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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Nov 03. 2020

[산티아고 순례길]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실까?

[6일] #2. 뿌엔떼 라 레이나 가는 길

용서의 언덕에서 얼마간 기념사진을 찍고 짧은 기도도 올렸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부랴부랴 길 떠나는데! 이제부터 내리막 위험 구간이다. 피레네 내리막 구간만큼이나 조심해야 할 구간으로 손꼽힌다. 보기에는 완만해 보이지만 잔돌이 섞인 돌들이 쓸려내려 와 미끄러지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스틱이 있어야 수월한 길, 그나마 날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궂은 날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그나마 내리막 길은 탱크가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었다. 웬 탱크 타령? 혹시 군인이세요? 갑자기 생각났다. 예전 주행 연습할 때 양쪽에 주차된 차 때문에 못 지나간다고 버티자, 강사가 해준 말. "탱크도 지나갑니다. 고고!" 그리고 또 하나 나에게 군인이냐고 묻던 티베트 친구가 있었다. 허름한 어린이 놀이동산에서 총알을 팅콩 팅콩 쏴서 맞히는 게임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가까운 거리에서 쏠 수 있어서 내가 거의 맞혔다. 그러자 놀라서 내게 물었다. "한국에서는 여자도 군대 갔다 와? 너 군인 출신이야?" 이 말에 나도 놀랐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를 못 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아무래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눈에는 내 슈팅 모습이 그럴싸해 보였는지도! 어쨌든 한쪽 눈을 감고 흉내 낸 보람이 있었다.




조심 또 조심, 
내 발목은 소중하니까!


정신을 집중해서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평지가 나왔다. 겨우 긴장을 풀었다. 발목이 다치면 문제가 커지는 것이다. 저만치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사람들이 쉬다가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떴다. 내리막 관문을 끝내고 다른 관문으로 들어서기 전, 호흡을 가다듬고 각오를 다지는 공간 같았다. 나도 얼마간 쉬다가 다음 사람들이 진입할 때 일어섰다. 이제 본격적인 햇빛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너른 평야에 무방비로 햇빛을 다 받아 안고 걸어야 했다. 나무는 몇 백 미터에 하나씩인데, 길 끝쪽에 있어서 일부러 가서 쉬기도 뭐한 위치였다. 걷다 보면 중독된 사람처럼 넋 놓고 걷게 된다. 이렇다 할 멋진 풍경이 펼쳐진 곳이 아니었다. 하늘도 툭 트인 곳도 아니고 그저 길에 나무들이 가끔 마중 나와 아는 척하는 정도뿐이었다. 마치 레이스를 달리는 고독한 마라토너 같다고나 할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했다. 산길을 내려온 속도감 때문인지 평지인데도 발걸음이 빨라진다. 생각 따로 몸 따로,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순례길 햇살은 살에 내리 꽂힌다. 10월의 햇살도 이런데, 태양이 강렬한 시기에는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내가 뭘 하는지, 여긴 어디인지, 내가 누구라는 인식조차 없이 멍 때리며 걷기도 한다. 풍경에 압도되지 못한 채 오로지 걷는 것밖에 할 게 없는 지루하고 볼거리 없는 구간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다른 시기에 오면 볼거리가 달라지려나? 10월 풍경은 황량한 벌판이다. 






우떼르가(Uterga)라는 작은 마을이 나왔다. 19세기에는 고개를 넘어온 모든 순례자들에게 푸짐한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는 쉼터이기도 했단다. 몇몇 순례자들이 한쪽 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도 적당히 앉아서 간식을 먹었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젊은 처자랑 어디를 헤매는지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배가 유난히 볼록해서 살이 쪘다고만 볼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산타 할아버지 이미지가 있었다. 나는 할 일도 없는 차에 저 할아버지가 딸과 여행 중일까, 애인과 여행 중일까, 평소라면 딱히 궁금해하지 않을 장르인데 눈길이 갔다. 어머니와 딸, 아들과 아버지, 딸과 아버지, 아들과 어머니 조합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순례길이었다. 그저 눈인사만 하고 지나오면 되는 거였다.




