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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날개 Nov 06. 2020

[산티아고 순례길] 나와 동행? 사람도 개도 걷는 길

[7일] #1.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에스떼야(Estella) 가는 길



<순례길 지명을 다 알려고 하지 말자>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에스떼야 가는 길, 사실 Estella를 '에스떼야'로 발음해야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는 순례자들끼리는 '에스텔라'라고 발음했다. 이것도 양반이다. 일정표대로 가면 됐지, 거기가 어딘지 별로 중요하게 않았다. 어디까지 간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은 그저 오늘 일정표 대로 '그곳'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세미와 내가 "에스텔라에서 만나!"라고 했지만, 그곳이 '에스떼야'라고 해서 '어머, 큰 일이네, 지명을 잘못 말해서 못 만나겠어!'라고 염려하진 않는 것이다. '뿌엔떼 라 레이나'도 '푸엔테 라 레이나'로 표기되기도 한다. 사실 생소한 지명, 그것도 긴 지명을, 발음도 영 생소한 상태로 외우기가 힘들다.

대부분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거나 답할 때 눈알을 하늘로 치켜뜬 채 갸우뚱, 버퍼링 시간을 갖는다. 아예 오류, 몰라, 뭐 그런 반응들도 있었다. 굵직한 지명도 이러한데 거쳐오는 자잘한 마을 이름을 어찌 다 외운단 말인가. 그래서 부유 상태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지명을 제대로 몰라서 길을 잃지는 않는다. 일정표와 화살표만 있으면 된다. 굳이 구글 지도 없어도 된다. 다만, 정신 똑바로 챙기지 않으면 여차해서 화살표 못 보고 지나칠 길도 있다는 것! 그럴 때는 그야말로 구글 지도와 함께, 왔던 길 다시 돌아가는 수고가 필요하다.


마녜루(Mañeru)라는 고풍스럽고 고요한 마을을 지났다. 고대 로마인들이 정착했던 마을이었다는데, 그래서인지, 집들의 규모가 좀 있었다. 흔히 우리나라 부잣집 씬에 등장하는 그런 모양새다. 집 앞에 가문의 문장들도 새겨져 있다는데, 건성으로 지나쳤다. 로즈 와인으로 유명해서 포도주 저장고를 방문하고, 전통 수프도 맛보길 권하는 곳이었다. 아직은 퍼지지 말자 싶어서 그냥 지나쳤다.





때론 홀로 걷는 게 좋을 수 있다.


여태 혼자 잘 걸어왔다 싶은 시간들인데, 오늘은 어째 심심하고 지친다. 산길, 숲길, 오르막, 내리막, 너른 길, 평탄한 길, 모두 거쳐가는 동안 햇빛이 너무 강해서 더 힘들다. 오늘따라 오르막, 내리막이 자주 등장했다. 산길을 헉헉 대고 오를 때였다. 젊은 남녀가 오르막 막바지에서 쉬면서 인사를 건넸다.

“어! 부엔 까미노! 오늘 길은 쉬운 길인데, 산길 오르막은 역시 힘드네!”

“맞아. 우리도 지쳐서 좀 쉬다가 가려고! 부엔 까미노!”

참 잘 생긴 젊은이들이구만!



한참 오르막을 오르고 난 뒤라 평지가 참 평화롭게 느껴졌다. 탁 트인 공간에 놓이니 터벅터벅 걸음도 더뎠다. 그때, 청년 하나가 내게 다가와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짐이 배낭아 아니고, 가벼워 보였다.

"어디에서 출발하셨어요? 어디로 가시는 중이세요?"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다. 하나씩 물어도 대답하는데 시간이 걸릴 텐데, 한꺼번에 묻다니! 나는 애써 기억해서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는지 대답해주었다. 사실 그는 그게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계속 웃는 얼굴로 나와 대화를 시도했다. 어쩌다 보니, 오래전 영어회화 연습을 위해 내게 다가와 대화를 시도하던 인도 학생들 같았다. 골라도 잘못 골랐지, 나보다 유창한 발음으로 영화회화를 시도하던 녀석들! 외국인이 드문 곳이어서 그런지, 공원을 둘러볼 틈도 없이 따라와 급기야, "나 영어 못한다. 니들이 더 잘하니까! 제발 가라!"라고 말했던 일! 결국 연예인급 인증숏을 찍고서야 물러난 그들이었다. 그때만 해도 배낭여행에서 흔히 겪는 일이었다.


