걸어오는 사람들과 개와 당나귀! 나름의 예술 혼이 담겼다. 이들은 세찬 바람에 맞서 어디를 향하게 걷고 있는 중일까.
산티아고로 향하는 사람들!
[별들이 바람에 따라 흐르는 길]
산티아고 길은 은하수와 나란히 놓인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산티아고 성인이 잠든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는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는 산티아고, 정식 지명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다. 별 들판의 산티아고라는 뜻이다. 그의 유해를 찾는 데 별들의 안내가 있었다고 하다. 동방박사 얘기에도 나오는 별들,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형물 한쪽에 나무로 만든 표지판에 각국 깃발이 걸려있다. 국기를 보는 일이 생소하진 않은데, 이곳에서는 왠지 다람살라와 다르질링, 차마고도에서 봤던 기도의 깃발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도 바람이 잘 부는 언덕에는 어김없이 염원을 담은 깃발을 걸어두었다.
바람에 전해줄 소원을 담은 그 기도들! 삶의 힘든 고비마다, 바람은 내게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시그널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통해 신에게 전달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을 우린 그렇게 기도로 날려 보낸다. 우리말에서 자연의 바람과, 소원을 담은 바람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샤먼적 요소가 담긴 태생이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아래 염원을 새긴 돌들도 놓여있었다. 철의 십자가에 놓일 돌일 텐데, 먼저 안착한 것일까? 소원을 담은 돌들! 눈썹 하나도 떼고 싶을 만큼 짐이 버겁다는 순례자에게 이 돌들이 주는 의미가 어떠한지는 걸어본 자들만이 알 수 있으리라.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된 9세기부터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산티아고 순례 길은 묵묵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갑자기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떠올랐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다.
윤동주, 그는 범우주적 세계관을 지녔다. 어쩌면 이미 초월적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는 적극적인 독립투사로 이름 날리기보다는 하늘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된다. 세상 아픔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길을 걸은 사람 같다. 그것은 패배 의식이 아니다. 어리석은 원수마저 사랑했던 예수의 마음과 닮았다.
역사 속에, 끝내 상대를 향해 칼을 쓰지 않고, 그저 자신을 먹이로 던져주고 간 존재들을 보면 대립의 각에서 벗어난 차원 밖 사람들로 느껴진다. 붓다가 호랑이 먹이로 자신을 내어줬다는 삶과도 맥을 같이 한다.
원수를 칼로 다스린 자는 어쩌면 그 칼의 위엄을 알기에 날을 세우며 살게 되는지 모르겠다. 쓴 맛을 제대로 못 본 자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우린 무엇으로 그들을 잠재울 수 있을까. 칼인가, 노래인가, 시인가! 그전에 나 자신은 무엇으로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