무루사발(Muruzábal)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무루사발은 포도주로 유명한 마을이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포도주 창고로 쓰였단다. 마을 이름을 딴 유명한 라벨의 포도주가 출시되고 있다는데 그 향이 기가 막힌가 보다. 술에 대해서는 내게 잘 모르지만 어쩐지 아름답고 운치 있는 마을이다. 조용한 마을 한복판, 그늘진 곳에 앉아서 좀 쉬려는데, 여인 둘이 여기저기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급기야 여인 둘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십중팔구, 자기들 사진 좀 찍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며 원 없이 찍어주었다. 그녀들이 "안녕"하고 떠났다. 나도 그만 그늘진 마을에서 벗어나 강렬한 햇살 속으로, 흙길로 접어들어야 했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물이나 좀 마시고 가자 싶었을 때였다. 아까 사라졌던 여인 중 하나가 흙길에서 다시 나타났다.

“왜 다시 돌아와요?”

“스틱에 달린 고무가 빠졌어요. 그거 아까 쉬었던 곳에서 빠뜨린 것 같아요.”

아까 내가 사진 찍어줬던 곳을 말하는 것이다.


마을 안에서는 스틱을 찍는 소리가 실례가 될까 봐 손으로 들고 지나가기도 한다. 스틱을 찍으며 걸었다면 돌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로 고무가 빠진 것을 알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굳이 고무 때문에 다시 왔을까? 나는 스틱을 샀을 때 고무를 버렸다. 고무는 날카로운 스틱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스틱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되니까 필요 없었다. 아마도 틱틱 스틱 찍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고 씌우나 싶었다.  나라면 스틱을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일부러 와서 찾진 않을 것 같았다. 


남의 일인데도 괜히 혼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구시렁거리며 흙길로 들어섰다. 그녀의 친구는 벌써 앞서 걸어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어쩌면 실랑이를 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거 때문에 돌아가서 찾는다고? 찾으려면 너 혼자 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상황도 아닌데, 왜 골치 아프게 끌어와서 생각해보는 건지!




그 많은 순례자들은 어디에? 


분명 화살표는 이 길 뿐인데? 내게 있어, 순례길 미스터리 중 하나가 바로, 아침에 같이 떠난 수많은 사람들을 길 중간에 거의 만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알베르게에 들어서면 와글와글, 식당이나 바에 들어서도 와글와글, 희한하다 싶을 정도였다. 서로 다른 차원의 길로 다니는 건지, 겹쳐지지 않는 길이라도 있는 듯했다. 또한, 어쩌다 보면 앞 뒤로 분명 사람이 없다 싶었는데, 갑자기 "부엔 까미노!" 하며 스쳐 지나가는 통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가 사진 찍으면서 이리저리 돌아볼 때도 그렇고, 중간에 숨어서 생리현상을 해결할만한 곳을 찾을 때도 분명 나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내 곁을 스쳐가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산길이나 숲길이면 안 보여서 그럴 수 있다 치지만 벌판에서 그럴 때는 정말 미스터리였다. 


숲길에서 한참 동안 사람들이 오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재빨리 해결해야 하는데, 혼자 걸을 때는 이게 참 불편하다. 되도록 물을 마시지 않고, 마을이 나올 때까지 참다가 카페에 들어가서 해결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는 게 좋다. 물론 급하면 너무 참아도 안 되지만! 


둘 정도 다닐 때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편한 듯하다. 세미와 걸을 때 세미가 오솔길에서 두 팔을 쫙 벌리고 사람들을 막아 세운 일로 민망한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잠깐만요! 제 친구가 지금 일을 보거든요. 기다려주세요!"

짧은 시간이었기에 망정이지, 큰일이라도 봤다면 어쩔 뻔했는가. 사람들을 다 막아 세운 거 정말 실화냐? 하필이면 왜 이때 몰려왔단 말인가! 나는 얼굴이 벌게져서 할 말을 잃었고, 멈춰 섰던 남자들은 민망한 눈빛으로 슬쩍 웃으며 내 곁을 지나갔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는 눈빛인 건 분명히 알겠고, 세미가 최선을 다한 것도 칭찬받아 마땅한데, 왜 창피함은 나의 몫인가! 


<알아두면 좋아요>

숲길에서 배낭이 생뚱맞게 놓여있다고 해서 주인을 찾아주려고 애쓰지 말자. 어딘가 근거리에서 잠복상태로 골몰할 일이 있는지 모르니까. 그저 모른 척 슬쩍 지나가 주면 된다. 설마 귀중품을 배낭에 두고 길가에 두지는 않을 테니, 짐 지켜주겠다고 옆에서 보초 서지도 말길! 필요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라도 도움을 청해서 짐을 봐달라고 할 수도 있다. 