청년은 스페인 사람이었다. 그와 천천히 걸으며 오늘의 날씨부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한참 동안 주고받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저 뒤에서 예쁜 여인 하나가 졸래졸래 따라왔다. 그제야 익숙한 그림이 떠올랐다. 아까 오르막에서 인사를 주고받았던 그 커플이지 싶었다. 일단 서양 사람들 얼굴은 다 비슷해서 기억 못 하는 것도 있고, 힘들어서 사람을 대충 보고 인사를 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두 사람에서 한 사람이 되니, 아예 연관을 짓지 못했던 거였다.


“아, 이제 생각났어요. 아까 오르막에서 나랑 인사 나눈 커플이군요? 왜 여자 친구랑 걷지 않아요?”

“다른 일행들도 있어서요.”

보니, 그녀의 뒤로 많은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오! 관광객이었군요! 어쩐지 가벼운 복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제야 청년은 수줍게 웃었다.

“저는 지금 여자 친구 가족과 여행 중이에요.”

“여자 친구 가족이랑 요?”


그러고 보니, 무리들이 가족 구성원으로 보였다. 그들은 내게 호의적인 미소로 인사를 보냈다. 여자 친구는 여전히 멀찍이 나와 남자 친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싸웠나? 싶은 마음도 들고, 어째 여자 친구 가족들이 마냥 좋게만 볼까 싶어서 적당히 인사를 하고 앞서 가려고 했지만, 내 걸음 속도! 평지라서 그나마 빠르게 걷는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을 젖히고 앞장서 걷지는 못하는 것이다.


청년의 표정을 보아하니, 여자 친구의 가족들이 마냥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서양 사람들은 이런 관계들에 별 스스럼없을 거라 생각이었는데, 조심스러운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이들은 스페인 사람들인데, 모두 인물이 훤하고 성격도 좋았다. 청년이 나와 얘기하는 동안에 표정이 밝았다. 외국 친구와 얘기를 나누는 게 좋아서인지, 여자 친구 가족과 내내 붙어다니다가 해방감을 느껴서인지! 가족과 붙어있는 여자 친구 대신 한참 동안 나와 동행을 원하는 듯했다.



저 멀리 마을이 보였다. 연금술사에 나오는 표지그림처럼 지팡이를 짚고 서서 저 먼 마을을 지극히 바라보게 되었다. 마치 중세 순례자들이 이런 포스로 길을 나서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먼 마을을 두고 사진을 여러 컷 찍자, 청년이 내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참 무던하고 진정성 있는 표정이다. 나름 메이디인 한국 포즈로 청년과 나란히 섰다. 가족 중 중년 여인이 나서서 사진을 찍어줬다. 내 폰으로도 부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장모 될 사람이란다. 여자 친구가 곁에서 멀뚱히 바라보고 있길래 들어와서 같이 찍자니까, 청년과 먼저 찍으면 자기가 찍겠단다. 그리고 나와 함께 선 그녀가 진심으로 방긋 웃으며 속삭였다.

“고마워요!”

뜻밖의 말이었다.

“내가 더 고맙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자 친구를 졸졸 쫒아오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거리를 두고 오길래, 그냥 말도 못 건네고 왔는데! 여자 친구는 지금 남자 친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정말 착하고 예쁜 남녀였다. 다투었든 뭐든, 귀여운 사랑싸움일 듯!


어쨌든 청년의 여자 친구도 좋은 사람인 게 분명했다. 보통 남자 친구와 말만 해도 눈이 찢어지게 삐치는 여자들도 많다. 신경 쓰일 정도의 대상이 아니어서 그런가? 뭐가 됐든 반가워하지 않는 여자들도 많다. 아무래도 그녀의 부모들이 성격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 건지, 동양계 순례자를 처음 본 건지, 청년의 장인 될 사람까지 나와 사진 찍자며 포즈를 취하는 걸 보면 이들이 얼마나 순박한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다.


얼마간 그들 가족들과 걷다 보니 드디어 멀게만 보이던 마을이 가까워졌다. 청년에게 감사를 전하며 나는 다시 나만의 까미노를 걸었다. 가족들도 진심으로 나를 응원하며 손도 흔들어 줬다.  