순례길에서는 서로 이런 불편들을 잘 알기에 아낌없이 도와주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외진 곳으로 들어가지고 말고 적당한 후미진 나무 뒤를 잘 살펴보라. 그곳인 분명 많은 이들이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그럼 안전지대라 여기고 자연과 조우하시길! 

 

여하튼 순례길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 시간, 다 따져봐도 이들이 어디에서 왔다가 가는지! 앞서 따라잡으면 얼마 뒤에 그들이 또 사라진다. 날아서 가지 않는 한 평야에서 그들이 개미처럼 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증발한 것이다. 아마도 걷는 동안 가수면 상태가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명상 중에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세상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 세상은 홀로그램이라는 말, 시간이라는 것은 개념이라는 말,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무를 찾으러 간 그녀도 오지도 않았고, 그녀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간 그녀의 친구도 흔적이 없었다. 물론 내가 늦게, 느리게 걸어서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치지만, 고무를 찾으러 간 그녀는 왜 안 따라오냔 말이다.  




귀족 도시, 오바노스 

오바노스(Obanos)는 나바라 귀족이 살던 마을이란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건축물들이 고급스럽다. 신축건물들도 많은 생긴 것으로 보아 여전히 큰소리 좀 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닌가 싶었다. 역사적, 종교적 유산도 많아서 관광객들에게 흥미를 주는 마을이라는데, '민중과 나라를 위한 자유'라는 기치를 걸고 군주들의 권력을 제한한 곳이기도 하단다. 여름 축제 때에는 '오바노스의 신비' 공연과 함께, 포도주 창고와 전통가옥, 성당을 둘러보며 중세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오바노스의 슬픈 전설>

14세기에 오바노스에 공작의 젊은 남매가 있었다. 딸이 종교적 소명을 받고 나바라의 영지 계곡으로 은둔해 들어가자 오빠가 동생을 데리러 쫓아갔지만 동생이 거부하자 분노심에 동생을 죽였다. 그 후 오빠는 신에게 용서를 구하며 산티아고 순례를 떠났다. 그는 수사가 되어 돌아와 오바노스 근처에서 남은 여생 동안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을 도왔다고 한다. 


오바노스로 들어가기 위한 오르막이 보인다. 흙길이 아니고, 잘 다듬어진 길이다. 한적하고 좁은 길에서도 생생 달리는 차들이 있으니, 한쪽으로 걸어야 했다. 마을에 들어서도 차들 조심, 큰 도로로 갈 때는 각별히 더 조심해야 했다. 순례길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 중, 교통사고들도 있기에!


마을에 들어서서 쉬고 있을 때였다. 아까 봤던 산타 할아버지가 마을로 들어섰다. 나는 그저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그가 오히려 더 반갑게 내게 아는 척을 했다. 아까 봤다며! 함께 있던 처자는 어디 있냐고 묻자, 아까 그 마을에서 묵겠다고 했단다. 자신은 다음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면서! 일행인 줄 알았더니, 길에서 만난 사이였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음흉한 오해를 했는지,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실까? 아마도 그 처자의 숙소를 찾아주느라 분주했던가 보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 맞군요! 넉넉한 미소가 정말 산타 할아버지였다. 



평화로움이 깃들 마을 같았다. 그저 앉아만 있어도 좋았다. 그도 내 옆에서 조용히 쉬다가 너무 한가롭게 있는 나를 문득 이상히 여긴 듯했다.

“여기서 머물 거 아니지? 계속 걸을 거지?”

“네, 오늘 정해진 구간까지 가야죠!”

순례자 사무실에서 준 하루 기준치, 일정표에 일단은 충실히 따라볼 참이었다. 

“그럼 가자! 나도 거기까지 꼭 가야 해. 숙소를 예약해놨어.”

 아까도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일정표대로 움직일 줄 알고 같이 여유를 부리다가 뒤통수를 맞은 게 아니었을까? 여하튼 내가 할아버지 걸음 속도 정도는 맞춰서 걸을 수 있지 않겠나 싶어서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햇빛이 강하면 물을 더 마시게 된다. 산타 할아버지는 건강 문제로 배가 볼록한 듯한데, 모습은 귀염둥이 포스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고, 은퇴를 하고 온 길인데, 이번에는 일정구간만 걷다가 돌아가야만 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여기 오기도 쉽지 않잖아요. 그냥 다 끝내고 가시지 왜 중간에 가세요?”

물론 내 기준이다. 비행기 값 아까우니까 한 번에 뽕을 뽑으시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미국 안 가봐서 바보 같은 소리를 한 거였다. 우리보다 오른쪽에 있어서 우리를 거쳐서 왼쪽 유럽으로 건너간다고 생각한 거였다. 그래서 우리보다 더 멀리서 온 거라고! 참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미국은 우리보다 가까운데 거리였다. 가깝게는 미국 동부에서 유럽은 5시간이면 간단다. 여하튼 대륙이 달라서 멀다가 느끼다니!  

그가 하얀 수염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아들 생일이라, 가족들이 모두 모여! 다음에 또 와서 이어서 하면 돼!” 


아, 미국 문화는 특히 가족을 강조하는 문화지! 영화를 보면 대부분 네가 아무리 큰 일을 해도 가족을 잊어서는 안 돼! 그게 주된 내용이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가족 중심 사고를 하지만 우리가 클 때만 해도 이건 억지로 조성한 미국식 분위기라고 여겼다. 이질감 같은 것도 느꼈다. 가령 독립운동가들이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려고 했다면 나서서 싸웠겠는가. 나라에 큰 일을 하신 분들이 대부분 가족에게는 냉정하게 대하고 때론 몹쓸 사람으로 원망을 사기도 하지 않았던가. 가슴 깊이 뜨거운 사랑이 있다한들 자신의 배우자와 자식들에게 그걸 표하지 않았던 문화였다. 사랑은 가슴 깊이 품는 것이라 여겼다. 지금처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아마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을까? 이렇게 언급하니, 내가 마치 도시락 폭탄을 손수 손수건으로 싸주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 옛말 사람 같다.

여하튼 가족애라는 것이 요즘에는 당연하게 여겨져서인지, 나도 배낭여행을 하면서도 -일부러 꼭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명절만큼은 돌아와서 지냈던 것 같다. 요새는 가족애를 빙자한 가족 이기주의 인간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지만 말이다. 뭐든지 적당히 좀 하면 좋겠다. 그냥 가족을 사랑만 하자. 제발, 집착 말고!



산타 할아버지는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늘 떠올렸던 산타 클로스에 맞는 외모였다. 이렇게 늙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어도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면서도 부드럽고 친절한 미소와 말투를 지닌 노인, 그야말로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눈망울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드디어, 뿌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야호!

산타 할아버지는 마을 입구에 있는 알베르게 앞에 섰다.

“여기가 오늘 내가 묵을 알베르게야! 그대가 말한 숙소는 더 안 쪽으로 들어가야 할 거야.”

“네, 맞아요. 더 가야 해요. 친구들은 이미 도착했을 거예요..”

“아, 가기 전에 내가 뭘 좀 부탁해도 될까? 여기 가게에서 뭘 사려는데 같이 좀 봐줄 수 있어?”

숙소 바로 옆에 등산복 용품 가게가 있었다. 이런 쪽으로 잘 알지 못하는데 내게 도움을 청하다니! 아마도 내 또래 자녀들을 위해서 확인받고 싶은 물건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기꺼이 그러 마, 하고 가게에 들어섰다.


산타 할아버지는 가게에 들어서면서 곧장 점원에게 가서 뭔가를 말했다. 점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구니 하나를 내밀었다. 뭔 바 구니지? 나는 가까이 가서 들여다봤다. 앗, 이럴 수가! 스틱에 끼는 고무들이 바구니에 가득 들어있었다. 아까 한 여인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고무인 것이다. 이상했다. 아까 그 고무를 찾으러 나설 때 산타 할아버지는 없었다. 동시성? 하나가 언급되면 관련된 것들이 줄줄이 오는 것? 내가 여기서 뭘 배워야 하는 거지? 난 스틱 고무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왜 그 여인네가 찾으러 간 스틱 고무를 산타 할아버지도 사겠다는 거지! 왜?  혹시 이 동네에서 이 스틱 고무가 유명한가? 생각은 이러했지만 그저 조용히 지켜보았다.  가족들을 위한 선물 치고 모양이 안 나오는 것 같은데, 혹시 산타 할아버지가 필요했나?


두 개의 바구니! 하나는 저렴하고, 하나는 조금 비쌌다. 나라면 둘 다 안 살 가격이었다. 그거 하나면 밥 한 끼를 더 사 먹고 말겠다. 산타 할아버지는 고민 없이 비싼 스틱 고무를 선택했다. 그것도 두 개나! 내가 굳이 들어올 필요도 없었다 싶을 때였다. 값을 지불하고 건네받은 스틱 고무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왓?’이었다! 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틱에 고무를 껴야 시멘트 바닥이나 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아!”