쉬면서 할 수 여러 가지 것들


시라우끼(Cirauqui)라는 마을로 들어왔다. 계속 오르막이다. 우리나라 산동네처럼 경사로에 집이며 카페들이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올라가야만 이어 갈 수 있는 길인데, 급경사라 다리에 힘을 주고 걸어야 했다. 언덕으로 조금 올라가면 사람들이 쉬는 바가 있었다. 경사진 곳에 야외 테이블도 놓여 있었다. 여기서 쉴까 하다가 오르막을 남기고 쉬는 게 과연 제대로 쉬는 건가 싶어서 다시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이것도 나름의 선택일 것이다. 충전을 하고 수월하게 오르막을 올라도 되는데 말이다.


마을을 좀 더 올라가자 성문처럼 생긴 건물 입구에 앉을 공간이 있었다. 건물 안에 바로 화장실도 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입구에서 쉬고 있었다.  커피 마실 카페는 이 언덕 꼭대기에는 없었던 것이다. 일단 나도 여기에서 좀 쉬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한가해서인지, 아까부터 짐을 풀고 발바닥을 손질하는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별다른 말없이 인사만 건넸다. 나도 양말이나 말리고 갈까 생각했는데, 그늘진 건물이라 간식이나 먹고 가지 싶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보니, 건물 계단 위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아무래도 공립 기관 같았다.  


얼마 뒤, 아까 만난 스페인 가족들이 나타났다. 쉬엄쉬엄 점심까지 먹고 올 거다 생각했는데! 그들이 내게 여기에서 ‘세요’를 찍으라고 했다. 돌아보니, 화장실 옆에 도장 찍는 테이블이 있었다. 순례자 여권을 꺼내서 꾹 찍었다. 여기는 ‘시라우끼 시청’이었던 것!


스페인 가족 외에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던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왔다. 왜 갑자기 북적이는 거지? 내 옆에 있던 여인도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발가락마다 테이핑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양말을 신었다. 역시 까미노 순례길에서는 발이 문제였다. 발만 문제없다면 아무리 더디 걸어도 순례를 마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녀는 몸을 돌려 머리를 벽에 기댔다. 시끄러운 틈에도 잠시 기절각이었다. 발 문제로 생각이 복잡한 건지 모르겠다. 대각선에 앉은 또 다른 여인은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었다. 나 역시 배낭에서 간식을 꺼냈다. 화장실 앞이면 어떠랴, 그늘진 건물 앞이라 시원해서 살 것 같은데!


모처럼 시간대가 맞아서 영상 통화를 시도했다. 아버지, 어머니, 큰 오빠, 작은 오빠, 언니, 원년 멤버 중심으로 차례로 버튼을 눌렀다. 물론 한꺼번에 다 연락하는 게 아니었다. 그날 받는 사람이 당첨자다. 내 소식을 가족들에게 2차로 퍼 날라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먼 이국에서 실시간으로 영상 통화를 한다는 건 비행기가 하늘에 뜨는 것만큼 신기하다. 불과 10여 년 전, 외국에 나가면 컴퓨터 앞에나 앉아야 영상이 가능했다. 그것도 현지 사정에 따라 레고 블록 깨지듯 혹은 랩틸리언 눈처럼 뒤집어진 채 멈추기 일쑤였다. 우리나라만큼 성능 좋고 빠른 인터넷이 어디 있던가? 인도도 나름 수준 있는 환경이었지만, 우리나라가 최고였다. 요새는 휴대전화로 여행지에서 영상을 보여주며 통화를 한다. 데이터만 넉넉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다만 한국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타이밍을 맞춰서 통화하는 게 관건이었다. 이날의 당첨자는 부모님! 몇 번 같은 통화를 하다 보니, 계속 멘트가 똑같다. 사실 멀리 떨어졌다고 특별히 야단스레 전할 뉴스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무사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희소식이 아니겠는가.



달팽이보다 느린 생명체


한참 가다 보니 도로 위로 넘어가는 대교가 나왔다. 열심히 걸었는데 아까 구글이 말해준 킬로 수보다 더 멀어진 표시였다. 뭐지? 대교 끝 표지판 앞에서 기웃거릴 때, 한 남자가 무거운 배낭을 낑낑 메고 천천히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아, 피레네를 넘어올 때 이동 간식차에서 만났던 남자다. 그와 마주쳤을 때 그도 나도 반갑다고 말만 했지, 햇빛을 머리로 들이받고 있는 중이라 찡그린 채 애써 웃고 있는 표정이었다.