아, 감동이었다. 내 스틱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던 거였구나! 서양 사람들이 아무한테나 선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버지 같은 미소를 가지고 상대가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는 마음, 정작 나는 필요 없다고 버린 것인데, 아니, 필요성을 몰랐던 것이다. 그가 지혜롭게 내게 알려준 것이리라. 


솔직히 고마웠지만 부담스럽기도 했다. 처음 본 내게 왜 선물을 해주시는지, 물을 수는 없었다. 설마 스틱 고무로 내게 수작이라도 걸려는 걸까? 차라리 밥을 먹자, 술을 먹자, 했겠지! 헤어지는 마당에 선물을 줬을까! 꽃도 뭐도 아닌 스틱 고무인데! 나는 그의 선물을 기꺼이 받으며 부담을 줄이기 위해 그에게 식사를 사겠노라 했지만, 그는 한사코 피곤해서 그냥 숙소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커피도, 술도 안 마시는 그에게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혹시 다음에 만나면 밥을 먹자든가, 뭐 그렇게 수작을 거시는 건 아니겠지? 이런 사악한 메시지와 함께, 왜 순수한 마음을 못 받는 거니? 왜! 하는 외침도 들렸다. 산타 할아버지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한 줄 아실까 몰라.


내일 아침에 출발할 때 내 친구들과 같이 가자고 하니까, 그가 그러자며 내게 페이스북 주소를 알려줬다. 그런데 내 폰이 데이터 문제로 연결이 안 되었다. 그래서 왓츠앱으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가 이따가 연락하자며 안녕을 고했다. 분명 내가 그의 연락처를 물었다. 내가 밥을 사겠다며 질척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의 연락처가 없어졌다. 내가 저장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세미와 저녁에 그 알베르게까지 가서 서성이다가 돌아왔다. 산타 할아버지가 내 연락처를 가지고 있으니 연락을 해올 거라며 내일 일찍 이곳으로 다시 와보자고 했다. 오늘은 힘들다고 했으니, 그냥 두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내일 아침에 가다가 만나겠지 뭐! 길목에서 차라도 마시면 되니까. 세미도 산타 할아버지가 내게 선물한 것을 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라 하자, 세미도 산타 할아버지가 호의를 베푼 것 같다고 했다. 




론세스 이후로 공립에 거의 못 갔다. 나나 세미처럼 느리게 걷는 사람들은 공립을 차지하기 힘들다. 지금은 비수기라도 순례자들이 없지는 않으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좋은 침대는 차지하는 것이다. 느린 자들은 선택권이 거의 없다. 이제 얼마간 사설을 이용했으니, 본격적으로 공립 알베르게로 진입해야 했다. 사설은 오늘까지만 두려야겠다. 이곳은 이케아 모델관 같은 깔끔하고 예쁜 로비가 있었다. 아침 식사 포함해서 이런 깨끗한 숙소에 묵게 되니 그다지 비싼 편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빰쁠로나 숙소 주인장에게 예약을 부탁했더니 마련해준 곳이었다. 

 


슈퍼에 들러서 이것저것 샀다. 며칠 더 묵으면 좋을 성싶은 곳이었지만 이미 빰쁠로나에서 이틀을 묵었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슈퍼에서 요플레랑 콜라랑 과일과 빵을 사고 숙소로 오면서 저녁식사는 바로 옆 괜찮은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화장실 옆으로 안내된 자리였지만, 메뉴만큼은 옆 테이블이랑 똑같은 거 달라고 했다.  물 대신 콜라는 안 되겠니? 물으니 안 된다고 했다. 세미가 나를 위해 슈퍼에서 사 온 콜라를 몰래 잔에 부어 주었다. 우리 그들 사각지대에 앉아있고, 바 안에 사람이 아주 많다는 환경을 이용해서!

후식은 뭐 먹겠냐고 해서 과일을 시켰더니,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비주얼로 과일이 나왔다. 접시에 사과 한 알이 딱! 올려져 나왔다. 와인이 병 째 나올 때보다 놀라웠다. 우린 그 사과를 내일 아침에 먹자며 따로 챙겼다. 