“부엔 까미노!”

“어! 부엔 까미노!”

그는 살짝 지친 얼굴이었다.

“아까 구글 지도에서 알려준 거리보다 이 표지판이 왜 더 멀게 표시되어있을까?”

모자를 썼지만 그의 얼굴은 햇빛 화살에 내리 꽂히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인가 봐. 구글맵에서 보여준 길은 직선거리로 계산하는 것 같아.”

“아, 그래? 가도 가도 끝이 없네. 오늘 길은 더 힘들게 느껴져!”

“맞아. 나도 오늘은 좀 지친다.”


이제 또 언덕길이다. 그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언덕은 그야말로 물속 걸음처럼 천천히 올라야 했다. 100여 미터 뒤처져 걷던 내가 멈춰 섰다. 앞서 걷던 그가 언덕 중간에 지팡이를 짚고 멈춰 섰기 때문이다. 잠시 호흡을 고르는 중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나만큼 느린 속도로 올라가는 그였지만 나는 그를 추월할 의사가 없었다. 그가 멈추면 그대로 일정 거리에서 나도 멈췄다. 마치 1차선 도로 위 자동차처럼! 그를 보며 달팽이보다 더 느린 생명체도 있다는 걸 알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달팽이가 앞서 가야 하는 날도 있다.


“먼저 갈게!”

“그래, 나는 여기서 좀 쉬다가 갈게!”

몇 킬로 뒤쫓아가다가 그의 패턴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어디든 빈 터만 있으면 쉬었다. 나랑 비슷했다. 조금 힘들다 싶으면 일단 쉬어준다. 그래서인지 순례길 내내 그와 자주 마주쳤다. 일정표대로 가는 거야, 보통 그렇다고 치지만, 걷는 속도나 포인트도 비슷했다. 그의 체력이 유난히 달리는 건지, 배낭이 무거운 건지, 그는 걸을 때마다 힘이 빠진 듯 휘청거렸다. 그리고 이상한 느낌이지만, 그가 혹시 수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순례길 중반에 느꼈다. 유럽 만화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살짝 벗어진 머리에 해맑게 웃는 모습! 어디에서도 남자 냄새 풍기지 않고 사람을 정성껏 대해주는 모습! 그와 나는 절대 일행으로 움직이지 않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긴개긴으로 꾸준히 경주하며 가게 됐다.





개를 진짜 사랑하려면


다시 비포장 도로를 걷는다. 작은 쉼터가 있다. 뭐라도 사 먹으며 ‘세요’를 찍으라는 곳이다. 바로 전에 잠시 쉬었다가 걷기 시작해서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그런데 앞에 강아지와 남녀 커플이 걸어가고 있지 않은가? 전에 피레네에서 봤던 그 강아지와 주인장인가 싶었다. 여자는 길 중간에 만난 건가? 개가 예뻐서 동행하는 것일 수 있었다. 그런데 남자 얼굴은 기억 안 난다 치지만 개가 달랐다. 또 다른 개였다. 이들은 집시 커플이었다. 배낭 뒤에 텐트와 깔개로 추정되는 것들이 잔뜩 실려있었다. 이곳은 좁은 수풀 길이라 다른 길은 없었다. 나는 그들을 쫒아서 걸었다. 개 걸음이라 사람보다 느린 건지, 내가 따라잡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개가 너무 예쁜데, 사진 찍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들은 멈춰 섰다. 나는 개를 찍고, 얼른 셀카 모드로 개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피레네에서도 개와 사진을 찍었을 때 느꼈지만, 이들은 이골이 났는지, 그냥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집시 커플도 나 같은 사람이 많았는지 그 뒤로도 천천히 걸어주며 타이밍을 맞춰주었다. 고마운일이었지만, 내가 수고로움을 더한 것 같아 미안했다.




순례자와 개, 아니, 순례자와 순례견! 주인과 함께 순례길을 걷는 개들을 보면 묘한 감정이 떠오른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멋진 길을 개와 함께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이 고된 길을 인간의 욕심 때문에 걷게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루 20킬로 일정대로 간다면 사람도 힘들 텐데, 개는 오죽할까, 싶은 것이다.


실제로 개는 매일 10킬로 이상 걸으면 무리가 된다고 한다. 15킬로까지는 어찌어찌 가더라도 매일 20킬로 넘게 걸으면 위태로워진단다. 어쩔 수 없이 주인 따라 죽어라 걷긴 하지만 가능한 정도가 아니란다. 그저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걷는 것이다. 결국 중간에 피로에 절어서 쓰러지거나, 탈이 나서 순례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단다. 죽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고 보니, 개를 정말 사랑한다면 무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개의 입장에서 천천히 걷든가, 단거리만 가면 어떨지 모르겠다. 녀석들의 음식은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없단다. 그래서 자기들이 짊어지고 걷는 건데, 녀석들이 멘 배낭 무게도 상당해 보였다. 실제로 내가 이 집시들의 개를 순례 중반에 봤을 때, 초입 때와 달리 녀석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머리 댈 데만 있으면 기절하듯 잠을 잤다. 솔직히 안쓰러웠다. 그들 말로는 개 때문에 어딜 들어가지 못해서인지 야외 텐트에서 자느라 샤워도 못한다고 했다. 개뿐만 아니라 그들도 초췌해 보였다. 나중에 그들이 알려줬는데, 이들 집시는 SNS에서 유명했다. 개 때문에 사람들이 더 환호하는지 모르겠다. 집시 커플이 자연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것은 좋지만 개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집시의 삶, 현대 집시들은 선택이겠지만, 멋져 보이긴 했다. 부디 건강하게 순례를 마치길 빌어볼 뿐이었다.  



작은 차도를 건너는데, 갈림길이 나왔다. 사람도 차도 없고, 화살표도 없다. 도로가 여러 방향으로 갈려서 헷갈렸다. 일단 건너서 기웃거리는데, 저 아래 냇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내려가 보니 도로 아래 작은 냇가에 아까 그 집시 커플이 있었다. 옷을 입은 채 물속에서 서로 껴안고 장난치고 소리 지르면서 개구쟁이처럼 물장구를 치고 놀고 있었다. 양말도 좀 말려야지 싶어서 냇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앉았다. 그들이 행여 수풀이 살짝 가린 틈으로 야한 짓이라도 할까 싶어서 얼른 발만 담갔다가 떨어져서 앉았다. 그때 짐을 푼 개도 왔다 갔다 했다. 주인장들 보다 더 좋아라 뛰면서 이리저리 돌아보며 주인장들을 지키고 있었다. 행여 누가 다가와 주인장 배낭이라도 가져가면 달려들 수 있었다. 나는 관심 밖이었는지, 신경도 안 썼다. 자연과 함께 사는 집시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다큐멘터리로 보고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그들 놀이터에서 내가 빨리 사라져 줘야지 싶었다. 물기를 닦고 다시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등산화를 신고 있을 때였다. 그들이 마침내 물속에서 나와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 보니 참 스스럼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막 신나게 반가워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친구가 될 여지가 보였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등산화 끈을 조이고, 대략 가야 할 방향을 그들과 잠시 얘기 나누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대로 이 길로 쭉 가면 길이 나올 거라고 했다. 이들은 한참 더 놀다가 길을 나설 거였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서는데, 지나가던 다른 여행자들이 서성이며 내게 길을 물었다. 자매 커플이었다. 나는 집시 커플에게 들은 대로 말을 전하며 발걸음 뗐다, 지도 어플을 한참 들여다보던 자매들은 내 뒤를 따라왔다. 그들은 걷는 동안 잠시 몇 마디만 하고 진지하게 걷기만 했다. 언니라는 사람이 동생은 지금 다리가 아파서 억지로 걷는 중이라고 말했다. 북유럽 어디에서 했는데, 까먹었다. 어쨌든 그들의 힘겨운 여정을 나도 고스란히 느껴서인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걸으며 멀찍이서 기다리곤 했다. 외진 길이라 사람이 없어서 행여 다리가 아파서 더 못 걷는다고 하면 언니 혼자 감당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한 편으로 나도 힘든데 누굴 도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몸이 힘들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한참 동안 쉬면서 오느라 내 속도보다 더 느렸다. 도로 아래쪽으로 이어진 길로 들어서 터널이 나오고, 다리 밑도 지났다. 조금 외진 길이었다. 혼자 보다는 누군가 함께 길을 걸으니, 외롭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도로로 나가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위치였다. 얼마간 걷다가 마을이 얼마 안 남았을 때였다. 그들이 그나마 잘 걸어오는 걸 보고 아무래도 속도를 내야지 싶었다. 힘들면 마을에서 쉬든가 도움을 받겠지 싶어서 적당히 사라져도 될 지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멀리서 인사를 건네고 속도를 냈다.