숙소에서 세미와 같은 나라에서 온 대만 여인을 만났다. 젊고 씩씩한 여인은 반가운 인사만 했을 뿐 새벽에 일찍 떠나는 바람에 또 만날 수 없었다. 세미가 받은 메시지에서 그녀의 소식을 들었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를 그녀는 하루 만에 갔다. 그녀는 정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끔 40킬로니 50킬로니 갔다는 사람들의 인증 메시지를 볼 때면 대단하다는 경외감을 넘어 사람이 아닐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그들과 달리 세미와 나는 아주 느리고 느린 사람들이었다. 우린 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에게 우릴 소개할 때 ‘달팽이 자매’라고 했다. 다들 납득이 가는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단 말이지!




순례길에서는 변수가 있다.


다음 날, 세미는 도저히 걸을 수 없다며 쉬엄쉬엄 가겠다고 했다. 이곳에 더 머물겠다는 말인가 싶었다. 고민하던 그녀가 내린 결론은 버스를 타고 에스텔라에 먼저 가겠다는 것이다. 나와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뻤지만, 차라리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나중에 다시 까미노에 왔을 때 이어서 걷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상사에게 장기간 휴가를 얻어서 온 직장인이었다.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야 했다. 세미도 버스 시간 때문에 나와 같은 시간에 숙소에서 나가야 했다. 


짐을 늦게 싸다가 보니까 제일 마지막에 남게 되었다. 아, 오늘도 동키를 보낼 참이었는데 시간이 늦어버렸다. 늦어도 8시에는 정해진 공간에 두어야 하는데, 세미랑 아침 먹으면서 수다를 떨다가 8시 반이 넘었다. 어제 내 배낭에 먹을 것을 잔뜩 넣어놓고 동키를 보내려고 마음먹었다. 큰 슈퍼가 있는 곳에서 물건을 사면 고민이 된다. 이걸 하루에 먹긴 많고 안 사자니 아깝고 그런 상태. 그래서 동키를 보내면 배낭에 넣어놓으면 되지 않겠냐는 꼼수! 그런데 시간이 지나버린 것이다. 낭패였다. 세미가 이 짐을 버스로 가져갈 수도 없었다. 다리도 아픈 사람이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서 내려서 숙소까지도 걸어야 할 게 뻔한데, 남의 배낭까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럼 간식을 버려야지?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 꾸역꾸역 짐을 다시 싸 보았다. 곧 죽어도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판이었다. 평소 무게도 무거워서 동키로 보내던 구간들이었는데, 아, 욕심이 화를 부른다더니! 그런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누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례자들이 친구들을 찾나? 주인장을 찾나? 근데 문이 잠겼을 텐데? 숙소 안에는 우리만 남았었는데? 주인장도 없었고? 그런데 이게 뭐지? 동키 아저씨다. 아저씨가 나를 찾고 있었다. 엥? 이게 무슨 일? 아저씨가 나를 어찌 알고? 어제 여기로 내 동키를 보내서 내가 다시 동키를 보낼 걸로 알고 왔단다. 일부러 여길 들렀단다. 작은 곳이나 비수기 때는 일일이 숙소 주인장이나 본인이 동키 회사에 전화를 해야 하지만, 성수기 때나 큰 알베르게는 하루마다 들린다고 했다. 시간은 다행히 이 숙소가 막바지에 들리는 구간이었다. 당연히 있을 거라고 여기고 내 배낭을 찾으러 2층까지 올라왔다. 아저씨 말로는 짊어지고 다니기에 너무 무거워서 분명히 또 동키로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다행이었다. 너무 고마웠다. 내가 짐을 막 다 싸는 바람에 동키에 어느 숙소로 갈지도 썼는데, 세미가 아저씨에게 주소를 보여주자 알았다며 동키 봉투에 돈만 넣고 꼬깃꼬깃 구겨서 내 배낭에 표시해뒀다. 자기가 알고 있으니까 그리로 보내겠단다. 확실한 믿음! 아, 놀랍고도 고마웠다.



짧은 안녕!


숙소에서 나왔다. 세미는 버스를 타러 조금 걸어야 했다. 곧 만날 텐데도 아쉬워했다. 사실 어제처럼 중간에 혼자 걸었어도 앞에 친구가 걸어간다고 생각하니 든든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예 혼자 걸어가야 한다니, 괜히 쓸쓸했다. 아예 이별도 아닌데 그녀도 나도 서로 정이 금방 들었던 모양이다. 그녀와 요란한 이별식으로 손을 마구 흔들며 에스텔라 숙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아침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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