무언가를 정리하지 못한다면


비야뚜에르따(Villatuerta)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카페를 들어갈까 하다가 마을이 너무 평화로워서 길 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이제 작은 길을 건너면 다시 흙길로 가야 한다. 앉은자리에서 어제 슈퍼에서 샀던 요플레와 바나나, 빵과 과자를 다 먹어치웠다. 날이 좋으니 야외에서 먹기 좋았다. 물론 햇빛 직빵은 따갑다. 적당한 그늘에서 쉬는 게 중요했다. 그때 귀염둥이 산타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나는 그를 급격히 반겼다.

“안녕하세요! 어제 연락 기다렸는데!”
 “했어. 문자 보냈는데?”

“어? 전 못 받았는데요?”

역시 내 폰이 말썽이었다. 데이터 아끼느라 낮에는 잠깐씩 켜고 와이파이 존에서 쓰는데, 폰 안에 용량이 다 찬 게 문제였나 보다. 클라우드에 옮겨야 하는데 숙소에서 와이파이를 쓰면 모두 써서 그런지, 속도가 느리고도 느렸다. 계속 사진을 다 옮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찍은 사진만 간신히 올리고, 지우면서 쓰고 있었다. 거기다가 다른 기능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내게 보낸 문자가 한 바닥이나 됐다.

“아 정말 미안해요.”

내 폰 상태를 말하고 확인시켜주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게으른 인간! 뭐 이랬을지는 몰라도! 그가 내게 보낸 문자를 사진으로 찍었다. 나중에 답장을 보내줘야지 싶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인데, 이 사진도 없어졌다. 이 시기에 찍은 사진들이 나중에 군데군데 사라진 걸 보면 아무래도 용량이 차서 사진 찍는 기능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왓츠앱에 산타 할아버지 연락처가 등록 안 된 것도 기기상 문제가 아니었을까? 제 기능을 찾으려면 일단 용량부터 덜어내야 했다.


산타 할아버지와 동네 의자에 앉아서 잠시 얘기하는 사이, 익숙한 남자 둘이 마을로 들어섰다. 바로, 중국계 남자와 우쿨렐레 남자였다. 그들은 산타 할아버지와 오다가 만나서 인사를 나눈 사이인 듯했다.  자신들은 이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겠다며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멍하니 그들을 보다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차 한 잔 사드려도 될까요? 스틱 고무 너무 잘 쓰고 있어요. 몰랐는데, 스틱이 더 안정적입니다. 감사해요.”

그는 그러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괜찮아. 나는 녹차 물을 가지고 다니잖아!”

그가 자신의 물통을 흔들어 보였다.

“그럼 식사를 할까요? 제 친구랑 같이 먹어요. 숙소는 어디세요? 근처 식당 알아볼까요?”

그가 숨을 푹 내쉬다가 웃었다.

“난 오늘 이 마을에서 묵어! 힘들어서! 다리도 아프고!”

“아, 이 마을에서!”

일정표에 못 미치는 마을인데, 계획에 없던 결정인 듯했다. 나는 그제야 그가 노년의 몸으로 이 힘든 여정을 거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마을에서 문을 연 숙소를 이제부터 찾아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5킬로 더 걸어서 에스떼야까지 가야 했다. 친구도 배낭이 거기에 있지 않은가. 오늘도 그와 식사는 못하겠다 싶었다.  


그는 몸이 힘들어서인지 마음을 잠시 닫은 듯했다. 어쩌면 밤에 쓴 편지를 낮에 지우듯 그가 내게 친분 어린 마음으로 보낸 문자에 내가 답하지 않아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후회했는지 모르겠다. 친절은 친절로 끝났어야 했는데 괜히 자신이 수작이라도 건처럼 내가 여겼다고 생각해서 부끄러웠던 걸까? 물론 내 생각이다. 그는 그저 힘들어서 쉬고 싶을 뿐, 차를 마실 여유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친절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내가 유난을 떠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음 기회를 엿보기로 하고, 그와 인사를 나눠야 했다.


마을이 참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어쩐지 와본 적 있는 곳 같았다. 익숙하면서도 딴 세상 같다고 할까? 오래전 이런 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나? 마을에서 햇빛을 받으며 걷는 동안 눈물이 핑 돌았다. 한가한 유럽 마을을 가끔 꿈속에서 봤다. 너무나 평온한 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저 유럽을 동경해서일까? 낯선데, 익숙한 이 느낌이 뭘까. 왜 마을을 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나지? 혹시라도 전생? 그런 전생 같은 거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냥 평화로운 에너지가 담긴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일 테니까.    




바람과 함께


오늘 길은 낮은 오르막 내리막이 살짝 반복되었다. 큰 도로를 끼고 이리저리 난 길인지, 터널 같은 곳도 여러 번 통과했다. 꾸준히 걸어가니까 다시 숲 길이었다.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중국계 남자와 우쿨렐레 남자를 또다시 만난 것이다. 벌써 커피를 마시고 오는 길이겠지. 그들은 가벼운 인사를 하며 천천히 걸어왔다. 좀 지친 중국계 남자는 나만큼이나 더디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우쿨렐레 남자가 배낭 뒤에 걸어둔 비장의 악기를 꺼냈다. 그리고 신나게 손을 튕기며 노래를 불렀다. 산길에서, 이제 좀 지쳤다 싶을 때, 그가 마치 힘을 내라고 연주를 해주는 듯했다. 일행인 중국계 남자를 위한 연주였는지 모른다. 곁에 있던 나도 느려 터진 걸 봐서 치어업 기술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정말 힘이 나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감동이기도 하고!


무뚝뚝한 이들에게 이런 마음이 있었다니! 한동안 그들과 걸었지만 마을에 도착하자 전처럼 그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사실 내가 그들에게 조금 뒤처져서 걸었기에 마을 입구에 벌써 들어선 그들을 놓쳤다. 내 숙소가 바로 마을 입구에 있는 걸 그들도 나도 몰랐으니까! 바람처럼 나타나서 바람처럼 사라지는 존재들! 고마운 날이었다.




깊이 깨달은 것들


[hosteria de curtidores] 멀쩡해 보이는 숙소였다. 신난다. 일단 바로 마을 입구라서 더는 안 걸어도 된다. 전 숙소 주인장에게 소개를 받은 사설이었다. 호스텔이라서 그런지 외관도 그럴싸했다. 등록을 하고 내 배낭도 찾았다. 아침, 저녁을 신청할 거면 지금 신청하라는데, 그냥 안 먹겠다고 했다. 사실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면 좋았을 걸 싶었다. 나중에 보니 이곳 평이 좋았다. 먼저 도착한 세미가 내려와 반겼다. 미리 장을 봐 뒀다며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쉬라고 한다.


숙소가 참 깨끗했다. 2층 침대가 두 개씩 놓인 방들인데, 방마다 고급스러운 샤워실이 있었다. 이런 샤워실? 얼마만의 호강인지! 세미가 쓰고 있는 방에는 1층 침대가 벌써 차서 나는 다른 방 1층 침대를 쓰기로 했다. 이미 창가 쪽 침대를 누군가 찜해 놓고 나갔다. 여기에서는 어디든 좋았다. 모두 깨끗하고 상태가 좋았다. 방 안 상태가 여행자들의 숙소 같은 숙소 느낌이었다.


어제 산 간식거리도 있고, 세미가 장을 본 것들을 합쳐서 오늘 저녁을 해 먹어야 했다. 세미에게 장 본 것을 셰어 하겠다니, 나중에 하자고 했다. 나는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부엌 쪽으로 나 있는 작은 문 옆으로 빨래건조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벌써 사람들의 빨래로 자리가 없었다. 널브러진 빨래들을 이리저리 살짝 밀어서 칸을 확보했다. 기우뚱한 오르막에 놓인 빨래건조대라서 바람이 불면 넘어갈까 싶었다. 바로 앞에 작은 강이 보였다. 평화로운 마을이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지쳐서 동네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다. 그게 내 후회로 남을 줄이야.


부엌 시스템이 희한했다. 돈을 넣으면 일정 시간 부엌 전원이 들어왔다. 컴컴해도 요리는 할 수 있다고 생각에 돈을 넣지 말자고 했는데, 앗! 전자레인지는 물론이오, 전기 쿡! 이런 것도 못 쓴다. 하는 수 없이 돈을 넣고 잽싸게 움직였다. 냉장고 문을 열던 세미가 뭔가를 들어 보였다.

“내가 제일 처음 왔는데, 이게 있었어. 전 순례자가 놔둔 것 같아.”

그녀가 손에 든 것은?  과일 그림이 그러진 1리터 종이 팩이었다.  

“주스다 주스!”

우린 얼른 컵에 쪼르르 따라 마셨다. 앗!

“와이트 와인이다.”

술 마실 줄 아는 세미도 맛없다고 뱉었다. 나는 오죽했으랴! 제일 먼저 도착해도 있는 음식이란 누군가 두고 갔다는 말이다. 사실 1리터를 음료를 사도 안 비싸다. 그냥 사서 마시고 남은 건 두고 간 것이다. 나 역시 우유니 주스니 먹고 싶은 걸 사서 마시고, 그냥 두고 왔다. 나중에는 그것도 그냥 가방에 쑤셔 넣어서 챙겼다. 매일 사는 것도 그렇고, 이 정도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공간만 확보되면 들고 가서 마시다가 중간에 간식과 함께 먹으면 딱이었다.


식사는 고기를 적당히 볶아서 먹는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었다. 어제 슈퍼에서 산 음식들을 다 먹어치웠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좋은 식당에서 좋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었는데, 피로에 수고한 몸에게 너무 대충 음식을 쑤셔 박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싸도 자제하고, 점심 정도야 대충 먹는다 치지만 저녁은 제대로 먹어야 하지 하지 않을까? 또한 무리해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오늘 유난히 지쳐서인지, 만사가 다 귀찮았다. 저녁식사도 띄엄띄엄 만들어 먹어야지, 슈퍼에서 맛있게 사서 만들어 먹는 것, 평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있게 사 먹는 것, 적당히 섞어야지 싶었다. 점심도 맛집이 있다면 기꺼이 가서 먹어야지 싶었다.  

무엇보다, 순례길에서 그 마을을 잘 즐기지 못하는 건 후회스러운 일이다.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쳐간 곳을 잘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에스떼야는 내가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곳 중 하나인데, 나중에 큰 후회로 남았다.  이곳은 참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말이다.


숙소에서 보이는 마을 풍경이 참 아름다웠다. 마을 입구라서 지친 순례자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나보다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이리 많은 줄 몰랐다. 서머타임이라서 늦도록 해가 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늦도록 순례자들도 움직여 걸어오는 듯했다. 이들은 아마도 나보다 더 먼 거리에서 시작해서 해가 지지 않는 시간까지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 하며  걸은 자들일 것이다. 젊고, 건강한, 굉장히 지쳐 보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길 중간에서 나와 마주치지 않았다는 건 그들은 그때 더 멀리서 오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이다.


숙소가 입구에 있으면 이런 구경도 하는 샘인데, 장단점이 있다. 왔을 때는 제일 가까워서 좋지만, 동네를 구경하긴 멀고, 내일 아침에 떠날 때도 제일 멀리서 시작하는 샘이다. 슈퍼도 가보지 못하고 동네도 못 돌고, 너무 고단해서 일찌감치 뻗었다. 내게 오늘 길은 고된 길이었나 보다.


에쓰떼야는 아름다운 강가와 더불어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유롭게 시간을 내서 둘러보면 좋을 듯싶다.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알아두면 좋아요>

에스떼야는 1090년 산초 라미레스 왕이 에가 강가에 만든 계획도시였다. 에스떼야에는 바스크인, 유대인, 프랑스인 등 여러 인종이 모여 살았다. 왕이 주도한 개발로 도시는 항상 부유했고, 당시 번성한 상업과 수공업 때문에 에스떼야는 매우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칼릭스티누스 사본에서는 에스떼야를 가리켜서 ‘좋은 빵과 훌륭한 포도주, 고기와 물고기가 넘쳐나고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모든 종류의 행복함이 있는 도시’라고 기록했다.

에스떼야 가면 중세식 발코니가 있는 아름다운 라 루아 거리, 산 니콜라스 거리, 푸에로스 광장, 산띠아고 광장, 산 마르띤 광장과 에가 강변의 야노스 공원에서 아름다움 휴식을 즐겨보고, 나바라 왕궁, 대천사 미카엘 성당, 산 뻬드로 데 라 루아 성당, 성묘 성당, 산따 마리아 후스 델 까스띠요 성당도 들러보자.

 -한국 산티아고 순례자협회 자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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